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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자화상을 그리는 101가지 방법

TECHM REPORT 테크 품은 예술

2018-05-30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엑스레이(X-Ray)작가로 유명한 영국의 닉 베세이(Nick Veasey)의 작품 ‘할리 데이비슨 72 라이더(Harley Davidson 72 Rider)’

[테크M=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가장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은? 지인의 행복해 보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볼 때. 최근의 한 설문조사 결과다. 외모 콤플렉스, 지인과의 갈등,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취업에 실패할 때…. 이 모든 순간보다 누군가의 SNS를 보며 가장 불행해 하는 시대.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물론 20대 대상의 설문이긴 하지만 30대를 비롯한 중장년들도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소비자학자 김난도 교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장 좋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SNS는 서로가 서로를 보며 부러움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매체’라고 말한 바 있다. 소셜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자존감은 깊게 파이고 고독은 깊어간다. 다양한 유익을 가져다주는 기술 발전의 어두운 이면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을 강화하는 시대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오늘날 우리의 존재 자체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른바 존재론(Ontology)의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다. 우리는 그동안 자연, 혹은 동물과 구분되는 존재였다. 교육의 출발점 또한 동물과의 ‘구별 짓기’였다. 계몽주의의 목표도 좀 넓게 말하면 근본적으로는 인간을 자연 상태와 구별되게 하는 것이었다. 문화예술 역시 자연 상태의 인간을 뛰어넘어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배경으로 추앙받으며 동경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존재론적 고민은 그 방향성을 달리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 합성생물학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기하급수적(Exponential) 발전 때문이다. 뛰어난 암기력뿐 아니라 분석력과 사고력을 갖춘 존재,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창의성의 ‘성역’마저 호시탐탐 넘보는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이제는 ‘동물’이 아닌 ‘기계’와 구별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우리의 주된 관심사가 될 듯하다. 낮아지는 자존감과 존재론적 고민의 먹구름을 함께 몰고 온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거센 지금의 우리 시대를 ‘자신에 대한 성찰을 강화하는 시대’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여행을 떠나는 등 사람마다 ‘자아성찰’을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고 또 고민한다. 최근 만난 한 미술관장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하는데 자화상을 그리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창의성도 기르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도 좋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번잡스런 일상 속에서 자화상 그리기가 가능할까.

자화상은 말 그대로 자신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다. 얼굴은 ‘얼’ 즉, 영혼이 살고 있는 굴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영혼을 드러내는 그림이 곧 초상화인 셈이다. 서양에서도 그 개념은 유사하다. 초상화를 뜻하는 영어 Portrait는 ‘드러내다’라는 뜻의 라틴어 Protrahere에서 기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전부터 사람들은 초상화를 좋아했다. 서양에서 인물화는 다른 그림에 비해 한층 더 대접을 받았다. 풍경화나 정물화에 비해 전통도 있을 뿐 아니라(서양에서는 바로크시대가 초상화의 전성기라 불린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 또한 다른 그림 장르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에 세워진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영국에서는 19세기 중엽 국립초상화미술관이 세워졌고, 석유회사 BP는 매년 초상화상(BP portrait award)을 수여하고 있을 정도이다.

당대의 권세가들일수록 초상화를 남긴 경우가 많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또는 후일에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초상화를 그려 걸어뒀다. 자신의 과시를 위해 그리다 보니 개성이 듬뿍 들어간 재미있는 초상화도 눈에 띈다. 그 중 16세기의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가 그린 ‘이중 이미지’의 초상화는 특히 유명하다. 가까이 보면 야채와 곡물, 과일들의 조합이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사람의 얼굴이다.

특이하기도 하거니와 일견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초상화의 모델이 된 인물이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루돌프 2세라는 점이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자신의 ‘용안’이 온갖 식물의 조합으로 그려진 것을 본 황제의 반응은 어땠을까? 화를 내기는커녕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그는 궁정화가 아르침볼도가 풍성한 수확을 거둔 황제의 업적을 칭송하려한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이다(이명옥, 2008).

마크 퀸(Marc Quinn)이 자신의 혈액을 이용해 만든 자화상 조각 ‘셀프(Self)’

기술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초상화

이러한 초상화 역시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모하고 있다. 사진을 이용한 초상화는 물론 곰팡이를 이용해 만든 초상화가 있는가 하면 엑스레이 초상화도 등장했다. 영국 출신 작가 닉 베세이(Nick Veasey)는 엑스레이(X-Ray) 작가로 유명하다. 그에게 오늘날의 세상은 너무나 피상적이고 천박하다.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엑스레이야말로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독특한 초상화를 제작하는 또 한 명의 작가로 마크 퀸(Marc Quinn)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유전자 초상화를 만드는 아티스트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DNA를 채취해 초상화를 제작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유명해진 것은 혈액을 이용해 만든 자화상 조각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자신의 혈액을 응고시켜 주기적으로 초상 조각 ‘셀프(Self)’를 만드는 중이다.

어찌 보면 섬뜩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본질적 내면을 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자화상을 그리는 목적 역시 초상화와 비슷할 터이다. 그러나 자화상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려진 초상화와 달리 아무래도 자기 과시나 자기 기록보다는 자아성찰의 비중이 높다. 반 고흐, 렘브란트, 알브레히트 뒤러 등 위대한 예술가들은 많은 자화상들을 남겼다. 인공지능 화가의 대표적 사례인 넥스트 렘브란트를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삶의 황혼기에 파산한 자신을 그린 작품이다. 힘든 현실과 자신의 예술적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귀가 잘린 섬뜩한 자화상으로 유명한 고흐는 30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본인을 그렸다는 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화상을 보다 보면 위대한 화가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려는 예술가의 고뇌 말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누구나 그림을 그렸다. 아빠와 엄마를 그리고, 집과 나무, 하늘과 땅을 그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부분 자신의 모습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러고 보면 자신에 대한 성찰은 어린 시절 그것도 유아기로 갈수록 더 많이, 더 자주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화상 그리기에서 멀어졌다. 잘 그리지 못한단 이유로 혹은 부끄럽다는 이유로. 자화상 그리기는 사진 찍기로 대체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청소년 또는 청년기의 일이다. 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고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우리는 사진 찍기마저도 귀찮게 여기거나 계면쩍어하기 일쑤다. 현대인은 늘 바쁘다. 재능의 유무를 떠나 그림 그릴 여유가 없다. 그림 그릴 도구를 들고 다니기는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언제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자화상도.

도구는 가상현실(VR)을 활용한 틸트 브러쉬(Tilt brush)다. 국내 최초의 VR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불리는 염동균을 비롯해 이재혁, 피오니 등 사용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중이다. 연필, 지우개, 그림물감이 없어도 틸트 브러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릴 수 있고 쉽게 지우기를 반복할 수 있다. 자신을 표현하다가 때로는 환상적인 효과를 추가하는 작은 일탈(?)을 감행해 볼 수도 있다. 또한 완성된 작품이 아닌 그림 그리기 과정을 지켜보는 ‘라이브 드로잉’도 새롭게 조명 받으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을 기세다. 마음이 내키면 얼마 전 25시간 동안 쉬지 않고 틸트 브러쉬 작업을 해 기네스북에 올랐던 데렉 웨스터만이라는 사람의 기록에도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성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법이니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사진기를 들고 나를 찍어보자. 물론 아마추어에게 사진 자체로 자신을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다양한 대안들이 생겨나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사진을 원하는 방식의 그림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도 그 중 하나다. 가령 플리즈마(Prisma) 애플리케이션은 사진을 반 고흐나 피카소 풍은 물론 아름다운 장식이나 패턴으로 바꿔준다. 자신의 사진을 원하는 장식 또는 패턴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아르침볼도의 예술행위와 흡사하지 않은가.

 

또다른 자화상, 셀카 찍기

스마트폰을 이용한 셀카 찍기도 일종의 자화상 작업이다. 가장 큰 장점은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을 찍고 또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찍는 순간 ‘뽀샤시’ 기능이 첨부된 앱을 사용하기도 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 셀카의 단점을 해결해주는 ‘셀카봉’도 사용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예쁜 표정을 지으면서 가장 적합한 각도를 고려하며 스마트폰의 카메라 버튼을 눌러대는 소녀의 감성을 유치하다고만 치부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셀카가 어찌 청소년들만의 전유물이랴. 중장년들에게도 셀카는 일상이 됐다. 단순히 예쁜 것을 자랑하고 드러내기 위해서 셀카를 찍는 것은 아닌 듯하다. 현재를 기념하기도 하고 지금의 기분상태를 표현하기도 하는 일종의 거울보기이다. 인상은 어떤지, 기분은 어떤지, 지쳐 보이는지, 행복해 보이는지, 기쁜 표정인지 슬픈 표정인지, 희망에 차 있는지 슬픔에 젖어 있는지…. 우리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확인하고 재차 자신을 들여다본다. 셀카찍기는 자신을 성찰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다만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은 자제하자. 다른 이의 부러움을 살 수도 있으니.

예술민주주의(Arts by All) 시대다. 엘리트예술을 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향유토록 하는 예술의 민주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나 예술을 능동적으로 직접 해보는 것, 참여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자화상 그리기 또한 직접 해보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예술민주주의의 징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손가는대로 아무데나 자신을 그려보자.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더하고 있는 기술을 활용하면 그리 어렵지도 번잡스럽지도 않다. 바쁜 일상에 매몰돼 가는 나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빠르게 늘고 있다. 무너져가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 존재론의 고민에 답을 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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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손가는 대로 아무데나 자신을 그려보자.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더하고 있는 기술을 활용하면 그리 어렵지도 번잡스럽지도 않다. 무너져가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 존재론의 고민에 답을 구해보자.

 

<이 글은 테크M 제61호 (2018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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