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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암호화폐가 중요한 플랫폼 기술인 이유

심층진단: 블록체인의 진화방향

2018-03-09이윤수 IT컬럼니스트

[테크M =이윤수 IT컬럼니스트]플랫폼은 다양한 서비스(생산자)와 다양한 사용자(소비자)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거래를 하는 장소(시장)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디지털’의 특성은 개방성이고, 컴퓨터와 인터넷은 우리 시대 플랫폼을 특징짓는 위대한 두 발명품이다. 이 기술의 벡터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권력이 분산되고 자유가 확산된다.

컴퓨터는 대중에게 저렴하고 고품질의 생산과 소비의 도구를 제공해 생산자 문턱을 낮추고 확산시켰으며, 개개인의 소비 기회를 극대화했다. 또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일방적인 전달(생산→소비) 이 아닌, 거대한 양방향(생산↔소비) 미디어를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플랫폼은 폭발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용광로 같은 자유 시장이다. 비단 콘텐츠 시장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세계를 포함한 상상력 한계 내의 모든 것은 정보로 번역된다(물건 거래, 음식 배달, 숙소 대여, 부품 프린트 등). 누구나 무엇이든 자유롭게 생산하고 거래하는 개방된 시장이 디지털 플랫폼이다.

거대 디지털 플랫폼들을 둘러싼 논란 확산

그러나 과연 개방된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에게 권력을 분산시켜 나눠 주고 더 많은 자유를 주고 있나? 안타깝지만 이 개방된 땅에서도 권력은 여전히 집중돼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 플랫폼을 독점했고, 핵심 소프트웨어(오피스 제품들, 인터넷 브라우저 등) 시장을 장악했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거인 플랫폼들은 지구 전체를 뒤덮으며 뿌리를 내리고 사용자 트래픽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럼 어떤가? 우리는 훌륭한 고품질 서비스를 대부분 무료로 받는다. 기술 발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그런 혜택을 주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다. 다양성이 없는 시장은 건전한 경쟁이 없는 죽은 시장이다. 그래서 독과점 규제를 한다. 그런데 디지털 기업들은 국경 없는 시장에서 활동하는 데다 사업 영역 구분도 모호해 효과적으로 규제되지 않는다. 게다가 오히려 디지털 산업에서 선점과 네트워크 효과 등 독과점을 조장하는 사업 전략이 칭송받는 분위기다. 물론 언제든 새로운 스타트업이 혜성같이 등장하여 기존 거인들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그러했다. 하지만 알고리즘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사용자 행태를 분석해 최대한 자기 플랫폼에 묶어두는 힘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사용자들은 무료와 편리함을 얻기 위한 대가로 자신의 데이터를 구글과 페이스북에 기꺼이 헌납하고 있다. 그 데이터는 다시 알고리즘 기계에 들어가 거인 플랫폼이 사용자 트래픽의 가치를 극대화하도록 활용되고, 이를 기반으로 플랫폼은 더욱 강력해진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이득의 실체는 무엇인가? 무료+광고=관심 경제다. 즉, 우리는 희소 자원인 ‘관심’을 판다. 우리가 얻는 것은? 재미, 그게 끝이다. 정보도 얻는다고 강변할 수 있다. 일부 정보는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글과 페이스북을 돌아가게 하는 건 그런 진지한 지식이 아니다. 우리의 시선을 최대한 확보하고 거기에 광고를 붙이는 과정(보통 마케팅이라 부른다)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대부분 충격적인 뉴스 (제목), 눈요기, 엔터테인먼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 과정에서 우리 관심 데이터가 차곡차곡 플랫폼에 쌓이고, 그것을 알고리즘 기계에 넣어 돌리면, 강화된 관심 중독 처방전이 나온다. 우리는 공짜 서비스를 선이라고 여기고, 소중한 우리 관심 자원과 데이터의 가치를 너무 과소평가해 내던지고 있다. 재미를 얻기 위해 소비한 관심 자원(=시간)의 기회비용을 생각해 보라. 알다시피 기업 제일 목표는 이윤 극대화이지 절대 사회 공헌이 아니다. 알고리즘은 100% 이윤 극대화에 사용된다. 필요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을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불법으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해 왔다는 뉴스는 새롭지도 않다.

수백조 원에 달하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는 사실 수십억명의 사용자가 스스로 내던지는 그런 가치들로 채워져 있다. 사용자가 기업 가치의 핵심인데도 강화된 관심 중독 처방 말고는 사용자에게 어떠한 보상도 지분도 주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가 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일 수 있다.

이런 정보 기술의 오용 또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캐시 오닐(Cathy O’Neil)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불평등을 프로그램하고 있는 대량살상 수학 무기라고 경고한다. 팀 오라일리(Tim O’Reilly)는 우리가 글로벌 엘리트의 손아귀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역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순간에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디지털 생태계를 관통하고 있는 속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을 일군 디지털 선구자들은 자유의 기치 아래 오픈 소스와 오픈 플랫폼을 만들고 배포했다. 그 기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색됐다. 정보는 무한 복제가 가능해 한계 비용이 제로이고 따라서 디지털 정보는 무료라는 관념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좋은 정보를 올바르게 보상할 방법도, 좋은 정보를 생산할 동기부여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는 사이 돈과 권력은 새로운 중앙은행(구글 등)에 집중되고 있다. 디지털 선구자들이 개방의 가치로 내세웠던 ‘자유로움(free)’이 ‘공짜(gratis)’로 잘못 해석됐다.

권력의 분산과 자유 확산의 유용한 도구인 디지털 기술의 기반위에 새로운 권력의 집중과 자유의 침해가 가속화되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손을 경계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한편에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암호학을 이용해 정부와 기업의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자칭 ‘사이퍼펑크(cypherpunk)’-암호(cypher)와 사이버펑크(cyberpunk)를 합친 말-집단이다. 전자 프런티어 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위키리크스, 비트토런트 같은 단체와 서비스들이 그런 기조로 생겨났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인 (아직도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사람이 2008년 논문을 하나 발표했고, 그것이 비트코인의 시작이다.

처음엔 사이퍼펑크 집단 밖에서는 비트코인에 거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디지털 화폐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고 언제나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암호학에 몸을 담고 있던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의미를 대번 알아차렸고 칭송하기 시작했다. 2011년경부터 언론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이라는 시스템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지만 주류 비즈니스 관점에서 주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컴퓨터를 열심히 돌려서 나오는 디지털 화폐라니, 그것이 비즈니스적으로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누군가의 표현대로 ‘장난감’에 불과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비즈니스적인 의미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이해하면서 부터다. 사람들이 이해한 블록체인은 불변의 분산 원장(또는 데이터베이스)이었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데이터베이스라니, 정말 꿈의 기술처럼 들린다. 제3의 중개인이나 감독자가 필요 없으니 비용 절감도 된다. 그 정도가 아니다. 집중된 권력을 탈중앙화하고, 네트워크에 가치를 담아 거래할 수 있다. 내 눈에도, 이것은 권력이 집중되고 자유가 침해될 소지가 있는 무료 기반의 거대 플랫폼을 대체할 완벽한 후보 기술로 보였다.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하고,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스마트 계약이 강화된 이더리움이 나오고, 이를 기반으로 수백 개의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 프로젝트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면서, 2017년 후반부터는 블록체인보다는 암호화폐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구글 트렌드를 확인해 보라). 나는 이것을 또 다른 관점의 변화로 해석하는데, 바로 블록체인 기술보다는 암호화폐라는 경제적 요소를 바탕으로 하는 네트워크 생태계 구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즉, 나카모토가 만든 블록체인이라는 장치는 네트워크의 성장과 함께 가치가 올라가는 암호화폐의 미래 가치가 필수적인 동인이 돼야 한다. 이 트릭이 바로 나카모토가 발명한 비트코인의 핵심 요소이다. 비트코인 외의 다양한 암호화폐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묘수를 풀어내는 것을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대한 문제로 보고 있으며, ‘암호경제학(Cryptoeconomics)’이라는 용어로 이 어려움을 에둘러서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플랫폼의 분산화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냅스터, 비트토런트가 밟아온 길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료 기반으로 참여자의 경제적 동인이 거의 무시되거나 배제됐기 때문에 시대를 바꿀 힘은 없었던 것이다(음악산업을 기울게 하긴 했다). 사용자가 네트워크에서 가치 창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정말 강력한 분산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블록체인이 아니라 암호화폐가 이 기술의 핵심이다. (이미 블록체인 형태와 무관한 암호화폐도 등장했다)

암호화폐의 어떤 문제에 집중해야 하나?

그렇다면 암호화폐는 대안 플랫폼의 후보 기술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가? 우선 기업형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기존 기업 시스템의 일부를 대체하는 기술로 적용될 수는 있어도 대안 플랫폼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블록체인이 가진 거대한 잠재력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 상당부분 빠졌다.

아니, 여기에선 블록체인이라는게 아예 필요조차 없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대표적인 기업형 블록체인 컨소시엄의 CTO는 “우리는 블록체인을 구축하고 있지 않다”고 솔직한 고뇌의 결론을 내린다. 폐쇄적 네트워크는 누구나 참여할 수 없다는 데서 이미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시대를 바꿀 솔루션, 정부 유행어로 하면 4차산업혁명의 솔루션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본진(소위 퍼블릭 블록체인)의 사정은 어떠한가. 비트코인에 내포된 나카모토의 트릭은 말하자면 생명체가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같은 것이다. 즉, 나카모토는 탈중앙화된 네트워크가 환경 변화나 스트레스에 대응하여 무너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자율 조절 장치를 설계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채굴자 집중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거래 처리 용량이 너무 적으며, 거래 수수료는 너무 높아서, 현실적인 응용은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비트코인은 붕괴하든, 고사하든,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기술 솔루션을 제시하며 많은 대안 암호화폐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가혹한 현실 세계에서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실한 보장을 못 한다. 그런데도 각자 암호화폐의 미래가치 투자(다른 말로 ‘투기’)에 사활을 건 프로젝트들이 ICO로 어마어마한 자금을 끌어들이며 등장하고 있다. 돈 냄새를 맡은 투자자와 개미와 사기꾼들이 모여들고, 시장은 과열되고 가격은 요동친다. 정부, 아니 실은 전 세계가 당황했다. 아니, 4차산업혁명으로 써먹을 좋은 기술 아이템인 줄 알았더니, 허점투성이에 투기 도구였다니!

이쯤에서 열을 가라앉히고 정리를 좀 해보자. 앞서 설명했듯이, 우리는 권력을 분산하고 자유를 확산하는 대안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가 암호화폐에 거는 기대의 핵심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암호화폐는 기존 플랫폼의 인간(또는 자본)에 의한 거버넌스(또는 의사 결정 방식)를 자동화된 코드와 분산된 네트워크, 즉, 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를 통해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둘째, 암호화폐의 합의 가치 시스템은, 사용자들이 생산자로서 또는 소비자로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인으로서, 정당한 가치 생성과 분배, 그리고 자유로운 거래의 수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와 합의 가치 시스템을 통해 안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의 대중 참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암호화폐의 성배이고, 대안 플랫폼으로의 열쇠이다.

모든 구체적인 기술적(확장성, 수수료, 프라이버시, 상호운용성, 편의성 등), 또는 사회적(투기성, 에너지 낭비, 불평등한 부의 배분 등) 논쟁은 다 이 목표를 향한 당면 과제이다. 저쪽 절벽(이상 사회)으로 가는 외줄 타기라고 상상해 보자. 말하자면 손에 쥐어진 장대가 알고리즘 거버넌스이고, 앞에 놓인 외줄이 가치 시스템이다. 모든 암호화폐 프로젝트는 바로 그 외줄 타기 중이고, 끝까지 균형을 잡아 건너가야 한다. 속도, 바람, 신발, 옷…. 변수는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장대(알고리즘 거버넌스)와 외줄(가치 시스템)이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거버넌스의 핵심 과제는 권력집중 문제이다. 작업 증명(proof of work) 합의 프로토콜은 연산량이 늘어나면서 자본력이 없는 개인에게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따라서 대량 채굴 전용 칩과 비교적 싼 전기료를 사용하는 채굴자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

지분 증명(proof of stake), 위임 지분증명(delegated proof of stake) 방식 등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권력 집중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아직 없는 것 같다. 필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 목적의 권력이 어느 정도 동작해야 하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 과연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고르게 그 기회가 주어지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또 다른 거버넌스 문제는, 과연 알고리즘이 모든 거버넌스를 자동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코드가 법이고, 옳고 그름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는 게 이 동네의 불문율 같은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확장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미 심각한 거버넌스 문제를 드러냈다.

개발자, 채굴자, 빅마우스 사이에 전쟁 같은 논쟁이 일었지만, 결국 견해차를 줄이지 못하고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로 블록체인이 분리되었다. 그리고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기능을 활용한 탈중앙화 자율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을 꿈꾸며 호기롭게 시작한 ‘더 다오(The DAO)’ 프로젝트가 버그로 거액의 해킹 사고를 당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더리움 블록체인 분기를 결정한 것은 그 탈중앙화 자율 조직의 코드 규칙이 아니라 이더리움 재단이었고, 반대 세력의 이더리움 클래식은 다른 블록체인으로 분기했다. 나카모토가 가장 긴 블록체인을 선택함으로써 막으려 했던 블록체인 분기가 오히려 일종의 해법이 된 듯하다.

이렇게 거버넌스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알고리즘 외적인 의사결정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알고리즘에 대한 흥미로운 제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자칫 의도되지 않은 오류를 가지는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강제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알고리즘이 존재한다는 가정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다. 자동화된 거버넌스를 어디까지 정의하고, 그 한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서비스 약정 같은 블록체인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이를 디지털 헌법으로 코드화하려는 노력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중대한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인간의 주관적 거버넌스의 계층을 유지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자발적 ‘선의’ 같은 인간의 주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주관적 거버넌스 계층의 가장 큰 해결 과제는 역시 권력 집중의 문제가 될 것은 자명하다.

규칙을 너무 복잡하게 코드화하는 것도 문제이다. 시스템 복잡성이 높을수록 오류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고 유지 보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이 모든 것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튜링 완전성을 구현한다고 내세우는 스마트 계약은 버그 가능성을 높이고 보안에 문제가 될 수 있음은, 이미 ‘더 다오’ 사태를 겪으면서 모두 인식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튜링 완전성을 조금 제한하더라도 더 엄격한 스마트 계약 작성 언어 규칙을 적용하려는 노력도 있다. 심지어 인공지능으로 코드를 최적화한다는 프로젝트도 있다(그러나 아마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다).

또한, 누구도 그 원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옳고 그름을 합의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는 범위 내에서 거버넌스가 정의되어야 한다. 스마트 계약 언어를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서술형으로 하려는 예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지식이 동등한 수준으로 공유되지 않으면 정보 불균형이 일어나고 참여의 기회도 낮아진다. 자유는 그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억압된다. 비트코인을 칭송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프로토콜의 단순함에 있다. 오컴의 면도날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정한 가치 시스템은 어떻게 설계해야하나? 암호화폐에 대한 대부분의 공격은 그것이 원래 실체가 없는 것이고 가치가 제로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암호화폐 가치는 네트워크 효과를 기대하는 미래 가치에 맞춰져 있다. 사실 단 두 사람만 가치를 인정해도, 가치가 생기고 거래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디지털은 원래 복제 특성으로 희소성과 상반되는데, 비트코인은 말하자면 최초로 디지털 희소성까지 만들어 냈다. 그러니까 네트워크 참여자들 사이에 어떤 효용성이 있다면, 그것을 거래 가능한 가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 가치 투자는 투기의 다른 말일 수 있다. 최근의 암호화폐 열기도 다름 아닌 투기 과열이었다. 이건 주식 시장과 똑같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가 악이면, 주식도 악이다. 지나친 투기가 되지 않도록 제도적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단기 투자 수익에 집중해 가치 변동성을 높이는 것은 암호화폐 자체의 기능에 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생태계 유지를 위한 건전한 장기 보유에 대한 보상 장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네트워크가 잘 돌아가도록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 참여자에게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의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비트코인은 작업 증명 방식의 채굴 프로세스로 해결하고자 했다. 개발자에게 검증을 하는 노드에는 정의된 보상이 없다. 여러 역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이제 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초기 자금을 ICO(Initial Coin Offering)라는 크라우드펀딩+IPO 형식의 전례없는 투자 유치 수단으로 비교적 쉽게 끌어오고 있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상반된 두 가지다.

첫째는 마음껏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프로젝트 밑천이 생긴다. 두 번째는 마음껏 사기를 칠 수 있는 마케팅 능력이 생긴다. 프로젝트에 진정성이 있다면 개발자를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2~3쪽짜리 백서만 있는(또는 홈페이지만 있는) 사기 ICO도 판을 치는 것이 문제다. 이더리움의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스마트 계약을 활용해 개발자가 투자금을 수도꼭지 물처럼 일정 속도로만 사용하게 하거나 투자금 회수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역시 시장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초기 암호화폐 보유자와 후에 참여하는 보유자 간에 가치 불균형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암호화폐 보유량이 힘을 가지는 구조라면 그 자체가 권력 불균형이 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될 것이다.

앞서 말한 네트워크의 미래 가치 말고, 다른 방식의 가치를 고민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포스팅한 글에 독자들이 추천하면 보상을 받는다든지, 노동 시간을 토큰화하여 인력 시장에 활용하는 예 같은 것이 있다.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법정화폐 등의 외부의 안정된 자산에 가치를 고정하는 암호화폐도 있다.

내 생각엔 지금까지 선의의 자발적인 참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수많은 소소한 노동과 권리가 가치로 환산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디지털 특성은 복제이고 그래서 무료라는 잘못된 인식이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노동과 권리가 보상이 된다면 선의가 아닌 당연한 참여가 확대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심 경제로 낭비되는 많은 시간이 건전한 노동 시간-예를 들면 내가 하는 행동이 별것은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경제적 보상 외에도, 평판 같은 사회적 보상 체계도 필요하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이타적이기도 하다. 우리 두뇌는 초콜릿을 먹는 것과 사회적 인정을 받는 쾌락 회로가 같고, 신체적인 구타와 사회적인 버림을 받는 고통 회로가 같다고 한다. 사회적인 보상도 경제적 보상 못지않게 우리 행동에 큰 동기 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이미 평판 체계를 설계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꽤 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평판의 높낮이가 또 다른 권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암호화폐 보유량 자체가 투표 등의 힘을 가지는 경우인데, 그것이 마치 돈으로 산 평판의 역할을 하는 부작용이 있다. 또한, 평판은 아이덴티티를 전제로 하므로 프라이버시와의 절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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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는

. 의사 결정 권력이 집중되지 않게 해야 하며, 최소한의 필수 공공 권력의 기회는 모든 참여자에게 최대한 평등하게 분산   어야 한다.

. 알고리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의사결정의 범위와 해결할 수 없는 의사결정의 방식을 명확히 해야 한다.

.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가장 단순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나는 암호화폐가 디지털 시대에 컴퓨터와 인터넷에 이은 세 번째 위대한 발명품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렇게 호명되기를 기대한다. 성공한다면, 암호화폐가 가속할 수 있는 권력의 분산은 다양성을 가진 건강한 시장을 만드는 텃밭이 될 것이다.

자유의 확산은 그 텃밭에서 더 많은 사람이 기꺼이 활동하게 할 것이다. 정보 기술이 꿈꾸던 그런 이상은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그리고 암호화폐로 완성될 수 있다. 그 방향성 자체에 정치 공학적인 이견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암호화폐가 던지는 근본적 변화에 대한 담론이 기술적 사회적 의미 모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인공 지능은 주로 미래 인류의 멸망 또는 신인류의 탄생 같은 공상과학적 담론을 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암호화폐는 현재의 돈, 가치, 경제, 권력,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현재 우리의 사회 시스템을 돌아보게 하고, 그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때로는 아나키즘 같기도 하고 때로는 시장 자유주의 같기도 하다. 사회학자 김성국은 잡종화를 통한 아나키스트 자유주의(아나키즘과 시장 자유주의의 잡종)가 새로운 문명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나는 묘하게도 암호화폐 현상에서 그 공명을 느낀다.

어쨌든 아직은 후보지만, 암호화폐는 4차산업혁명 유망 아이템 맞다. 중국 당국이 암호화폐를 억제하는 것 같지만, 잘나가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중국발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 난제가 있고, 이렇게 저렇게 해도 나카모토가 제시한 묘수 이상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헛수고란 없다. 실패한 후 우리 자신을 보면 퀀텀 점프해 있는 내재한 역량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단 ‘장난감’을 ‘망치’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다음번엔 진짜 망치를 만들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그걸로 집도 짓고, 배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나카모토’ 돌파구가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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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가치 시스템은

. 투기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적정가치 안정성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기여도에 따라 적절히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

. 경제적, 사회적 보상 모두를 반영하되,보상이 권력 수단이 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9호(2018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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