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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소버린·페트로… 정부가 발행하는 암호화폐 속속 등장

LECTURE NOTE 블록체인 NOW

2018-04-05장윤옥 더블록체인 대표

마셜제도는 이스라엘의 금융 기술 스타트업 니마(Neema)와 협력해 SOV를 발행하고 있다.

[테크M=장윤옥 더블록체인 대표] 암호화폐의 상징으로 유명한 비트코인은 2008년 세계 경제를 뒤흔든 금융위기의 충격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위상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정체불명의 사람이 프로젝트를 제안했을 때는 물론이고 소스 프로그램을 배포했을 때만 해도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몇몇 별난 사람의 장난감 정도에 머물렀을 수도 있었을 이 발명품은 위기를 초래한 정부와 금융가 대신 중앙에서 통제하지 않는 화폐시스템이란데 매력을 느낀 사람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금융위기에 이르게 한 금융가 고위층의 도덕적 해이,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정부의 정책에 분노한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전파자가 된 것이다.

법정화폐 위협하는 암호화폐들

이를 감안하면 암호화폐는 처음부터 정부나 기존 시스템과는 잘 지낼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인지도 모른다. 암호화폐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만큼 법정화폐의 지위가 흔들리게 되고 통화조절이나 물가관리 등 중앙은행의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부나 기존 시스템과의 형평성 또는 규제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가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으며 이같은 논쟁은 앞으로 더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암호화폐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가는 국가나 정부마다 각기 입장이 다르다. 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매우 다양해 쉽게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정부들은 ‘암호화폐의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 는 명분을 내세워 강한 규제를 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규제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데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생태계가 가져올 혁신의 영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섣불리 규제의 칼을 휘둘렀다가 오히려 블록체인 기술경쟁과 암호화폐 경제에 혼자만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빠져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규제의 칼을 얼마나 어떻게 쓸지를 놓고 고심 중인 가운데 최근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아예 국가 암호화폐를 선보이는 곳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민간 중심의 암호화폐가 국가의 권력과 화폐 시스템을 위협하기 전에 이들의 장점을 도입, 적극적인 방어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전략인 것. 또 암호화폐의 화폐성에 주목한 국가들은 자국 경제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앞장서 암호화폐 발행에 나서고 있는 국가나 정부가 대부분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거나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한 곳이 대부분이어서 분산과 자유를 추구하는 암호화폐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장 과감한 행보를 보인 곳은 태평양 중서부에 있는 섬나라 마셜제도공화국이다. 마셜제도는 자체 암호화폐 ‘소버린(Soveriegn)’을 발행, 미국 달러와 함께 법적 화폐로 통용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화폐의 단위는 SOV로, 일반적인 암호화폐처럼 암호화폐 공개(ICO)를 하며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2400만개로 공급을 제한할 계획이다. 2400만개의 토큰은 마셜 군도의 마을 24개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셜제도는 코인 발행을 위해 이스라엘의 금융 기술 스타트업 니마(Neema)와 협력, ‘야크웨(Yakwe)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처럼 누가 이용하는지 알기 어려운 퍼블릭 암호화폐와 달리 SOV를 이용하려면 사용자가 먼저 블록체인 상에서 인증을 해야 사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비트코인이 주류 금융시스템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요인 중 하나인 익명성을 제거했다.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대신 SOV는 일반 화폐와 똑같은 지위를 갖게 되고 법정화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확실하게 사용이 보장된다. 마셜제도는 조만간 SOV를 사전판매하겠다고 밝혔는데 ICO 모금액의 절반은 마셜제도의 국립신탁자금에 제공할 예정이다. 또 20%는 2차 대전 이후 발생한 핵실험 피해 주민들의 복지와 보상금으로 쓸 계획이다. 미국은 그동안 연간 6000만 달러를 핵 실험 피해보상금으로 마셜제도에 지급했으나 오는 2023년부터는 이 금액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마셜제도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 암호화폐 발행에 나선 것이다.

240만개의 SOV는 주민에게 무상 배급하고 국제 투자자에게는 600만개의 SOV를 판매할 방침이다. 미국 정부도 미래 세대를 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이 펀드에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마셜제도의 의회가 최근 이를 승인함에 따라 마셜제도는 세계최초로 암호화폐에 법정화폐 지위를 부여한 국가가 됐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암호화폐 발행은 마셜제도가 처음이 아니다.

베네수엘라, 암호화폐를 국채 수단으로

베네수엘라는 지난 2월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베네수엘라산 원유 가격에 연동된 ‘페트로’의 사전 판매를 실시했다. 베네수엘라 측은 이 코인의 사전판매 첫날 7억3500만 달러를 모았다고 밝혔다. 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사전등록을 마친 이들 중 40.8%는 달러화(USD)로, 약 6.5%는 유로화(EUR)로 페트로 구매를 희망하고 있다”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통해 구매를 원한 사람은 각각 33.8%와 18.4%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1페트로가 자국산 원유 1배럴(약 159ℓ)과 똑같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60억 달러(약 6조4000억원) 규모인 1억 페트로를 발행한다는 방침이다. 또 2월 21일에는 페트로 외에 금에 기반한 암호화폐 ‘페트로 골드(petro gold)’도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마두로 대통령은 금과 연동되는 암호화폐 ‘페트로 골드’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페트로 골드는 페트로보다 더 강하고 페트로 가치를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가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사전 판매한 암호화폐 페트로.

베네수엘라가 암호화폐 발행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미국의 제재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암호화폐가 미국의 금융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암호화폐가 살인적인 인플레를 완화시킬 구원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지금 진퇴양난의 경제상황에 처해 있다. 물가는 지난해에 비해 무려 4000%나 올랐고 볼리바르화 가치가 폭락해 생필품을 수입하거나 국가 채무를 갚을 수도 없다. 외화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 수출도 저유가와 생산량 감소로 급감한 상황이다. 미국의 금융제재로 돈을 빌려올 수 없는 상황에서 돌파구로 암호화폐에 눈을 돌린 것이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 야권은 마두로 대통령의 암호화폐 발행이 ‘불법 국채’라고 비난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지불 능력과 투명성에 의문을 표하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아직도 초기투자자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페트로가 어떤 블록체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작동하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한때 이더리움과 넴(XEM)이 언급되기도 했지만 넴 측은 “페트로나 베네수엘라 정부와 관련 없다”고 발표했다.

과연 베네수엘라의 페트로가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지만 베네수엘라의 암호화폐 발행이 다른 나라의 암호화폐 발행에 힘을 보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페트로의 성공에 힘입어 외부 자금 유치 가능성에 눈을 뜬 더 많은 국가들이 암호화폐 발행에 나설 전망이다.

이란은 최근 정보통신부 장관 명의의 발표를 통해 국영은행을 통해 암호화폐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터키 역시 ‘투르크코인’(Turkcoin)‘ 또는 ‘국가 비트코인(national Bitcoin)’이란 정부 차원의 암호화폐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캄보디아는 엔타페이(Entapay)라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해당 사이트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캄보디아 왕립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쉽고 편리한 신원보증, 퀀텀 암호화 기술 기반의 보안, 다양한 디지털 통화를 지원하는 거래, 오프라인으로 확장할 수 있는 지불기능 등을 갖는 지불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엔타페이 측은 이를 통해 비자카드를 대체할 지불 결제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캄보디아는 일본의 블록체인 신원확인 회사와 협력, 지불 서비스를 위한 분장원장 기술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ICO와 암호화폐 거래를 전격 금지하고 있는 중국 역시 내부적으로는 암호화폐 발행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얼마 전 중국 인민은행이 암호화폐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시범운영까지 마쳤다고 보도했다.

‘암호화폐는 대세’ 문제는 수용시기

지난 3월 9일(현지시간)에는 중국 인민은행 저우샤오찬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발전은 필연적”이라며 암호화폐 발행 추진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단지 “디지털화폐는 실물경제를 돕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현재의 금융질서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고 밝혀 분산을 추구하는 퍼블릭 암호화폐와는 다른 방식이 될 것임을 암시했다.

러시아도 국가 암호화폐 발행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가 암호화폐인 ‘크립토루블’ 발행을 지시했고 암호화폐를 규제할 법제도의 마련에 나섰다.

국제 금융기관은 물론 미국까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암호화폐를 발행할 때가 올 것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이미 지난해 9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각국 금융당국이 언젠가 거래 편의성 등을 이유로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결제은행은 “암호화폐 시장의 급성장은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해칠 위험이 있다”며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의 특성을 파악하고 직접 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역시 지난해 11월 뉴저지 럿거스대학 연설에서 '비트코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 “지금 단계에서 말하기는 이르지만 연방준비제도가 디지털 화폐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유럽에서도 그리스 금융위기를 계기로 ‘유로코인’ 같은 아이디어가 주목받고 있다. 국가간 대응이 어려운 법정화폐 대신 유로코인을 활용해 보다 유연한 통화정책과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영국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암호화폐는 미래 금융부문의 잠재적 혁명”이라고 평가했고 국제통화기금(IMF) 리가르드 총재 역시 앞으로 법정화폐는 암호화폐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 스위스와 스웨덴, 네덜란드, 캐나다, 핀란드,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 많은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암호화폐와 관련된 이슈에 주목하면서 자체 암호화폐 발행과 관련한 이해 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다.

정부가 암호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베네수엘라처럼 단순히 외화를 유치하는 것 외에도 많은 이점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연방코인이나 유로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발행한다면 이용자의 모든 거래내역을 정부의 블록체인에 기록, 범죄자들의 자금 은닉이나 돈세탁을 막을 수 있다. 또 손쉽게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는 등 보다 유연한 통화정책도 가능해진다.

결국 문제는 시기와 기술이다. 당장 지금의 기술으로는 각 국이 원하는 수준의 암호화폐 구현이 어렵다. 또 다른 화폐와의 경쟁을 어떻게 볼 것인지 하는 것도 문제 거리다. 만약 각국 정부가 국가 암호화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하면 대규모 통화전쟁과 함께 다양한 규제 정책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60호(2018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