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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와퍼가 말해주는 망 중립성 논란

2018-03-23공동기획=한국인터넷진흥원

[테크M = 이석원 벤처스퀘어 편집장]지난 1월 24일(현지시간) 패스트푸드 브랜드인 버거킹(Burger King)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 동영상 하나를 올렸다. 와퍼 중립성(Whopper Neutrality)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영상11은 곧 화제가 됐고 400만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다.

물론 이 영상이 햄버거 하나만 말해서 화제가 된 건 아니다.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그러니까 통신망 사업자가 모든 콘텐츠를 차별 없이 똑같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망중립성을 철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햄버거로 비유, 알기 쉽게 풍자하면서 설명한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망 중립성 철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중요하고 논의 중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정작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선 답하지 못한다. 이어 햄버거 매장에서 점원이 1번 번호표를 갖고 있는 사람을 부른다. 하지만 1번보다 먼저 주문한 98번 번호표를 보유한 사람은 호출하지 않는다. 점원에게 “98번은 아직 멀었냐”고 질문하지만 냉담한 반응만 돌아온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답이 돌아오자 왜 그러냐고 따진다. 이유는 와퍼의 원래 가격인 5달러보다 더 많은 26달러를 지불해 번호표는 더 늦었지만 더 빨리 햄버거를 받은 것.


이 영상에선 MBPS(Making Burgers Per Second)라는 기준을 만들었다. 1초에 만들 수 있는 햄버거 개수를 수치화한 것이다. 속도에 따라서 가장 저렴한 건 4.99달러, 가장 비싼 건 25.99달러를 지불해야 와퍼를 구입할 수 있다. 똑같은 와퍼라도 얼마를 내느냐에 따라 느린 속도로 주문을 받는다는 얘기다. 돈이 없으면 5달러짜리를 구입할 수밖에 없다. 반면 26달러를 내면 뒤늦게 주문했더라도 빨리 받을 수 있다. 물론 영상의 마무리는 인터넷은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폐지 결정된 美 망 중립성 원칙 둘러싼 논란
와퍼 중립성이 화제가 된 건 미국에서 연방통신위원회 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방침에 따라 망 중립성 원칙 폐기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미국에선 버라이즌이 몰래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통신 대역폭을 의도적으로 줄였다가 문제가 된 일이 발생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플랫폼을 이용할 때 통신 속도가 떨어진다는 건 편의성 저하로 이어진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자들이 찾아낸 바에 따르면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VPN을 이용할 때보다 3배 더 속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이 같은 결과에 언론 취재가 이어지자 버라이즌은 임시로 진행한 새 영상 최적화 시스템 테스트 중이었다면서 대역폭 제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성명을 냈다. FCC는 지난 2015년 오바마 행정부 당시 망 중립성 원칙을 채택한 바 있다. 망 중립성 원칙은 모든 통신 사업자가 모든 데이터를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공공성을 강조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부터 자율 경쟁이 인터넷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버라이즌이나 컴캐스트 같은 주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nternet Service Provider) 역시 이런 이유를 들어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2017년 당시 문제가 된 영상 최적화(?)에 대해 버라이즌은 2015년 망 중립성 원칙에서 예외인 합리적인 네트워크 관리라고 주장했다. 버라이즌의 설명을 빌리면 영상 최적화 시스템은 영상이라는 특정 콘텐츠를 위한 관리 방식이지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특정 대상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모든 영상 콘텐츠에대해 제한을 건 ‘평등’한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망 중립성을 둘러싼 문제는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망 중립성 반대파인 아짓 파이(Ajit Pai)를 FCC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FCC가 지난 2010년 발표한 열린 인터넷 원칙(FCC Open Internet Order 2010)에 반대하고 있다. 2010년 열린 인터넷 원칙에 따르면 네트워크 사업자는 투명성과 차별 금지, 차단 금지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말하자면 네트워크상에서 특정 콘텐츠나 사업자를 차단하거나 혹은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또 서비스 가격 책정 방식이나 망 운영 방식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2010년 열린 인터넷 원칙 발표 이전에도 컴캐스트가 동영상 P2P 사이트인 비트토렌트의 서비스를 일부러 느리게 하거나 차단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발표 이후인 2014년에는 버라이즌이 열린 인터넷 정책에대해 제소를 하기도 했다. 당시 법원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 사업은 정보 제공업으로 분류되어 있는 만큼 법률상 통신 사업이 아니라고 밝혀 버라이즌의 손을 들었다. 그러자 FCC는 다시 2015년 인터넷 통신 서비스 사업자를 법률상 공중통신사업자(common carrier)로 분류한 새로운 열린 인터넷 정책을 발표한다. 이렇게 논란이 계속 되다가 2016년 미 연방항소법원은 망 중립성에 대한 근거 법령이 합법이라고 판결해 논란은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고 앞서 밝혔듯 아짓 파이가 FCC 위원장으로 들어선 이후인 지난해 12월 14일(현지시간) 결국 찬성 3, 반대 2표로 망 중립성 원칙 폐지를 결정한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망중립성 규제가 기업의 투자 의욕을 줄이고 통신 품질에도 영향을 주는 등 미래에는 정보 격차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 결정에선 국가가 망 중립성을 유지하는 자체 규정을 마련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FCC 측은 이 같은 근거로 망 중립성 규제를 도입한 2015년 이후 ISP의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2015년에는 3%, 2016년에는 2% 줄었다는 조사 결과도 들었다. 다만 이 같은 FCC의 주장에 컴캐스트의 경우 같은 기간 설비 투자를 확대했고 투자를 줄인 기업 역시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끝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망 중립성 원칙 존재 이유는 공정성·표현의 자유
망 중립성이란 인터넷 콘텐츠를 공정하게 다뤄야 한다는 이념을 강조하는 것이다. ISP가 특정 콘텐츠에 대해 유리하거나 혹은 불리하게 취급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망 중립성 원칙은 특정 콘텐츠를 (마치 와퍼처럼) 더 유리하게 전달하거나 차단하는 식으로 자의적인 서비스를 운용하게 하는 걸 금지한다.

만일 이번 FCC의 조치대로 바뀐다면 와퍼 중립성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요금을 더 내는 기업이 있다면 콘텐츠를 더 빨리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추월차선을 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이라면 콘텐츠 전송 속도를 크게 늦출 수 있다. 앞서 버라이즌이 그랬듯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속도를 제한해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망 중립성 원칙이 사라지면 빠른 차선을 이용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대기업이라면 이 같은 비용을 물론 부담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규모 기업이라면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5달러짜리 와퍼 밖에 살 수 없는 기업은 26달러를 지불한 기업과 공정한 경쟁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이번 망 중립성 원칙 파기는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정권이 바뀌면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많다. 망 중립성 원칙을 깨는 건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막고 결국 인터넷 규제를 강화하려는 트럼프 정권의 정책과 부합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후폭풍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FCC의 이 같은 결정이 나오자 곧바로 21개주 검찰총장을 비롯해 워싱턴DC 검찰총장, 모질라재단 등 수많은 공익 단체가 FCC의 망 중립성 폐지 결정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제기된 소송을 통해 이들은 FCC의 망 중립성 원칙파기는 자의적 충동에 따라 재량권 남용 우려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개방형 인터넷이 민주적 과정에 결정적으로 중요한데 망 중립성을 없애는 건 ISP를 게이트키퍼로 바꿀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요 인터넷 기업 상당수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깃허브의 경우 망 중립성이 현재 사용 중인 인터넷의 기초이며 통신 유형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성을 근거로 한다고 강조한다. 망 중립성이 사라지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 인터넷이 통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 뿐 아니라 아마존과 페이스북, 구글 3사는 인터넷협회(Internet Association)를 통해 FCC의 이번 정책결정이 연방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소송에 참여할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애플의 경우 망 중립성을 지지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있다.

물론 이런 반대와 소송에도 불구하고 FCC의 망 중립성 관련 결정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위법 입증이 쉽지 않고 FCC가 인터넷 관련 규제에 대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는 점 등이 이유다. 망중립성 정책을 유지할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의회를 들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등도 망중립성 폐지 무효화를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 당시와 달리 양원 모두 공화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인 만큼 의회에서 망중립성 유지를 위한 법률 통과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망 중립성 원칙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일부에선 망 중립성 원칙을 인터넷판 오바마케어(Obama care)로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정략적으로 보이는 접근보다는 건전하고 투명한 인터넷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접근이 절실하다.

물론 ISP 사업자 입장에선 대량 트래픽을 발생시키거나 혹은 미미하더라도 똑같이 콘텐츠를 취급해야 하는 탓에 인프라 비용이 높아지는 것 자체를 불이익으로 간주할 수 있다. 반면 이미 인터넷은 사회 인프라 측면이 강하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정성이라는 관점과 표현의 자유라는 게 망 중립성 원칙의 존재 이유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와퍼는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테크M, 한국인터넷진흥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