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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테크놀로지리뷰] 타흐리르에서 트럼프로 가는 길···디지털기술, 민주주의에 약과 독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도구에서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무기로 변하게 됐는지 이해하려면 기술 자체를 넓게 살펴봐야 한다.

2018-11-23독점제휴=MIT테크놀로지리뷰

[독점제휴=MIT테크놀로지리뷰]

1. 행복한 발견
2011년 ‘아랍의 봄’이 중동을 강타했을 때 독재정권 지도자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당시 나는 기술이 그 사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해당 지역을 방문했다. 하루는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한 카페에서 여러 시위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내게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주장했다. 튀니지에서 만난 운동가들은 그들이 당시 독재 대통령 부인이 정부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쇼핑을 다녀온 사실을 ‘오픈소스’ 기술로 추적했던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만났던 시리아인들도 기술 발전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시리아가 아직 지옥 같은 전쟁 속으로 빠져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리아 젊은이들은 에너지와 지식, 유머, 그리고 스마트폰을 갖췄고, 이 같은 사실이 결국 지역이 원하는 민주주의 요구를 성공적으로 이뤄내는 데 기여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가 활용한 유권자 프로파일링과 마이크로타깃팅을 칭찬하는 기사가 많았다.

전통적으로 정부와 언론은 반대주의자들의 목소리가 퍼지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관리하는 ‘게이트키퍼’같은 역할을 해왔다. 2012년 미국에서 열렸던 컨퍼런스에서 강연했을 당시, 나는 기술 발전이 이러한 전통적인 ‘게이트키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설명하려고 2009년 이란인들이 길거리 시위에서 찍힌 영상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한 여자가 피 흘리며 죽어가는 끔찍 한 장면이었다. ‘권력’이 낳은 결과였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1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었으면 아마 영상으로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당시 누가 언제든지 촬영할 수 있게 비디오카메라를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었겠는가?) 행여나 일반 사람이 아닌 신문기자나 사진작가가 그곳을 방문했다고 해도 이런 장면을 실을 수 있는 신문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 연설에서 어떻게 소셜미디어가 ‘다원적 무지’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다원적 무지’란 집단 구성원들 대부분이 마음속으로는 어떤 규범을 부정하면서,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그 규범을 수용하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현상을 말하는 사회학적 표현이다. 한 번 사회적 고립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이후 자신의 의견에 힘을 싣기 위해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소셜미디어가 사회적 반란을 조성한다는 내 주장도 이와 비슷한 논리라고 볼 수 있다.

소셜플랫폼 기업 트위터는 구직자들에게 “우리의 일원이 돼주세요”라고 설득하는 데 내 발언을 일부 인용(리트윗)했다. 그 내면에는 트위터는 사람들 편에 서서 세상의 ‘선’을 이루기 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암묵적인 이해가 깔려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의 새로운 ‘게이트키퍼’가 됐으나 스스로를 게이트키퍼가 아닌 중립적인 ‘플랫폼’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좋아했다.

나는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나 스스로도 중동출신이고, 지금껏 반체제 인사들이 디지털 도구를 사용해 정부에 대항하는 것을 지켜봤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타흐리르 봉기가 일어났을 당시 이집트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는 인터넷과 휴대전화 서비스를 모두 중단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나오는 정보 흐름을 제한할 수는 있었지만 이는 결국 이집트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21세기에 중요한 것은 이미 넘치고 넘치는 ‘정보’가 아니라 ‘관심의 흐름’이라는 것을 무바라크는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카이로 혁명가들이 위성전화를 가지고 와서 세계 언론에 인터뷰 기사와 사진을 넘긴 덕분에 관심이 더욱 커졌다.

몇 주 뒤 무바라크는 결국 쫓겨났고,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이 했던 일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많은 부분을 암시했다. 이집트 최고 군사위원회는 즉시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었고, 이것을 국가 정보 독점 전달 통로로 삼았다. 새 정권은 이전 무바라크 실수로부터 깨달음을 얻었고, 반체제 인사들에게 기꺼이 협조하는 태도를 보이기로 결정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이집트 온라인 생태계는 극적인 변화를 맞았다. 소셜미디어에서 유명한 한 혁명가는 내게 “이전에 트위터 하나였던 시대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이제 소셜 미디어는 정부 지지자들로부터 괴롭힘 당하고 있는 반체제 인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말다툼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 민간정부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군대가 통제권을 장악할 것이다.

권력은 항상 배움을 얻고,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쥔다. 이것은 역사로부터 배운 어렵고도 탄탄한 교훈이다. 이러한 사실은 어떻게 7년 안에 디지털 기술이 ‘자유’를 위한 도구에서 비난의 대상으로 변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디지털 기술은 양극화 심화, 권위주의 증가, 러시아와 다른 세력들의 국가 선거 개입 같은 서양 민주주의에 ‘대변동’을 불러일으킨 원인으로 꼽히며 비난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인간 사회 역학과 유비쿼터스 디지털 연결성, 그리고 거대 기술기업들의 사업모델 같은 요소들이 합쳐져 어떻게 지금 같은 환경을 만들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즉 잘못된 정보가 난무하고, 제대로 된 정보라 하더라도 이것이 사람들을 계몽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환경을 말이다.

 

2. 담대한 희망
2008년 버락 오바마가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아랍의 봄이 ‘기술’을 설명했던 것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오바마 당선은 약자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는 많은 사람의 예상을 꺾고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뒤 결국 공화당 경쟁자까지 물리쳤다.

오바마가 2008년에 이어 2012년에 승리를 거뒀을 당시 그를 칭찬하는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대부분 그가 기술과 소셜미디어 데이터, 유권자 프로파일링, 마이크로 타겟팅 같은 방식을 활용한 것을 칭찬하는 내용이다. 오바마가 두 번째 승리를 거뒀을 당시 MIT테크놀로지리뷰는 가수 보노의 사진으로 커버를 장식하며, 헤드라인에 “빅데이터가 정치를 살릴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밑에 “휴대전화와 인터넷, 그리고 정보 확산이 독재자들에게는 치명적인 결합이다”는 인용구를 덧붙였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그동안 독재 정권을 지켜봤던 사람들은 이미 걱정하고 있었다. 특히 내 관심분야는 어떻게 페이스북을 이용한 마이크로 타겟팅이 공공 영역에 대혼란을 가져올 지에 관한 것이었다. 소셜미디어가 반체제 인사들로 하여금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은 맞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마이크로 타겟팅은 우리 주변 이웃들이 어떤 메시지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를 타겟으로 한 메시지들이 어떻게 우리 욕망과 취약점에 정확히 맞춰져 있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디지털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커뮤니티가 모이고 생성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기존에 같은 TV뉴스와 신문을 보는 사람들로 형성되던 커뮤니티 해체를 유발했다. 심지어 시청률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알고리즘에 따라 정보가 확산되면서 같은 거리에 산다는 것의 의미가 축소됐다. 공공적이고 집단적인 정치에서 점점 더 사적이고 분산된 정치로 변화했다. 정치인들은 올바른 결정을 하려고 점점 더 사적인 데이터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정보 왜곡과 양극화 원인이 될까봐 우려했다. 2012년 선거가 끝난 직후 나는 뉴욕타임즈 기명 논평 페이지에 이런 우려를 담은 글을 실었다. 퉁명스러운 글이 되길 원하지는 않았다. 단지 규제시스템이 갖춰진 TV나 라디오처럼 소셜미디어에서 정치 광고와 콘텐츠에도 투명성과 책임감이 갖춰져야 함을 주장했을 뿐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생각보다 빨리 들려왔다. 2012년 오바마가 선거운동을 할 당시 데이터국장이었던 에단 로더는 ‘나는 빅브라더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런 내 우려를 ‘허튼 소리’라고 표현했다. 지금껏 내가 만났던 데이터 과학자들과 민주당원들도 ‘기술은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는 내 생각에 매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글을 읽은 독자들은 나를 사기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들 말처럼 결국 기술은 민주당원들이 선거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내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어떻게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

이집트 장군들은 호스니 무바라크 실수로부터 배웠다

 

3. 면역에 대한 착각
타흐리르 혁명가들과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만이 자신이 항상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버그와 비밀 백도어, 익스플로잇 공격, 고급수학에 쓰이는 단축키, 거대 컴퓨팅 파워 같은 디지털 기술의 약점에 기반한 해킹 툴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툴은 ‘우리 외엔 아무도 없다’(또는 약자를 위한 커뮤니티에서는 NOBUS)고 불렸다. 즉 NSA외에 다른 누구도 이 툴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취약점을 보완 하거나 전반적인 컴퓨터 보안을 강화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당시 NSA는 약한 온라인 보안이 NSA보다는 그들의 적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사람들 대부분은 NSA가 드러내는 이러한 자신감이 그럴싸하다고 봤다. 인터넷은 많은 부분이 미국에서 창조한 걸로 볼 수 있고, 인터넷과 관련한 큰 규모 회사들도 대부분 미국에서 설립됐다. 세계 컴퓨터 과학자들은 여전히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며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게다가 NSA는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갖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NSA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해커와 수학자 수천 명을 보유하고 있다.

모두 기밀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체 이야기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2012년과 2016년 사이에 미국에서 디지털 인프라를 ‘강화’하려는 눈에 띄는 노력은 없었다. 또 기술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큰 경고도 없었다. 글로벌 플랫폼에 의해 글로벌 정보 흐름이 촉진된다는 것은 마케도니아나 모스크바, 상트 페테르부르크 교외 사무실에 앉아서 마치 디트로이트나 피츠버그 지역 뉴스인 것처럼 콘텐츠를 꾸며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보안은 더 나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해킹, 간섭, 잘못된 정보에 대한 대중 인식을 동시에 높여야 갖출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정보기관과 관료, 선거제도 같은 분야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은 기업 지배력과 일부 분야에서 나타나는 기술적인 마법으로 더 중요한 것들과 다른 약점이 생기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4. 플랫폼의 파워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 거대 소셜미디어 플랫폼 중 몇몇이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앞으로 발생할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주가와 수익성을 높이는 것을 우선시했다. 오바마 집권 시기 동안 이들 플랫폼은 엄청나게 성장했고, 특별한 규제도 받지 않았다. 특히 그들은 플랫폼 사용자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기술을 견고히 하는데 주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효과적인 광고를 플랫폼에 내보낼 수 있었다. 10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구글과 페이스북은 디지털 광고 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 페이스북은 왓츠앱이나 인스타그램처럼 장래에 경쟁자가 될 것 같은 기업이 생겨나는 족족 집어 삼켰다. 그럴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갖게 됐다. 이를 기반으로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을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무르게 하고, 사용자에게 딱 맞는 광고를 제공하도록 알고리즘을 개선해 나갈 수 있었다. 입증이 완료된 사용자 정보를 업로드하면 페이스북 인공지능(AI)엔진은 그 사용자와 ‘비슷해 보이는’ 더 많은 사용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2016년부터 이 기능이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이 어떤 것인지 더욱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한편 구글 검색순위는 어떤 기업이나 서비스, 정치인을 살리거나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갖고 있다. 2016년 구글 이메일 서비스 사용자가 10억명을 넘어섰다. 또 구글이 운영하는 영상플랫폼 유튜브가 세계적인 정보 채널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 초 월스트리트저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들이 시청했던 영상보다 더 감각적인 영상을 계속해서 추천한다. 시청자들을 점점 더 극단적인 성향의 콘텐츠로 몰아가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사용자 관심을 유도해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유튜브에 수익을 가져다줬다. 음모론 이론가들도 환영할 일이었다.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것 또한 사람들이 매번 새롭고 충격적인 이야기에 이끌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렉스 존스의 3단계’라는 것이 유행처럼 돌기 시작했다. 이것은 ‘당신이 어디서 유튜브 시청을 시작했던지 간에, 당신은 우익 음모론자가 만든 2012년 샌디 훅 총기 난사사건 관련 영상을 3번 이상 추천 받는다’는 내용이다. 영상은 해당 총기 난사사건은 일어난 적이 없으며, 당시 공개됐던 학생 부모들은 모두 총기 소유에 반대하는 연기자들이라는 내용이다.

페이스북이나 구글보다 규모는 작지만, 트위터는 저널리스트와 정치 관련 인물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얻으며 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트위터의 개방적인 철학과 자유롭게 가명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세계에서 반란을 꿈꾸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하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여성이나 반체제활동가들,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공격하는 악플러들의 타겟이 될 수도 있다. 트위터는 올해 초에야 악플러들이 봇을 사용해 악의적으로 트윗을 자동생산하고 증폭하는 것을 잡아내는 노력을 선보였다.

또 트위터의 간결하고 빠른 포맷은 디지털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관심’에 대한 전문적이거나 본능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예를 들어 리얼리티 TV쇼에서 나온 스타 같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경쟁자에게 그를 비꼬는 전염성 높은 별명을 지어주고, 미국 정치에 대한 재편성 관련 내용으로 가득한 허세 담긴 약속을 늘어놓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이때 ‘재편성’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브로커들 대부분이 놓친 것들을 말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를 이용해 관심을 끄는 데 탁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캠페인은 본래 광고주들을 위한 플랫폼으로 고안됐던 페이스북을 통해 진행됐다.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테스트 해보고, 가장 효과가 좋았던 특정 사람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페이스북은 트럼프 캠페인에 자사 직원들을 투입해 더욱 효과적으로 페이스북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이 과정에서 많은 돈이 들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트럼프 자체가 얼마나 페이스북 플랫폼을 잘 활용하는지에 감명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트럼프 캠페인을 자신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혁신가’라고 표현했다. 페이스북은 힐러리 클린턴 선거운동에도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들은 트럼프보다 훨씬 적게 서비스를 이용했다.

디지털 도구는 지난 몇 년간 있었던 정치적 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그리고 독일과 헝가리, 스웨덴, 폴란드, 프랑스 같은 국가에서 극우파 승리 같은 게 있다. 또 페이스북은 필리핀 독재자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선거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도왔다. 나아가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진행됐던 ‘인종청소’에 페이스북이 기여 했다는 사실이 유엔 보고서에 기록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가 극단주의자들과 권력자들이 협력한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민주화 기술은 아니다. 민주당원들의 통신망을 해킹하려 시도했던 러시아 정보원들은 비트코인을 이용했다. 비트코인으로 가상 사설망을 구입한 뒤 온라인에 남아있는 흔적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이후 이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미국 전역에서 소셜미디어 가짜 지역뉴스 조직을 설립했다.

그들은 그곳에 양극화를 조장하기 위한 자료들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악플러들은 테러리스트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미국계 이슬람교도나 이민자를 반대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로 가장해 글을 올렸다. 또 그들은 대표적인 흑인인권운동단체인 ‘블랙라이브즈매터’ 운동가로 가장해 경찰의 잔혹함을 비판하거나 경찰들을 쏘기 위해 총기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스스로를 위장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분열의 불꽃을 부채질했다. 또 각 그룹이 상상하는 경쟁자 모습이 실제로도 정말 끔찍하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러한 악플러들은 저널리스트들과 클린턴 지지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많은 뉴스를 만들어 냈다. 나아가 민주당원 사이에서 오가는 양극화 관련 언행들을 부채질했다.

 

5. 시대가 준 교훈
어떻게 이런 일들이 모두 일어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시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독재자들을 무너뜨리는데 사용했던 디지털 기술이 억압과 불화를 부추기는 도구가 됐을까? 여기에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다.

첫째 전통적인 정보 게이트키퍼(미디어와 NGO, 정부, 그리고 교육기관 같은) 약화는 사회약자들에게 힘을 실어줬던 반면 그들을 오히려 약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통적인 정보 게이트키퍼가 약화되면서 반체제 인사들은 검열을 더 쉽게 피할 수 있게 됐다. 약자들이 도달할 수 있게 된 공공영역은 종종 너무 시끄럽거나 복잡해,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게 됐다.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바란다면 사람들에게 세상이 변할 필요가 있음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끌어낼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반면 권위주의자와 극단주의자들은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지 못하게 막으려고, 신뢰를 무너뜨려 그들을 분열 시키고 마비시킨다. 전통적 게이트키퍼들은 진실과 여러 반대 의견들이 퍼지지 못하게 막아왔다.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생성되는 거짓 정보들도 막았다.

전통적인 정보 게이트키퍼는 일부 진실과 반대 의견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오보도 차단했다.

둘째 새롭게 등장한 알고리즘식 게이트키퍼들은 단지 거짓과 진실 모두를 아우르는 전달자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이 특정 사이트나 앱에 더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으로 수익을 낸다. 이러한 사실은 분노를 불 지피고,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사람들의 편견과 선호에 호소하는 이들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전통적인 정보 게이트키퍼들은 많은 면에서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가 세상에 불신과 의심을 이끌어 냈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반면 새로운 게이트키퍼들은 이러한 불신과 의심으로 인해 오히려 성공할 수 있었다. 불신과 의심이 계속되는 한 사람들은 ‘클릭’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정보 게이트키퍼들의 손실은 지역 저널리즘에서 특히 심각하게 나타났다. 미국의 일부 대형 언론사들은 인터넷이 만들어 낸 격변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인터넷 상승세는 지역 신문들을 모두 망가뜨렸고, 많은 다른 나라에서는 산업을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는 오히려 잘못된 정보가 더 잘 퍼질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지역은 권력자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게 되고, 그들에 대한 의존성을 줄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전역에서 가짜 미디어 브랜드를 만든 러시아 공작원들은 아마도 지역 뉴스에서 미국인들의 열망을 이해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또는 그저 운 좋게 이러한 전략에 편승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만약 지역적으로 일어나는 견제와 균형이 없었다면 지역적으로 일어나는 부패가 현재 발생하고 있는 많은 정치적 재앙들의 원인이 되는 ‘글로벌 부패’로 확대됐을 수 있다.

넷째 교훈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필터버블’이나 ‘에코챔버’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온라인에서 우리가 자기 견해와 비슷한 정보만을 본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완벽하게 옳은 사실은 아니다. 컴퓨터 알고리즘은 대부분 사람들이 사전에 듣고 싶어 하는 정보만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사실 오프라인에서보다 온라인에서 더 다양한 견해들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소셜미디어에서 나와 반대되는 견해를 보는 것이 혼자 앉아 신문을 읽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마치 축구 경기장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을 응원하는 팬들과 함께 앉아 있는 동안, 상대 팀에서 반대 견해를 듣는 것과 같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많은 커뮤니티와 연결돼 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견해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마치 같은 팀 팬들이 상대팀에게 마구 소리치면서 결속을 다지는 것과 같다. 이를 사회학적 용어로 설명하면, 우리는 스스로 ‘아웃그룹’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내가 속해있는 ‘인그룹’ 내에서 느끼는 감정을 강화한다. 아무리 ‘팩트체크’된 뉴스라 하더라고 이것이 사람들을 꼭 납득시킬 수 있는 게 아닌 이유도 이 때문이다. 팩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소속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질이 아랍의 봄 여파를 이끄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혁명가들은 작은 그룹으로 쪼개져 소셜미디어에서 논쟁을 일으키다가 적발되곤 했다. 한편 권력자들은 반체제 인사들을 배신자나 외부인으로 규정하며 지지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반체제 인사들을 향한 이런 ‘애국심 넘치는’ 공격은 정부 주도 공격보다 더 흔하게 일어났고, 더 위협적이었다.

러시아 공작원들이 미국에서 양극화를 부추기는데 기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이민자들과 백인우월주의자들, 분노한 트럼프 지지자들, 그리고 ‘버니 형제들’과 한 편에 서면서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기보다는 마비시키고, 양극화 시키려고 했다. 전통적인 정보 게이트키퍼들이 사라지면서 그들의 메시지는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디지털 분석이 가능해진 덕분에, 그들은 광고주나 정치 캠페인 진행자들이 그러하듯 메시지를 더 강화할 수 있었다.

다섯째로 러시아는 2016년 선거 당시 일어났던 공공토론을 뒤엎으려고 했다. 그들은 미국의 취약한 보안을 이용했다. 보안 취약성은 미국인들의 ‘오직 우리만’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러시아는 민주당 국가위원회 이메일을 해킹하고 공개했으며, 클린턴 선거 관리자인 존 포데스타 계정을 해킹했다. 결국 이는 검열 캠페인으로 이어져, 선거와 무관한 내용이 기존 미디어 채널에 범람하기 시작했다.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에 관한 내용이 모든 뉴스를 지배하면서 트럼프와 클린턴 모두 원래 받아야 할 언론조사를 면밀하게 받지 못했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미국의 ‘오직 우리만’ 사고방식이, 디지털 조사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은 아마도 사이버 보안에서 가장 공격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일 것이다. 하지만 포데스타가 가장 단순한 해킹 종류인 ‘이메일 피싱’조차 잡아내지 못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미디어들이 해킹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의 관심과 클릭 수에 대한 갈망과 디지털 공간에 대한 이해 부족은 결국 그들을 핵심 업무에서 벗어나 혼란의 늪으로 빠지게 했다. 보안은 단순히 누가 더 많은 크레이 슈퍼컴퓨터와 암호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보안에는 디지털 시대에서 사람들의 관심, 정보 과부하, 사회적 유대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이해가 수반돼야 한다.

이러한 이해가 이뤄지면, 그동안 왜 아랍의 봄 이후로 권위주의와 잘못된 정보들이 넘쳐났지만 ‘자유로운 생각’들은 그러지 못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서술은 페이스북 최초 ‘사명선언문’에 요약돼 있을 것이다(2017년 이후 소셜네트워크는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존재로 사람들의 반발을 이끌어냈다). 최초 페이스북 설립 목적은 ‘더 공개적이고 연결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것이 좋은점만 있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과연 ‘무엇’에 열려 있고, ‘어떻게’ 연결됐다는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가 현재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다.

 

6. 앞으로 나아갈 길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쉬운 답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온전한 디지털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꼭 취해야 할 몇 가지 조치가 있다. 독과점 금지가 약한 환경 때문에 몇몇 거대 기업들이 시장을 거의 독점하게 됐다. 하지만 이제 이런 상황은 역전돼야 한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게임 규칙을 변경하지 않고 이런 거대 기업들을 해체하려고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는 현재 거대 기업들이 그러하듯 데이터 감시, 마이크로 타겟팅과 ‘넛징’ 같은 약탈적 기술을 사용하는 수많은 소규모 기업들을 양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디지털 감시는 현재 형태에서 끝내야 한다. 기업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수집해 축적하도록 허락할 정당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에게 ‘동의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로 유도해 모호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설명서를 읽게 하는 것으로 제대로 된 ‘정보에 근거한 동의’를 얻어냈다고 보기 힘들다. 만약 20~30년 전에 기업이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위해 사람들의 데이터를 무작위로 수집한다고 했다면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미국 정치에 개입한 것은 러시아다. 하지만 이런 간섭에 취약하도록 만든 여러 조건은 러시아가 만든 게 아니다.

사실 이렇게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고도 디지털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광고주들은 이전에 데이터 수집 없이도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도 그럴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광고보다는 콘텐츠에 첨부돼 전달하는 식의 광고가 더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다른 사이트에서 보였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다이버라는 것을 파악하고, 스쿠버 장치 광고를 방문하는 모든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트마다 따라다니도록 하는 광고형태가 있다. 반면 스쿠버 다이버들이 토론하는 게시판에 들어갔을 때만 스쿠버 장치 광고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비교하자면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낫다는 말이다. 아마도 러시아 정부는 미국 선거에 개입하려고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불신, 약한 제도적 장치, 나라에 무심한 엘리트처럼 미국을 선거 간섭에 취약하도록 만든 여러 가지 요인들은 러시아가 아닌 미국이 만든 것이다.

미국(그리고 동맹국들)이 중동에서 대규모 전쟁을 시작한 것도 현재 큰 혼란을 낳고 있는 난민 위기도 러시아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그리고 현재 아무도 이 사건들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있다. 또 러시아는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키지 않았다. 금융위기는 금융기관을 배부르게 했던 부패 관행들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다. 금융위기가 끝나고 이에 책임이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 하나 손해보지 않고 빠져나갔다. 반면 미국인 수천 명은 일자리를 잃었고, 그것을 대체할 만큼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보건당국과 환경단체, 기타 규제당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를 떨어뜨렸던 사회적 움직임을 촉발하지 않았다. 또 러시아는 의회와 전직 정치인들을 높은 봉급으로 고용하는 로비 회사들 사이를 연결하는 회전문도 만들지 않았다. 미국의 고등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을 철회한 것도 러시아가 아니다. 조세 피난처를 통해 대기업과 부자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반면 기본적인 정부 서비스는 감축해야 했던 미국 상황도 러시아가 만들지 않았다.

이는 몇몇의 밈(유전자처럼 개체 기억에 저장되거나 복제될 수 있는 비유전적 문화요소나 문화 전달 단위)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단층적인 사례들이다. 러시아 밈 뿐 아니라 미국과 서유럽 활동가들도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기 위해 디지털 플랫폼을 사용 하는 데 열성적이었고 큰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자유로운 환경이 더 광범위한 문제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억압당하는 동안 어떻게 권력자들은 행동에 전혀 제약받지 않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문제다. 미국과 유럽의 실질적 임금 수준은 수십 년간 정체돼 있다. 반면 기업 이윤은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부유층에게 걷는 세금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 종종 젊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보통은 썩 좋지 않은 일)을 동시에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많은 돈을 물려 받지 않는 한 이들이 이전 세대들처럼 부를 쌓고 집을 사는 과정을 밟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만약 디지털 연결성이 어떤 불꽃을 제공했다면, 아마도 그것은 주변에 이미 많은 불꽃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전통적인 정보 게이트키퍼들이나 아랍의 봄에 대한 이상주의 향수를 키우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에 사회 제도, 견제와 균형, 그리고 사회적 안전장치가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단지 디지털 기술에만 적용되는 논리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 전반에도 해당된다. 책임은 러시아나 페이스북, 구글, 그리고 트위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책임은 우리 몫이다.

 

<이 기사는 테크M 제67호(2018년 11월)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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