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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은 피할 수 없다...암호화폐 경제의 대담하고 위험한 질주

2018-02-09황치규 기자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논란으로 대한민국 디지털 생태계가 연초부터 발칵 뒤집혔다. 인공지능과 같은 중량감 있는 키워드도 단숨에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이슈에 묻혔다.

정부 규제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블록체인은 정치권에서 조차화제가 됐다.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블록체인이라는 말이 고위 공무원과 여야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진풍경이벌어지고 있다.

IT 이슈가 격렬한 찬반 속에 국가 차원의 사회적 논쟁으로 번지는 것은 예전에는 쉽게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당분간은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 같다.

총론과 각론 모두 공방이 너무 뜨겁고 치열하다.

 

블록체인은 혁신, 암호화폐는 거품?
지난 몇개월에 걸쳐 공방이 계속되면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둘러싼 쟁점은 이제 몇가지로 좁혀지는 모양새다. 우선 암호화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것이다.

지금의 논란은 대부분 블록체인보다는 암호화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블록체인은 유망 분야인데, 암호화폐는 실체가 없는 거품에 불과하다는 쪽과 블록체인의 발전은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이뤄지므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봐야 한다는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경제학자들과 제도 금융권 관계자들은 블록체인의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반면 테크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묶어서 보는 이들이 많다.

기술 면에서만 보면 암호화폐는 블록체인과 분리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경우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P2P 네트워크로 중앙의 서버 없이 운영된다. 블록체인을 구성하는 블록에 데이터가 안전하게 저장되려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이들이 가진 하드웨어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이들이 공짜로 자신들의 하드웨어 자원을 공유할리는 없다. 보상 체계가 없으면 블록체인 생태계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블록체인 관련 전문가들은 암호화폐는 퍼블릭 블록체인 운영자들이 기여자들에게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보상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만큼 암호화폐를 블록체인과 분리해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김진화 공동대표는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암호화폐는 기업에서 주주가 갖는 위치 만큼이나 중요하다. 암호화폐를 억압하는 것은 퍼블릭 블록체인이 가져오는 기회들을 놓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없이는 블록체인 혁신도 없다는 얘기다.

현재 시점에서 암호화폐 생태계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는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그러나 거품의 성격에 대해서는 관점이 엇갈린다.

테크 전문가들 중 많은 이들이 지금의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90년대말 전 세계를 강타한 닷컴 열풍 및 거품과 유사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웹 생태계가 그랬던 것처럼 블록체인도 나왔다가 사라지는 프로젝트들이 쏟아겠지만 살아남은 일부가 결국은 시장의 판을 흔드는 파괴적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암호화폐를 둘러싼 거품은 블록체인의 잠재력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결과라는 것이다. 실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SK텔레콤 오세현 블록체인 유닛장은 “암호화폐는 특정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가진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거래소에서 유통되는 암호화폐가 현재 1400개 정도인데, 이건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이 그만큼 있다는 뜻이다. 이중 많은 프로젝트가 없어질 것이다. 다만 살아남은 프로젝트는 구글, 페이스북처럼 성장할 것이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전문 컴퍼니 빌더인 체인파트너스의 표철민 대표도 “지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환상기에 있다. 거품도 많이 끼어 있어, 거품이 터지는 과정이 불가피해 보인다”면서도 “혼란속에서도 의미있는 프로젝트들이 2세대 블록체인의 시대를 열 것이다. 지금 인터넷에 있는 것들이 점점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된 앱으로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10년 전 클라우드 세상이 온다고 했을때 많은 이들이 웃었지만 지금은 클라우드 세상이 됐다. 블록체인도 그렇게 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테크 전문가들과 달리 금융권과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암호화폐는 여전히 투기를 상징하는 존재로 통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들까지도 비트코인은 허구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경제학의 고수들이 대거 암호화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상황을 일반인들 입장에서 흘려듣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이말도 맞는거 같도 저말도 맞는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분위기를 보면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쟁의 판이 단기간에 어느 한쪽으로 정리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거품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규제를 위한 규제’ 논란
지난해말을 기점으로 정부는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시장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판단, 공격적인 압박 카드를 뽑아들었다. 상황에 따라 암호화폐거래소를 국내에서 폐지할 수도 있음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전면 폐지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는 상황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현재 암호화폐거래소는 20여개가 활동 중이며, 올해안에 50개까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생태계가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임을 감안하면 암호화폐거래소 시장은 ‘과열’의 단계를 훌쩍 뛰어넘은 수준이다. 20개도 많은데, 50개까지 늘어나면 ‘묻지마 투자’가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당국자들은 물론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일부 암호화폐거래소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 엿보인다. 투자자들이 거래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많이 들린다. 거래소가 시세조작을 하는지, 자기들이 유리할 때 시스템을 다운시키는지 투자자들이 의심해서는 안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암호화폐거래소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어 온라인 쇼핑몰처럼 통신판매업자로 신고만 하면 운영이 가능하다. 암호화폐거래소 시장이 과열의 단계를 뛰어넘어 난립의 수준에 이른 배경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시장을 정부 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규제의 방식을 놓고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테크 분야에선 정부가 암호화폐 시장을 감시하고 통제하려 하기 보다는 생태계 활성화를 목표로 암호화폐거래소의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규제를 위한 규제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정부 정책은 거래소 폐지를 밀어부치는 것 보다는 거래 실명제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투자 심리가 과열된 상황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이다. 이를 위해 시세 조작과 자금세탁, 탈세 등 거래 관련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검찰과 경찰,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관련 업체들은 정부의 행보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보조를 맞추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정부 시각을 우려하는 뉘앙스도 풍긴다.

김진화 대표는 “‘규제’인지 ‘단기대책 남발’인지 구분해 봐야 한다. 규제는 일본처럼 제도화하거나 중장기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단기대책을 남발하는 것 같다. 단기대책을 규제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관련 업계는 정부가 통제 중심 보다는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이 가진 잠재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규제의 틀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정부가 암호화폐를 제대로 알지 못할 뿐더러 부정적으로만 보는 인식이 강하다는 지적이 많다. 암호화폐를 정부가 이해하는 방식도 관련 업계와는 간극이 커 보인다.

정부는 블록체인은 유망 분야인데, 암호화폐는 투기적 성격으로 바라보는 모습이다. 블록체인 발전은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이뤄지므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봐야 한다는 업계 논리와는 거리가 있다.

정부는 암호화폐거래소에 대해 폐쇄라는 철퇴를 꺼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꺼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에 대해 거래소들은 공식적으로 정부 가이드라인에 적극 맞추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리스크만 지적하는 정부 정책 방향에 갈증을 느끼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정부와 암호화폐 생태계의 아슬하고 불안해 보이는 동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력과 한계 이론상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서버를 구입하지 않고 지금의 인 터넷과 같은 성능을 갖는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연산과 파일전송에 필요한 컴퓨팅 인프라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이들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퍼블릭 블록체인에선 지금처럼 중앙에 서버를 두고 인터넷 서비스를 운영할 필요가 없어진다.

표철민 대표는 “중장기적으로 블록체인은 중개자가 수수료를 가져가는 지금의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을 대부분 대체해 나갈 것”이라면서 “인터넷이 전통 사업을 뒤집은 것처럼 블록체인이 인터넷 혁명을 다시 뒤집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크 분야 많은 전문가들이 블록체인에 담긴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잠재력 만큼 한계 또한 많은 것이 현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암호화폐거래소 인프라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암호화폐 생태계의 일원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이상, 암호화폐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서비스가 운영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블록체인과 상극이라 할 수 있는 중앙집중식 서버 기반으로 암호화폐거래소들이 운영되고 있다. 블록체인에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선 중앙집중식 환경에서 암호화폐를 사고 파는 거래소들의 인프라는 역설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통하고 있다. 업체 한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거래소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으면 그렇게 했겠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블록체인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노드가 모든 거래를 기록하게끔 설계돼 있다. 덕분에 한 노드의 데이터가 변조되더라도 분산된 노드들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구조 때문에 네트워크 전체의 처리 능력이 단일 노드 처리 능력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컴퓨터를 연결해도 단일 노드의 처리 효율을 넘어설 수 없다. 사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날 경우 증가한 트랜잭션을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구조이다. 초기 블록체인에선 이런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확장성을 향상시켜야 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더리움 위에서 구현한 고양이 수집 게임 ‘크립토키티’는 블록체인에 담긴 확장성의 한계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사례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이 게임은 현재 20만 명의 플레이어를 모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문제는 인기를 끌면서 크립토키티 게임이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하루 트랜잭션 중 20% 가까이 차지하게 됐다는 것. 그러다보니 이더리움 전체 네트워크 속도가 떨어지고 거래 비용은 올라가는 상황이 생겼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확장성 문제를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DAPP) 확산을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적 도전과제”라고 말했다.

비탈릭 부테린에 따르면 이더리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선 하루 100만 트랜잭션이 발생한다. 이더리움뿐만 아니라 다른 블록체인 프로젝트도 하루 수용 가능한 트랜잭션이 한계치에 도달했다. 그런만큼, 문제 해결을 위한 분위기 반전 카드가 블록체인 생태계 전반에 걸쳐 요구되는 상황이다.

관련 연구가 이미 활발히 진행중이다. 이더리움 재단은 물론, 최근 ICO를 선언한 보안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 이오스, 스팀 등 기존 블록체인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블록체인은 2.0을 넘어 3.0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사용자들에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이를 체감할 수 있는 킬러 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거래소에 치우쳐진 생태계가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사용자들이 실제 생활에서 암호화폐를 접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기 위한 관련 업계의 행보가 국내외적으로 빨라지고 있어 주목된다. 국내의 경우 블록체인 기반 송금 인증이나 결제 및 지급 서비스가 킬러앱 후보군에 꼽히고 있다.

표철민 대표는 “암호화폐가 원화를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상품권처럼 지급 결제 보조 수단은 될 수 있다”면서 이더리움 등 기존 암호화폐를 실제 결제에 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암호화폐보관하는 지갑 서비스 경쟁이 앞으로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어 “3년 안에 블록체인 관련 기술적인 한계들은 대부분 극복되고, 지금의 인터넷과 같은 성능을 지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테크M=황치규 기자(delight@techm.kr)]

테크M은 2018년  2월호에서 암호화폐 논쟁의 실체를 주제로한 커버스토리를 통해 블록체인 경제의 본질을 집중 해부했습니다. 전문가들과 협업해 금융과 기술, 산업 관점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갖는 의미를 다양한한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주요 기사 전체 내용은 테크M 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투자와 투기 사이, 암호화폐가 넘어야 할 산
  • 예외는 없다…명사들도 암호화폐 놓고 설전
  • 세계 각국 암호화폐 정책 집중 분석
  • 주목 받는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사례들
  • AI와 블록체인 융합이 몰고올 파격 시나리오
  • 은행이 암화화폐를 외면해선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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