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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립성 논쟁] 美 정부 원칙 파기로 업계 공방가열

ISSUE&TREND 다시 달아오른 망중립성 논쟁

2018-01-20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테크M=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원칙을 무력화했다.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들을 기간통신 사업자(타이틀2)에서 정보서비스사업자(타이틀1)로 재분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인터넷 자유 회복(Restoring Internet Freedom)’ 최종안(final draft) 을 3대 2로 통과시킨 것.

 

이로써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5년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한 지 2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번 조치로 구글, 페이스북 등 인터넷 사업자들은 근심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반면 컴캐스트를 비롯한 대형 케이블회사나 버라이즌 같은 통신사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망중립성이란 모든 망사업자들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콘텐츠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차별금지, 차단금지 같은 조항들은 이런 대원칙을 실행하기 위한 세칙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망중립성 원칙 자체는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다.

보는 관점에 따라 받아들이는 온도차도 굉장히 다른 편이다.

 

이번 조치의 맥락을 좀 더 명쾌하게 살펴보기 위해선 시간을 약 4년 전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그 무렵 미국 연방항소법원에선 FCC가 2010년 발표한 ‘오픈 인터넷 규칙’의 합법성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었다.

차별금지, 차단금지, 합리적 망관리를 골자로 한 ‘오픈인터넷 규칙’은 망중립성 원칙을 법제화하려는 FCC의 야심작이었다.

 

하지만 연방항소법원은 2014년 1월 ‘오픈인터넷규칙’에 대해 무효 판결을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FCC가 정보서비스 사업자인 인터넷 서비스업체(ISP)에게 기간통신사업자에게 부과하는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 의무를 지우는 것은 월권행위란 판결이었다.

그러면서 연방항소법원은 “정 규제하고 싶으면 ISP들의 산업분류를 바꾸라”는 취지의 판결을 한다.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민주당 정부는 친인터넷 성향이 강했다. 따라서 망중립성 원칙 도입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그 임무를 맡은 FCC는 꽤 오랜 고심 끝에 그 해 말,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다. ‘오픈 인터넷 규칙’ 무력화의 빌미가 됐던 산업군을 재분류해버린 것. 유선 뿐 아니라 무선 사업자까지 타이틀2로 재분류하는 강력한 방안을 내놓은 것. 그게 2015년 2월이었다. 그리고 4개월 뒤인 그 해 6월부터 본격 적용됐다.

 

물론 통신사들은 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통신 및 케이블 회사들은 크게 두 가지 이슈를 제기했다. 첫째, FCC가 유무선 ISP의 산업분류를 바꾼 것은 권한을 넘어선 행위였다. 둘째, 산업 분류 과정에서 FCC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주장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6년 6월 연방순회항소법원은 FCC의 ISP 산업분류 재조정이 합법적인 권한 행사였을 뿐 아니라 관련 절차도 잘 지켰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FCC의 완벽한 승리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더 이상의 반전 드라마는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항소법원 판결 직후 많은 사람들이 “망중립성 논의는 사실상 끝났다”고 평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은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이자 친통신 성향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조금씩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대표적인 망중립성 반대론자인 아짓 파이를 FCC 위원장에 지명하면서 ‘망중립성 죽이기’가 본격화됐다. 그리고 12월 14일 FCC 전체 회의에서 ‘인터넷 자유 회복’ 문건을 공식 채택함에 따라 짧았던 ‘망중립성의 봄’이 마감됐다.

 

이 대목에서 당연히 궁금증이 제기된다. 어떻게 똑같은 사안에 대해 같은 기관이 이렇게 단기간에 확 뒤집을 수 있냐는 부분이다.

이 의문 속에 망중립성을 둘러싼 모든 고민이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전체 그림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란 얘기다. 그 부분을 한번 살펴보자.

 

2015년 오픈인터넷 규칙을 발표한 FCC는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한다고 통신사들의 투자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0년 첫 망중립성 원칙 발표 직후 오히려 통신사들의 투자는 늘었다면서 구체적인 수치까지 공개했다.

FCC는 또 타이틀2 규정 중 극히 일부만 적용했다고 강조했다. 타이틀2 관련 규정 중 700개 이상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계속 부각시켰다.

아예 가볍게 건드린(light-touch) 규제 프레임워크를 적용한 ‘21세기를 위한 타이틀2(Title II tailored for the 21st century)’란 표현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한 2017년의 FCC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 망중립성 도입 이후 통신사들의 망 투자가 대폭 줄었다는 주장이다. 통신 투자가 줄어든 건 2008년 불황 이후 처음이라는 주장까지 담았다.

또 오바마 행정부 때 ‘가볍게 건드린’ 규제 프레임이라고 강조했던 바로 그 망중립성 규정에 대해선 강력한 규정(heavy-handed regulation)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두 정부가 망중립성 이슈를 보는 관점이 확연하게 달랐다. 망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중 어느 쪽에 더 무게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같은 사안을 180도 다르게 본 셈이다.

 

망중립성 원칙이 무력화되면서 이론적으론 유무선 ISP들이 경쟁사 콘텐츠를 차별하거나 차단할 수도 있게 됐다. 망중립성 원칙 위반을 이유로 규제할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규제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ISP의 횡포가 심하다고 판단할 경우 연방거래위원회(FTC)가 공정경쟁 위반 등의 이슈로 제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지난 5월 ‘인터넷 자유 회복’ 문건을 처음 공개할 당시부터 “FTC가 있기 때문에 통신사들의 독주는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FCC와 FTC는 12월 들어 양해각서까지 공동 발표하면서 시장질서 수호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망중립성을 통한 사전 규제와 달리 FTC는 사후 조치를 취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 실제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불공정 행위를 차단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FCC의 망중립성 폐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를 토대로 많은 우려를 나타냈다.

 

변수는 또 있다. 현재 AT&T와 FTC가 벌이고 있는 법정공방의 결과에 따라선 규제 공백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AT&T의 무제한 요금제 횡포 때문에 시작된 양측 공방의 핵심은 커먼 캐리어 사업자의 비커먼 캐리어 영역에 대해 FTC가 규제 권한을 갖고 있느냐는 부분이다.

오랜 기간 유선전화 사업을 해 온 AT&T는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2(기간통신사업자)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AT&T의 데이터 서비스는 타이틀1(정보서비스) 영역이다.

FTC는 AT&T가 타이틀2에 속하기 때문에 규제 권한이 없긴 하지만 문제가 된 데이터 서비스는 자신들의 관할권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AT&T는 FTC가 자신들을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맞섰다.

항소법원은 2016년 8월 AT&T의 손을 들어줬다. 따라서 이 판결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FTC는 타이틀2에 속하는 기업이 제공하는 ISP에 대해서도 규제를 할 수 없게 된다.

FTC에겐 다행스럽게도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5월 전원합의체에서 다시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2016년 8월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상당히 높단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 판결이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유무선 ISP에 대해선 규제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FCC에 표결 연기를 촉구한 건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다. 항소법원 전원합의체 확정판결이 나온 뒤에 FCC의 규제 권한을 넘기자는 얘기였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7호(2018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