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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테크M리포트] 드론, 새로운 예술을 꿈꾸다

테크 품은 예술 22

2018-10-26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인텔50주년 기념으로 2018대의 드론이 펼친 공연

[테크M=김선영 예술지원경영센터 대표]

세계적인 뉴미디어 이론가 로이 에스콧(Roy Ascott)은 새로운 기술에 의해 가장 많이 영향 받는 것은 ‘의식’이라고 했다.그리고 새로운 기술과 의식이 통합된 세계를 테크노에틱스(technoetics)라고 이름 붙였다. 인공적인 것과 영적인 것 또는 문화적인 것과 우주적인 것의 연결이기도 한 이 세계에서 새 기술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이를 통해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탄생시킨다.

프랑스 시인이자 비평가인 폴 발레리(Paul Valery) 역시 커다란 과학기술 변화가 예술에 사용하는 기술, 예술 수법, 나아가 예술 개념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굳이 이들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최근 새로운 예술이 생겨날 조짐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미 다양한 기술과 예술이 결합하고 있다. 이 중 주목할만 것 중 하나가 공중예술, 곧 드론이 펼치는 예술이다.

 

이벤트 수준에서 멈추고 있는 드론 군집비행
흔히 드론예술 하면 드론 군집비행을 떠올린다. 인텔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에서 100대 드론을 동시에 비행하는데 성공한데 이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유스 오케스트라 음악에 맞춘 드론 군무를 선보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세계적 뉴미디어아트 기관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퓨처랩(FutureLab)과 협업했다.

그리고 500대 드론 군무로 기네스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또 미국 슈퍼볼 결승전에서 레이디 가가가 등장할 때 드론 무리가 물결치는 성조기를 연출했다. 올해 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가장 인상 깊게 세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벤트 중 하나가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우며 펼친 1218대 드론 군집비행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드론 군집비행은 아직까지는 기술력을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 인텔은 올림픽 같이 비중 있는 행사 때마다 군집비행에 동원하는 드론 수를 새롭게 갱신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로 부딪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수의 경량드론을 동시에 정교하게 프로그램으로 제어할 수 있는가가 그들이 내세우는 기술력의 핵심이다.

날이 갈수록 군집비행에 동원되는 드론 숫자가 경쟁적으로 늘어난다. 올해 4월 중국의 드론기업 이항(Ehang)이 시안(西安)에서 평창보다 많은 1374대의 드론을 날리다가 드론이 서로 부딪혀 떨어진 해프닝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드론 군집비행이 기술력을 홍보하는 이벤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데 따른 결과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드론 군집비행 이벤트에서 예술성을 논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까지는 상상력과 진지한 미적 성찰보다는 화려하고 신기한 볼거리에 가깝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10분짜리 단편영화 스파크드(Sparked)에 램프 모양의 드론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진한 감동보다는 그들이 내세운 ‘충분히 발전된 기술은 마법과 같다’라는 구호 그대로 사람과 드론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마술 같은 신기함만을 선사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론예술에 대해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드론이 가져올 새로운 예술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딘 바이야크타스의 사진작품 중 하나인 다리. ⓒwww.aydinbuyuktas.com

 

자유낙하 하는 아찔한 긴장감을 전하는 드론 사진

우선 드론은 예술가와 감상자에게 이제껏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터키출신 아이딘 바이야크타스(Aydin Buyuktas)는 드론을 이용한 사진으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소재는 건물과 도로, 들판처럼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서 바라본 90도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은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풍경과 유사하면서도 이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미시적이다. 우리가 비행기에서 볼 수 있는 화면은 아득히 멀어서 손에 잡히지 않으며 따라서 감정을 실을 겨를이 없다. 하지만 바이야크타스 사진은 감상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오고, 그래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에 몰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지극히 사실적인 동시에 몽환적이다.

그의 드론 사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아찔한 긴장감에 있다. 사실 90도 각도의 풍경은 마천루나 고층건물 옥상에 올라간다고 해서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기껏해야 건축물 조감도처럼 90도보다 완만한 각도에서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을 뿐이다. 정확히 90도 각도의 풍경을 보려면 중국의 유명관광지인 장가계 귀곡잔도나 타워 같은 곳에 설치된 투명유리에 올라서서 까마득한 아래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현기증을 감내해야 한다. 감상자는 그의 사진을 통해 자유낙하 하는 스카이다이버의 끝없는 자유와 가슴이 폭발하는 듯한 긴장을 경험한다.

다음으로 드론은 신체의 확장을 통해 공연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해를 돕는다. 특히 무용 공연에서 그렇다. 무용은 순수예술 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덜한 편이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예술행사 관람비율을 봐도 알 수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 또는 클래식 공연을 보는 횟수는 연평균 0.1회 정도지만 무용공연은 0.04회 정도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우선 난해하다. 무용은 대개 신체의 움직임 하나로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만큼 예술가나 연출자의 의도를 보통 사람이 알아채기 쉽지 않다. 게다가 현대무용은 움직임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서정적이고 우아한 무용수들의 동작을 기대하고 공연장에 갔다가는 실망하기 일쑤다.

특히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하는 쇼크효과(Chockwirkung)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 관객들에게 무용수의 아우라(수월성에서 오는 감동)만 가지고 소통하기 어렵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그런 아우라를 가진 무용수 공연이 흔치 않은 것 도 사실이다.
그런데 드론을 활용한 공연에서는 이런 단점이 일정 부분 보완된다. 무용수 움직임과 연동한 드론 움직임은 단순히 새로운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신체 확장을 통해 무용수의 아우라를 보완하는 동시에 무용수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킨다.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지만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일본무용단 ‘일레븐 플레이(Elevenplay)’의 ‘24 드론스Drones)’가 대표적이다. 이 공연에서 세 명의 무용수들은 모션캡처 기술을 이용해 LED조명을 탑재한 24대 드론을 제어함으로써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여름 드론예술공연 ‘꽃심, 나르샤’가 전주에서 열려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무용수를 돕고, 대도시에 격동적인 벽화까지 세 번째로 드론을 새로운 표현도구로 쓸 수 있다. 지난해 가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그래피티(Graffiti) 행사가 화제가 됐다. 그래피티는 벽 같은 곳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서 그리는 그림이다. 디자인 스튜디오 ‘카를로 라티연합(Carlo Ratti Associati)’이 드론으로 벽화그리기(Paint By Drone)를 시도한 것이다.

스프레이 페인트 탱크를 장착한 4개 프로펠러가 달린 드론인 쿼드로터가 커다란 벽면에 앱으로 전송한 지시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사람이 직접 그릴 때는 지나치게 높거나 넓은 벽면에서 많은 어려움에 처한다. 하지만 ‘드론 그래피티 예술가’에게는 이러한 한계가 없음은 물론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카를로 라티(Carlo Ratti)는 신기술이 도시의 생활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연구하다가 기존의 커다란 벽면이 비어 있거나 고작 광고 정도에 활용되는 현실을 개선하려고 드론 벽화 그리기 프로젝트를 구상했다고 한다. 건축가이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인 라티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든 벽면은 새로운 형태의 열린 공간으로서, 드론과 같은 도구를 통해 협업 예술을 보여 주거나 대도시의 심장 박동을 시각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이밖에 드론은 라이트 페인팅(Light Painting)에도 활용한다.

라이트 페인팅은 빛이 없는 공간에서 광원을 움직여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이를 장노출로 촬영하는 빛 예술이다. 피카소(PabloPicasso)도 한때 심취했다고 하는 라이트 페인팅은 본래 사람이 광원을 들고 다양한 동작을 함으로써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제는 드론에 광원을 부착해 그 비행궤적을 촬영함으로써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예술 세계를 창조할 수있다. 최근 영국 출신 루벤 우(Reuben Wu)는 자연 풍경에 드론의 비행궤적을 덧입혀 외계와 같은 비경을 연출한 사진으로 각광받고 있다.

 

일레븐플레이 24 드론스 작품의 한 장면. ⓒ유튜브

 

예술을 몰아낸 기술로 새로운 예술을 이야기하자

오늘날 기술은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세간의 찬사를 받는 동시에 강박적이고 독재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일찍이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기술이 삶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오히려 기술에 종속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예술 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최근 드론을 활용한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드론 군집비행 기술의 프로파간다는 이제 인간의 자기 해명과 우주적 통찰이라는 예술의 본 기능으로 전환하는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서구의 몰락’을 쓴 독일의 역사철학자 슈펭글러(Oswald Spengler)에 따르면 문화는 두 단계로 발전한다. 하나는 사람의 힘이 성숙하고 예술이 사람 내면생활과 창조성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단계다. 그런데 이 단계가 지나면 무미건조한 기계적 단계가 도래한다. 여기서는 삶이 하강곡선을 그리고, 사람들은 외면화되면서 조직에 매몰됨으로써 삶 자체가 경직돼 버리고 만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기업 활동을 위해 서정시를 포기하고, 기술 공학을 위해 그림과 음악을 버린다. 슈펭글러는 이 단계를 내면적 인간의 자살이며, 삶에 대한 전반적 과소평가와 허무주의와 자기 소멸을 향한 움직임의 시작이라고 경고했다(루이스 멈포드, 2000, 예술과 기술).

예술 시대는 끝나고 모든 인간적 가치가 단절된 기술 시대가 도래했다는 슈펭글러의 지적을 단정적으로 부인하기 어려운 시대다. “왜 우리는 기술에서 신이 됐으면서도 도덕에서는 악마가 됐으며, 과학적 초인이면서도 미적인 바보가 됐느냐”는 멈포드가 던진 뼈아픈 물음 또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보인다. 이제 다시 기술 시대를 예술 시대로 돌리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 모멘텀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기술에 있다. 이것이 군집비행에 동원된 드론 수를 놓고 벌이는 경쟁적인 기술력 홍보 이벤트보다 드론에 의한 새로운 예술을 이야기 해야 하는 이유다.

 

<이 기사는 테크M 제66호(2018년 10월)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