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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앤트렌드] 게임 시장 중국 대륙발 한파에 급랭, 향후 기상도는?

게임 총량 제한 같은 고강도 규제안 유지하고 있는 중국

2018-10-26서정근 기자

지난 2년간 중국 수출길이 막혔던 한국 게임사들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 힘입어 다시 현지 판로를 뚫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암초를 만났다. 중국 정부가 청소년 시력 보호를 명분으로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 게임 총량 제한 같은 고강도 규제안을 내놓으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게임시장이 규제로 인한 중국 시장 변화에 주목하는 양상이다.

지난 8월 30일 중국 교육부와 국민건강복지위원회, 국가신문 출판서 같은 8개 부서는 청소년들에게 인터넷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고, 게임사들이 서비스할 수 있는 게임 수량을 제약하는 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특정 연령대의 이용자가 네트워크 게임에 접속하는 시간을 차단하는 게임 셧다운제는 한국에 먼저 도입했었다. 그러나 게임사가 서비스할 수 있는 총량 제한 규제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청소년 시력보호 명분으로 총량 제한 규제 도입
중국 정부가 이처럼 파격적인 규제를 도입한 ‘표면적인’ 이유는 청소년들의 시력 보호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5세 이상 인구 중 5억명 가량이 난시나 저시력자 인 것으로 집계됐다. 5억명 중 상당수가 청소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된다”고 언급하자 불과 이틀 만에 관련 부서가 전격적으로 규제를 도입한 것이다. 보통 게임 규제는 중독으로 인한 폐해에 초점을 두기 마련인데, 중국 당국의 규제 논리는 게임이 청소년 안구건강에 미치는 유해성에 주목했다.

PC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오래 즐기면 시력이 나빠질 것이라는 논리인데, 개연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TV를 오래 시청하는 자녀들의 눈이 나빠질지 모른다고 부모들이 우려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량 규제는 다른 이야기다. 세계 시장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규제를 내놓은 이유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에서 내놓은 규제 도입 소식을 듣고 “청소년의 시력을 보호하려면 교과서 글씨 폰트 크기를 키우고, 가정에서 TV시청을 줄이도록 지도하는 걸 우선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조소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이었으면 관련 협회나 문화단체가 반대 성명을 내고, 게임사 홍보인력들이 연이 닿는 출입기자들에게 하소연해서 비판기사를 쏟아내게 하고,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으로 대응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은 침묵을 지키는 양상이다. 중국 1위 인터넷 기업 텐센트는 모바일 게임 ‘왕자영요’ 이용자 중 12세 미만은 하루에 한 시간, 12세 이상에서 19세 이하 이용자는 하루 두 시간으로 플레이를 제약했다. 왕자영요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중국 이용자들 취향에 맞게 변형해 영웅이 등장하는 게임이다. 반발하기는커녕 정부 규제 틀을 갖추기도 전에 발 빠르게 순응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규제 도입이 논의되기 전 한국 업체들은 중국 시장 재입성 가능 여부와 그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지난 2016년 하반기부터 한국 게임이 중국에서 서비스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들도 정부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던 상황이었다. 중국 내 게임 심의를 전담하는 기관이 광전총국에서 선전부 국가신문출판서로 바뀌면서 관련 행정이 중단돼 지난 4월부턴 중국 현지 게임도 신규 서비스 허가를 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버 모바일 컨퍼런스의 텐센트 부스 모습. ⓒ뉴시스

 

게임 총량제에 따라 한국 게임 수입 가능성 줄어
당초 관측은 8월부터 심의 행정이 가동되면서 중국 게임이 서비스 허가를 받고, 우리 게임도 해금될 것이라는 쪽이었다. 한국 게임 수입 규제 원인이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 이었는데, 한반도긴장이 완화되며 중국 정부가 규제를 풀어줄 것으로 점쳐졌기 때문이다. 평소 한국 업체들과 제휴하던 중국 업계 인사들도 동일하
게 예측하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신규 허가를 내주기는커녕 각 업체들이 서비스할 수 있는 게임 총량을 제한하는 규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텐센트 직원 수는 4만명 가량이다. 이정도 인력이면 매년 수십 종 게임을 자체 개발해 내놓을 수 있다. 그런데 매년 선보일 수 있는 신규 게임을 5종 정도로 제약하면 제 식구게임을 놔두고, 남의 나라 게임을 수입해 수익을 나눠주면서까지 서비스할 이유가 사라진다. 한국 게임이 중국에서 해금된다고 한들 중국 업체들이 사갈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 같은 규제 도입을 예측케 할 만한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텐센트의 ‘왕자영요’를 두고 ‘인민의 적’이라고 성토하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텐센트가 주력게임 ‘몬스터헌터:월드’ 서비스를 8월 13일에 돌연중단하며 사태가 심각해졌다. 사전가입자가 100만명이 넘은 이 게임을 8월 8일에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틀 만인 8월 10일에 중국 정부가 서비스 중지를 명령했던 것이다.

“게임 내용 중 중국 정부 당국의 정책과 배치되는 점이 있었다”는 게 텐센트가 공식적으로내놓은 해명인데, 실제 정확한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텐센트는 반발하기는커녕 즉각 서비스를 중지하고, 고객들에게 비용을 돌려준 뒤 사과의 의미로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했다.

텐센트 시가총액은 평소 5000억달러(약 560조원) 규모를 유지해왔다.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주가가 하락하기 전이던 연초 기준으론 애플과 구글, MS,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시가총액 빅5 기업 뒤를 이었다. 이 회사 시가총액은 세계 GDP 25위권인 벨기에의 국가 GDP와 대등한 규모다.

텐센트를 통해 유통되는 게임 ‘던전앤파이터’(왼쪽)와 ‘크로스파이어’.

국가주의로 인민의 삶을 관통하는 중국
텐센트가 이 정도까지 성장하는데 중국 정부와의 연줄과 교분, 우리가 흔히 말하는 ‘ 시(guānxì)’가 탄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 회사도 핵심 게임을 지키지 못할 만큼 중국 정부의 반(反) 게임 기조가 확고한 것이다. 이는 텐센트에게 현지 판로를 의탁했던 국내 유력 게임사들도 기존과는 접근 방법을 달
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사이버보안법을 근거로 텐센트 메신저 ‘위챗’에서
채팅그룹을 늘릴 때 허가를 받도록 했고, 채팅방 당 인원을 500명이 넘지 못하게 했다. 또 텐센트가 운영하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텐페이 예치금 전액을 인민은행에 맡기게 하기도 했다.

국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종을 막론하고 중국이 우리의 가장 큰 교역 파트너다보니 가끔 잊게 되는데, 이번 일로 이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고 국가주의가 인민의 삶을 관통하는 나라임을 새삼 실감했다”고 밝혔다. 시진핑이 사실상 종신집권에 성공한 뒤 여론통제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인터넷 기반 플랫폼 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중국 정부가 게임사를 대상으로 법인세 외의 특별세금 부과를 검토한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그간 보호무역을 통해 자국 게임업체들의 경쟁력을 키워줬고, 이 성과를 국부로 편입시키기 위해 고삐를 당기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최근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은퇴를 선언해 화제를 모았는데, 마윈 회장 진퇴가 기업이 사업하기 힘들게 만드는 중국 정부의 국가주의에 대한 염증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중국 진출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배제 고려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 넥슨의 ‘크레이지아케이드 비앤비 모바일’이 텐센트와 수출계약을 맺었고, 펄어비스의 ‘검은사막’은 스네일게임즈와 계약했다. 이들은 수입금지 해제만 기다리고 세월을 보내고 있다. 넷마블 같은 탑 클래스 게임사들은 신작을 개발할 때 한국 버전 완성 전에 중국버전 개발에 돌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 변화는 한동안 국내 업체들이 중국 진출을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배제 하게끔 몰고 가는 양상이다. 신규 게임 수출이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중국 진출작 비중이 절대적인 회사는 그 절대성만큼 리스크를 안게 됐다. 텐센트를 통해 유통되는 ‘던전앤파이터’나 ‘크로스파이어’ 현지 서비스가 중국 정부로부터 무언가 꼬투리가 잡혀 몬스터헌터:월드처럼 중지되기라도 하면 넥슨과 스마일게이트는 적자기업으로 돌변할 수 있다.

중국은 ‘없는 셈’ 치는 게 속편한 시장이 됐는데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어렵다. 다만 중국 시장을 사업전략 비중에서 높게 둬선 안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업체에선 청소년 게임 이용시간 제한보다 총량 제한 규제가 더 신경 쓰일 법하다. 중국 시장이 아무리 크다 한들 서비스 가능한 쿼터를 제약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중국 게임사들이 외국진출로 눈을 돌릴 테고, 가장 가깝고 문화적 동질성이 큰 한국 시장이 타깃이 된다.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모바일게임 매출 상위 50종 중 15종 가량이 이미 중국 게임이다. 중국 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한국과 일본, 대만 같은 동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 국내 게임사들이 한층 더 버거워질 것은 자명하다. 한국 게임은 중국에 못 가는데 중국게임은 물밀듯이 밀려오고 우리는 정부가 이를 막을 방법도 없다.

이전엔 중국 업체가 한국 배급사를 끼고 한국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카카오가 저렴하고 품질 좋은 중국산 게임 수입에 적극나서 수혜를 입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엔 한국 내 유통망을 끼지 않고 직접 진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게임 생태계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방향이다. 이제 중국게임 공급이 더 늘어나고, 기본적으로는 직배(直配)방식 진출이 주종을 이룰 전망이다. 공급이 늘어나는 만큼 중국 게임 판권 가격은 다소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 중견·중소 배급사들은 중국 게임 수입을 통해 활로를 열어가는 방안도 검토할 법하다.

 

<이 기사는 테크M 제66호(2018년 10월)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