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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M리포트] 동영상 시대를 앞당긴 일등공신, MPEG

ECONOMY 경영

2018-10-18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테크M=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바야흐로 동영상 시대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문서보다는 영상, 그것도 디지털 동영상으로 검색하고 학습하고 경험하고 소통한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유튜브가 이를 대변한다. 인터넷 뿐만 아니다. TV 방송과 영화는 물론이고, 개인 동영상 촬영에서도 필름은 사라지고 디지털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동영상 문화가 폭발적으로 확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사람들이 필요해서일까? 아니면 디지털 TV와 스마트폰, 디지털캠코더,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 같은 물리적 매개체가 등장해서일까? 물론 이들이 역할도 중요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MPEG 역할이 지대했다.

MPEG는 Moving Picutres Expert Group을 줄인 말이다. 디지털 동영상과 음성 데이터 압축, 전송, 재생에 관한 제반 기술 표준을 제정하고 관리하는 전문가 기구다. 공식적으로는 ISO(국제표준기구, the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산하 정보기술분야 연합기술위원회 제29부위원회 제11작업반 (ISO/IEC JTC1/SC29/WG11)이다.

1988년 6월에 전문가 25명으로 첫 회의를 소집한 뒤 날로 성장해서 지금은 세계 25개국 200개가 넘는 조직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규모 기구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같은 기업과 기관이 주도적으로 MPEG에 참여해왔다.

 

표준 정립으로 동영상 시장 확대 기여
처음에는 디지털 CD와 DVD를 대상으로 표준 제정 작업을 시작했다(MPEG-1). 이후 HDTV, 스마트폰, CCTV, 인터넷 동영상 시장이 성장하면서 기술 표준도 점점 진화했다(MPEG-2, MPEG-4, MPEG-7, MPEG-21, MPEG-A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음성 또는 동영상 파일 포맷인 mp3, mp4, mpg은 모두 MPEG에서 제정한 표준 체계 중 한 부분이다.

MPEG가 이룩한 가장 큰 성과를 ‘표준(standards)’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MPEG는 원래 어떤 혁신 기술을 직접 개발하려고 하지 않았다. 세부 기술 개발은 MPEG 활동에 참여한 전문가가 소속된 기업이나 연구소, 대학의 몫이었다. MPEG는 이 모든 참여자들이 준수해야 할 기술 표준을 제정하고 관리하는 곳이다.

MPEG는 단순히 기술 혁신을 떠나서 표준 정립에 따라 시장을 얼마나 크게 성장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멀티미디어 콘텐츠 시장은 네트워크와 연결했을 때 가장 위력을 발휘한다. 수많은 종류의 재생기와 입력기, 중계기, 칩, 그리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표준 규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어떤 연구소에서 아무리 동영상 압축 효율이 우수한 알고리즘을 개발해도 시판되는 대다수 셋탑박스에서 이 알고리즘을 지원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만약 유튜브에서 MPEG 표준을 따르지 않는 동영상 규격으로 업로드 하도록 정했다면, MPEG 표준으로 촬영하고 저장한 모든 스마트폰 동영상 파일을 다 놓쳤을 것이다. 더 많은 기기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표준 체계에 부합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콘텐츠를 확산시킬 수 있다.

 

지난해 2017년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중국 마카오에서 열린 제120차 MPEG 미팅 현장. ©가천대 멀티미디어통신및시스템연구실

MPEG가 이룬 성과는 모두 세계의 수많은 전기전자와 통신 전문가가 협업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 중심에 강력한 리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레오나르도 샤릴리오네(Leonardo Chiariglione, 1943~)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어(Piedmont) 지역 토리노(Turin)에서 태어났다. 토리노 지역 공과대에서 전기통신 분야를 전공하기 전까지 그는 고전과 인문학을 위주로 공부했다.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정통했다.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는 물론이고 서구의 주요 언어에 심지어 일본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가 박사학위를 일본 토쿄대에서 취득한 덕분이다.

탁월한 언어 능력 덕분에 그는 MPEG에 참여한 수많은 나라의 전문가들을 상대로 통역 없이 직접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런 능력이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전문가들이 서로 소통하고 융합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 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다국어 역량으로 세계 전문가들을 하나로 묶어내

소년 시절 그는 토리노에 있던 한 미국 회사에서 케네디 대통령 포스터에 적혀 있는 ‘세계 시민(citizens of the world)’이라는 문구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멋진 표현이 단지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세계 각지의 전문가들이 각기 자신만의 영상 기술을 표준으로 주장하면서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글로벌 표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는 종종 말하곤 했다. 인간은 눈과 귀가 어디나 똑같기 때문에 통일된 오디오와 비디오 표준을 지녀야 할 합당한 근거가 있다고.

이런 비전은 그의 적극적인 성격과 대화를 잘 이끄는 능력, 강력한 추진력, 그리고 명민한 두뇌와 결합해 1988년 첫 MPEG 회의 개최 이후 의장격인 컨비너(Convenor)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하도록 했다. 물론 MPEG는 시스템과 멀티미디어 작업구조, 비디오, 오디오, 합성과 자연복합 부호화, 요구사항, 통합, 테스트, 구현, 연락, 합동비디오팀과 같은 수많은 작업 집단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분야 사이에서 이들을 조정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컨비너는 기업으로 치면 CEO 역할과 비슷하다.

그는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0년대 초에 국영통신회사 산하 연구소인 CSELT(Centro Studi e Laboratori Telecomunicazioni SpA)에 근무했다. 이때부터 TV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80년대 중반에 CCIR(the International Radio Consultative Committee)이 글로벌 단일 HDTV 표준을 도출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 그는 1986년에 이 주제를 다룬 국제 워크샵 개최를 주도했다. 이후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조직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87년 어느 날 그는 우연히 ISO와 IEC(국제전기위원회, the International Electrotechnical Commission) 산하의 정지영상표준 작업 집단인 JPEG(Joint Photographic Experts Group)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다. 이 회의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당시 JPEG 의장인 히로시 야수다(Hiroshi Yasuda, 1944~)박사에게 JPEG과 유사한 동영상 표준 작업 집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당시 각광 받던 정지영상 지위가 동영상으로 위축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며 야수다 박사를 설득했다. 야수다박사는 토쿄대 박사과정 동문으로 이미 친분이 있었다. 그 결과 ISO 산하의 공식 기구로 1988년에 캐나다 오타와에서 MPEG가 발족했다.

첫 회의 주제는 CD에 기록된 동영상을 초속 1.4Mb(메가비트) 속도로 읽는 문제였다. 당시 이 기술 분야는 네덜란드 필립스가주도하고 있었다. 보수적인 필립스는 자신의 방식을 밀고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MPEG에서 제정한 표준을 따르기로 수용했다. 그 결과 필립스 CD 플레이어가 아시아 시장, 특히 거대 중국 시장을 석권하는 성과를 보였다.

MPEG의 바람은 상용화 제품이 생산되기 전 단계에서 미리 제반 기술 표준을 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 현장은 더 기민하게 표준을 수용했다. MPEG가 공식적으로 표준 제정 절차를 끝내기도 전에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기판 제작기업, 칩 생산기업들이 MPEG 표준과 호환하는 기술과 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물론 이는 MPEG 활동이 세계 관련 기업에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MPEG 표준화 활동은 자유시장경제에서 최소한으로 부과해야 하는 규제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최소 규제로 최대 효과 내는 디지털 경제

이런 흐름을 파악한 세계 유수 기업과 연구소들이 관련 제품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거나 생산하기 몇 년 전부터 MPEG 표준에 자신들의 기술을 먼저 포함시키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93년 MPEG2 표준이 제정된 뒤 4년이 지난 1997년에야 DVD 제품이 시장에 출시했다. 표준을 따르지 않는 제품을 출시하면 시장에서 사장될 수 있음을 기업들도 잘 알았다.

이후 관련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후속 표준 제정 회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 또 개최 장소도 세계 주요 도시로 확대됐다. 정기회의는 1년에 4차례, 1회에 1주일간 개최한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MPEG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1992년 MPEG2 3개 기술이 채택된 것을 시발점으로 전체 MPEG 표준에서 상당한 기술 비중을 유지하며, 일본, 미국과 함께 MPEG 분야 경쟁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간 서울 (1999년 제47차), 제주(2002년 제59차), 광주(2018년 제121차)에서도 MPEG 회의가 개최됐다.

MPEG는 기술 측면에서 제조사 의사결정에 1차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두 가지 중요한 함의를 낳았다. 첫째 기술 사유(私有)와 공유(共有)의 대립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MPEG가 특허를 관리하는 방식에서 나타났다. MPEG는 관련 필수특허를 보유한 기업이나 연구소를 규합해 MPEG LA(Licensing Administrator)를 조직해서, 관련 특허 풀(pool)을 구성하고 라이
센싱 업무를 관리하고 있다. 필수특허(Essential Patent)는 기술 표준에 따라 제품을 개발하거나 연구할 때 기존 특허를 침해할경우, 이때 침해당하는 특허를 말한다.

MPEG4 비주얼 제품군은 디코더와 인코더, 참여기업으로 구분해서 제품별로, 예컨대 디코더 5만개까지는 로열티가 없지만 이후 생산량에 대해서는 연간 개당 0.25달러(약 280원)을 로열티로 지불해야 한다는 식으로 관련 특허에 대한 상세한 로열티 규정을 마련했다. 이 특허를 이용해 관련 제조와 판매를 하는 기업들은 MPEG LA에 소정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다른 분야의 신기술에서 흔히 보이는 것과 달리 이 MPEG 표준 기술은 단일 주체가 자신만의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원래 MPEG가 표방하는 표준화는 기술 공유를 목적으로 한다. 반면에 특허제도는 기술 사유를 추구한다. 어떻게 보면 표준화와 특허제도는 서로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특허 풀에 기반을 둔 표준화는 서로를 해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기술이 융복합으로 구현되고 호환성이 중요한 전자기기가 늘면서, MPEG LA 방식으로 기술에 대한 사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공유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둘째 시장 자유와 규제 사이에서 가장 적절한 조화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 표준인 MPEG21은 다음 4개 원칙을 준수한다. ①표준의 규격 범위는 가능한 한 최소화한다,②한 기능에 대해서는 한 툴만 정한다, ③시스템이 아닌 툴을 규격화한다, ④엄격한 검증 테스트를 실시한다.

만약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세세한 제조 규격과 개발과정의 세부 지침까지 모조리 지정한다면 개별 기업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어진다. 반면 통일 규격을 강요하지 않아 개별 기업이 알아서 자기 방식대로 제품을 개발하도록 놔두면 시장은 서로 불통하는 제품으로 가득찰 것이다.

불통과 난립은 자연스럽게 조정(Coordination) 필요성을 낳는다. 이 조정이 전체주의와 독재 양상을 띠면 위험하지만 참여자 간 합의로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 조치로 관리되면 훌륭한 수단이 된다. MPEG 표준화 활동은 이런 면에서 자유시장경제에서 최소한으로 부과해야 하는 규제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 기사는 테크M 제66호(2018년 10월)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