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TECH M

뮤지컬 공연장에서 4차산업혁명 기술을 만나다

2018-07-12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최근 뮤지컬에서는 첨단기술을 이용해 판타지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사진은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테크M= 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우리는 날이 갈수록 보들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이른바 스펙터클(Spectacle)과 시뮬라시옹(Simulation)에 익숙해지고 있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영상에 둔감해져 버렸다고 해도 좋을 이 시대는 더욱 큰 스케일과 화려한 볼거리를 요구한다. 영화는 애니매트로닉스 같은 정교한 시각특수효과(VFX) 뿐 아니라 3D와 4D를 넘어 극장 내부의 모든 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며 더욱 완벽한 하이퍼 리얼(Hyper Real) 세계를 구현해내고 있다.

공연예술도 이에 질세라 첨단기술을 활용한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몰이를 시도하고 있다. 뮤지컬은 오래 전부터 당대의 첨단기술들을 발빠르게 접목해왔다. ‘오페라의 유령’은 천정에서 떨어지는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나 무대를 가득 메운 촛불들이 환상적인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아무리 손에 쥐고 있어도 배우가 어떤 상처도 입지 않는 마녀의 ‘파이어볼(Fireball)’이 등장하는 ‘미녀와 야수’ 판타지는 또 어떤가. 심지어 ‘미스 사이공’에서는 헬리콥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공연예술과 기술의 접목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공연은 주로 공연장과 무대를 제작하는 건축기술과 융합해 볼거리를 선사했다. 중세 이후에는 조명을 비롯해 사람 힘으로 움직이는 무대장치 같은 기술을 도입했다. 근대 들어 기계공학과의 만남으로 사람 힘을 기계 동력으로 대체한다. 2000년대에는 통합콘솔 개발과 함께 무대기술 자동화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공연예술에서는 이러한 기술들을 스테이지 기술, 플라잉 기술, 그리고 오브젝트 컨트롤 기술 등으로 나눠 설명한다.

 

관객 참여 유도하는 무대장치 기술

스테이지 기술은 주로 공연예술의 특징 중 하나인 현장성에서 비롯되는 공간적 제약을 보완하는데 쓰인다. 승강기나 턴테이블 등을 활용해 말 그대로 무대바닥 자체를 제어한다. 4중 회전무대를 활용해 거실과 정원, 무덤 등으로 극중 배경에 쉴틈 없는 변화를 주는 ‘드라큘라’와 자연스러운 무대 장면 연결을 보여줬던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뮤지컬에서 볼 수 있는 기술이다.

25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왔던 ‘마타하리’에서는 장면전환에 암전 대신 화려한 첨단 스테이지 기술을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좌석이 고정돼 있어 다양한 각도에서 공연을 볼 수 없는 관객들을 위해 전진, 후진, 회전은 물론 경사조절까지 가능한 데크를 만들었다. 영화 같은 매체 기법을 참조하는 이른바 ‘상호매체성(Intermediality)’을 체험하는 것도 흥미롭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플라잉 기술을 이용해 샹들리에가 관객 머리 위를 지나 무대 앞에 떨어지는 장면을 연출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플라잉 기술은 주로 무대에 역동성을 더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미스 사이공’에 등장하는 헬기가 공중에 뜨는 장면이나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관객들 머리 위를 지나 무대 앞에 떨어지는 샹들리에 장면을 보여줄 때 썼다. 플라잉 기술은 무엇보다 무대를 객석까지 확장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이머시브 시어터(몰입형 연극)’가 각광받는 요즘 트렌드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몇 해 전 가족뮤지컬 ‘피터팬’ 공연에서 영국의 오리지널 플라잉 기술팀이 내한해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대형 무대 장치나 도구를 원하는 곳으로 위치시키는 오브젝트 콘트롤 기술이 있다. ‘조로’에서 육중한 기차가 순식간에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이나 ‘미스 사이공’에서 실물 크기의 캐딜락이 나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뮤지컬과 접목하는 기술이 더욱 다양해지고 첨단화하고 있다. 이는 상업적 성공 여부를 떠나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기를 원하는 시대적 관객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연예술에서의 관객은 ‘제3의 배우’로서 관객이 없는 공연은 존재할 수 없다. 뮤지컬 공연에 쓰이는 4차산업혁명의 주요기술을 살펴보자.

우선 무대에 투사되는 영상은 기본이다. 중년여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주인공 프란체스카가 고향 나폴리를 떠올리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동안 잊은채 살아왔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는 프란체스카의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된다. 3D프로젝션 매핑이 일반화되면서 영상 활용이 더욱 활발해졌다.

‘빈센트 반 고흐’에서는 고흐와 동생 테오 사이에 주고받았던 700여 통의 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영상을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평가다. 캔버스의 그림이 배우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가 하면 고흐가 37세 되던 해 자신의 마지막 봄을 그린 ‘꽃 피는 아몬드 나무’의 꽃잎이 무대 전체에 처연하게 흩날리기도 한다. 실제 고흐의 그림에 등장하는 낯익은 거리도 아홉 곳이나 볼 수 있다. 물론 영상을 통해서다. 이때 무대세트에 정교하게 계산된 굴곡을 주어 영상이 입혀질 때 세트가 움직이는 것 같은 효과를 표현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와 또 다른, 공연의 현장성만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런가하면 팩션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985’에서는 영상을 3면에 투사시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영상 프로젝션 기법에는 한계가 있다. 바로 배우나 다른 오브제를 비추는 조명과 함께 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조명이 밝을수록 영상이 흐릿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것이 발광다이오드(LED)로 표현하는 영상이다. ‘신과 함께-저승편’에서는 무대바닥에 80제곱미터(㎡)의 초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해 염라대왕의 공간을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선명한 영상 속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가 하면 독사가 강물을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그 속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죄수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도 모두 LED영상 덕분이다.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준 무대였던 ‘고스트’의 인기비결 중 하나도 LED영상이다. 가로세로 30센티미터(㎝) 크기의 LED판 7000개로 이뤄진 트러스 구조물에 띄운 영상은 무대 분위기를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시킨다.

 

생동감과 입체감을 극대화시키는 홀로그램

한편 홀로그램은 전용 콘서트장이 속속 만들어지고 가수 김광석의 재현 콘서트가 열리는 등 주로 대중음악에서 선제적으로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뮤지컬의 홀로그램 추격세도 만만치 않다.

‘벤허’의 전차경주 장면에서는 실제 크기의 말 모형이 무대 위를 달린다. 그런데 자칫 어색하기 쉬운 이 장면을 살려주는 것이 바로 홀로그램 영상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원형 경기장의 홀로그램 영상을 모형 말과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생동감을 극대화한다. 2분 장면에 6억 원이 투입되었다고 하니 한번쯤 볼만하지 않은가. 또 뮤지컬 ‘나폴레옹’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워털루 전투 장면에도 홀로그램이 쓰인다. 무대에 투사된 전쟁터 영상에 홀로그램이 더해져 전투신의 입체감을 높였다. 1966년 공연된 ‘살짜기 옵서예’는 고전 ‘배비장전’을 각색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뮤지컬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최근 리바이벌할 때도 3D 매핑(mapping)과 함께 홀로그램을 사용한 바 있다.

뮤지컬에서는 공연 분위기를 한층 올려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이는데 최첨단 기술로 각광받는 드론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 각광받는 드론을 처음 뮤지컬에 활용한 사례는 ‘태양의 서커스’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처녀작 ‘파라무어’다. 연인의 사랑 장면에서 전등갓 10여 개가 공중에서 유영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물론 와이어로 매단 것이 아닌 드론이 전등갓을 뒤집어쓴 것이다. 제작진은 이 드론 군무를 위해 2년에 걸쳐 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1930년대의 혼잡한 도시 뉴욕과 정글로 뒤덮인 스컬아일랜드(Skull Island)를 한 공간에 실감나게 재현한 뮤지컬 ‘킹콩!’ 이 뮤지컬에서는 높이 6미터, 무게 1톤에 달하는 킹콩의 얼굴표정에 사실감을 불어넣기 위해 로보틱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했다. 그런가 하면 재작년에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도리안 그레이’는 등장인물의 화실을 360도 가상현실(VR) 영상으로 구현했다.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각도에서 화실을 볼 수 있도록 해 몰입감을 높였다.

국내에서 몇 가지 첨단기술을 한꺼번에 접목한 대표적인 뮤지컬은 ‘투란도트’다.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인 투란도트를 소재로 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제작한 창작뮤지컬이다. 3년간에 걸쳐 기존 뮤지컬 ‘투란도트’에 3D 프로젝션 맵핑, 키네틱 무대장치 등 지능형 무대공연 기술 ‘인텔리전트 스킨(Intelligent Skin)’을 적용했다. 극대화된 무대연출 효과와 높아진 완성도를 기반으로 해외에서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이 밖에 실제 동물을 대체하는 ‘로봇 액터’ 기술, 소리 정보를 인식하는 센서기술을 바탕으로 음악에 맞춰 화려한 영상의 변화와 빛의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브이제잉’ 기술도 있다. 또 모션 인식 센서로 극중 연기자와 관객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컴퓨터 그래픽, 공연자의 행위에 따라 무대 환경이 바뀌거나 관객 참여에 좌우되는 멀티엔딩 등 새로운 형태의 뮤지컬도 등장할 전망이다. 조만간 오페라에서처럼 뮤지컬에도 인공지능 로봇 배우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기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자칫 공연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때로 독특한 기술 효과만이 관객에게 각인돼 정작 공연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쉽게 복제될 가능성이 큰 디지털기술로 인해 표절과 같은 지적재산권 피해에 대한 걱정도 상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발전가능성 큰 디지털 기술

하지만 첨단기술과의 접목은 이제 시작단계고 향후 발전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공연예술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주요한 방안 중 하나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 해야 한다. 이미 디지털 영상 기술은 저렴한 비용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소규모 실험극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특히 중소 공연단체는 대규모 무대장치 설치에 따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이를 디지털 기술로 대체하려는 경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일찍이 예술 장르 간 융합을 주장했던 바그너(Richard Wagner)의 ‘종합예술이론’이 첨단 4차산업혁명의 주요기술로 본격 실현되리라는 전망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3D 프로젝션 맵핑과 키네틱 무대장치 같은 지능형 무대공연 기술인 ‘인텔리전트 스킨(Intelligent Skin)’을 적용한 뮤지컬 투란도트의 한 장면. [출처: 플리커]

물론 가뜩이나 어려운 공연계가 첨단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를 시간지체 없이 실시간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어느덧 첨단기술이 공연의 성패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부상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순수(본격)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뮤지컬에서는 특히 그렇다. “기술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는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겸 매직 이펙트 크레이터 폴 키에브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그의 말은 여전히 기술 사용을 전제로 한다.

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주요기술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공연장 나들이를 권한다.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하는 공연들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는 극히 일부다. 뮤지컬을 공연하는 극장에 가면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첨단기술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더욱이 한동안 라이선스 뮤지컬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깨고 첨단기술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국내 창작뮤지컬이 많아지고 있는 현상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뮤지컬에서의 첨단기술 접목사례가 연극, 오페라, 무용, 전통예술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홀로그램 영상을 사용한 세계 최초의 4D공연으로 알려진 ‘디지로그 사물놀이’ 같은 작품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본 기사는 테크M 제63호(2018년 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