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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100년 전 전기자동차 몰락의 교훈

2017-12-21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테크M=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인간의 욕구에 부응하는 경합 기술 사이의 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 직류 대 교류의 전쟁부터 1980년대 VHS 대 베타맥스 비디오테이프의 싸움, 2000년대 LCD 대 PDP 디스플레이의 대결에 이르기까지 여러 크고 작은 사례들이 있었다.

대개는 네트워크 외부성(network externality), 호환성, 외부 협력 조직의 범위와 규모, 혁신의 속도, 그리고 가격 경쟁력의 조기 달성 능력 같은 복합적 요인이 작용해 승자가 분명히 가려졌다. 패자는 특수 시장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거나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형태로 판가름이 났다. 

하지만 가솔린(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자동차 간 대결은 아직까지도 승패가 완전히 갈리지 않은 ‘산업판 100년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테슬라가 공격적으로 전기차를 보급하면서 전기차의 가능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거대한 패자부활전의 서곡처럼 보인다. 물론 그동안 전기차가 완전히 멸종된 것은 아니었다. 포드, GM,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순수 전기차 또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통해 전기차의 전통을 이어왔다. 

 

끝나지 않은 전기차·가솔린차 대결

증기자동차 초기 모습. 시동을 위해 물이 끓기까지 한참 기다려야 했다.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증기자동차, 전기자동차, 가솔린자동차가 거의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마차에서 말을 제거한 자리에 무엇을 얹을 것이냐의 문제였다.

증기자동차는 속도가 빨랐고 가격도 저렴했다. 1906년에 달성한 속도 기록은 시속 127마일(약 203km)이었다. 그러나 시동을 위해 물이 끓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물을 보충하기 위해 자주 정차해야만 했다.

전기자동차는 깨끗하고 조용했다. 증기자동차보다는 느렸지만 가솔린자동차보다는 빨랐다. 그러나 장거리 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충전소도 충분히 보급되지 않았던 만큼 쉽게 극복하기 힘든 장벽이었다. 추운 날씨에서는 배터리 성능이 저하된다는 문제도 있었다. 

가솔린자동차는 더럽고 냄새가 나고 시끄러웠다. (아직 전기시동장치가 발명되기 전) 시동을 걸기도 번거로웠다. 하지만 한 번 주유로 장거리를 운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가격도 전기자동차에 비해 저렴했다.

전기차와 달리 추운 날씨가 운행 성능에 별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 3가지 방식 모두 저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기호와 경제력에 맞춰 가장 적당한 차를 선택해야 했다. 

초기에는 전기차가 셋 중 비교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청결감과 환경친화성에 있었다. 그때만 해도 기차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장거리와 속도에 익숙하지 않았다.

더구나 자동차는 소수의 경제력 있는 상류층이 주 고객이던 시절이었으므로 전기차의 비싼 가격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04년 당시 뉴욕, 시카고, 보스턴 시내를 운행하는 자동차의 3분의 1이 전기차였다. 

초창기 자동차라는 신기술의 매력은 구기술인 마차의 여러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속도나 유지비용은 둘째 치고, 말의 배설물이야말로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19세기말만 해도 시내 곳곳에서 말똥을 치우는 청소부는 흔한 모습이었다. 사실 가솔린자동차는 마차가 야기했던 환경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했다. 말똥은 사라졌지만 대신 지저분한 기름이 그 자리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차의 대안으로 전기자동차를 찾았다. 

 

그러나 배터리 용량 문제로 장거리 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전기자동차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래서 전기자동차는 단거리 운행을 위주로 하는 택시 사업에서 주로 채택했다. 최초의 전기자동차 택시는 1896년 뉴욕에서 처음 등장했다.

일렉트릭비히클의 헨리 모리스(Henry Moris)와 페드로 살롬(Pedro Salom)이 사업을 주도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굳이 차를 소유하면서 유지보수 비용을 발생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택시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홍보했다.

그들의 눈에 전기차는 첨단 기술제품이었기 때문에 일반 고객들이 이 차를 소유하면서 직접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에는 개인에게 차를 ‘판매’한다는 생각 자체가 넌센스였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과 달리 실제로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도 전기차는 다루기 쉬운 물건으로 비춰졌다. 사업가로서 모리스와 살롬의 시장 분석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자동차 판매 시장과 별도로 택시 시장은 뉴욕에서 10년 넘게 성업했다. 1899년 당시 뉴욕에서 운행되던 전기택시는 60여대로 알려져 있다. 전기택시는 정류장을 떠나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전기가 다 떨어질 때쯤 돌아와서 새 전지로 갈아 끼우고 다시 출발했다.

1902년에는 전기트럭도 등장했다. 1906년에는 전기차공업협회까지 설립됐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증기차나 휘발유차가 아니라 전기차가 미래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전기차의 지위는 두 가지의 결정적인 결함 때문에 항상 위태로웠다. 하나는 장거리 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 또 하나는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었다. 결국 휘발유 자동차가 이 약점을 공략하기에 이르렀다. 

가솔린자동차는 앞서 말한 여러 단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장 지위가 낮았다. 그러나 1910년대 전기시동장치가 개발되고 도로망 확충과 주유소 보급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특히 헨리 포드라는 세기의 사업가가 등장해 저렴한 모델T를 보급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20년대 가솔린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대세를 장악하는 사이 전기자동차와 증기자동차는 조금씩 자취를 감췄다. 

 

왜 전기자동차는 몰락했는가? 

그렇다면 초기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가솔린자동차가 어떻게 증기와 전기자동차를 물리치고 시장을 장악하게 됐을까? 

첫째, 1920년대 포장도로가 본격 보급됐다. 사실 자동차 운행 중 발생하는 흙길의 분진 문제는 마차는 물론 어떤 한 종류의 자동차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솔린자동차를 포함해 그 어떤 자동차도 환경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포장도로가 충분히 확충되기 전에는 가솔린자동차의 장거리 운행 능력이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거리 운행에 적합한 전기자동차에 그리 큰 불만을 느끼지 못했다. 

둘째, 1901년 텍사스에서 대규모 유전이 개발됐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추출되는 가솔린이 저렴하고 풍부하게 공급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솔린이 상점에서 낱개 통에 담겨 판매됐다, 그러다가 1913년 주유소가 처음 등장했다. 1920년대에 이르러 미국 내 주요 도시는 물론 지역 곳곳에서 주유소는 흔한 풍경이 됐다. 덕분에 사람들은 휘발유차를 이용한 장거리 운행에 친숙해졌다. 

셋째, 1912년 발명가 찰스 케터링(Charles Kettering)이 전기 시동장치를 개발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가솔린 자동차를 시동하려면 사람이 엔진 축을 직접 돌려줘야 했다. 이는 웬만한 성인 남자에게도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다.

새로 등장한 전기시동장치는 전기차는 물론 가솔린차에도 적용할 수 있었는데, 특히 가솔린차에는 자신의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하는 수훈갑의 장치였다. 가솔린자동차는 전기시동장치 덕분에 비로소 ‘편리’한 기계로 탈바꿈했다. 

넷째,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이용해 자동차 대량생산의 물꼬를 텄다.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됐고 원가는 절감됐다. 상류층만이 아니라 일반 서민 근로자들도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1912년 전기자동차가 대당 1750~3000달러에 달했던 반면, 포드의 모델은 대당 650달러에 불과했다. 가솔린자동차가 달성한 획기적인 가격경쟁력은 전기차 시장을 궤멸시키는 신호탄이 됐다. 전기차 업체들이 생애유지비용 측면에서 전기차의 우위를 아무리 주장해도 소비자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다섯째, 포드가 가솔린 자동차의 대량생산에 성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 시점에 이미 수많은 엔지니어의 혁신에 힘입어 가솔린자동차는 속도나 연비 등이 많이 개선됐고, 무엇보다도 대량생산 가능성과 저렴한 가격이 대규모 군수품 공급 요건으로 맞아떨어졌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 시스템이 공고해졌고 전기자동차와 증기자동차의 입지는 추락했다. 더구나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전기자동차와 증기자동차 회사가 파산하고 명맥이 끊겼다. 가솔린자동차도 수많은 군소 업체들이 소멸했고 포드, GM, 크라이슬러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과점 체제로 이어졌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다시 주목

20세기 초 한창 인기를 끌었던 전기차가 가솔린차의 선전 앞에서 허무하게 쓰러진 이유가 단지 기술적인 문제나 우연한 환경 요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전기자동차 분야에 포드와 같은 혁신경영자가 먼저 등장해서 사용자 기반을 획기적으로 키우고 가격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었다면 판세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물론 배터리 용량이라는 치명적인 제약이 있었기에 당시 기술로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종 수많은 탁월한 경영자들은 기술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고객 창조에 성공하곤 한다. 20세기 초 전기차 산업에 엔지니어들은 많았지만 고객 창조 마인드를 갖춘 기업가는 드물었던 것 같다. 

테슬라 모델S 90D(위), 테슬라 보급형 전기 자동차 모델3(아래) [사진=엘론 머스크 트위터]21세기 고유가 친환경 시대에 전기차는 다시 지배적 디자인으로 자신의 지위를 격상시킬 수 있을까?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지만, 한 가지 분명한 추세는 다양성의 확산이다.

20세기 초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등장했던 대량생산 모델은 전기차의 몰락을 가져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21세기는 플랫폼은 비록 대형화할지 모르지만, 그 안의 콘텐츠는 다양성을 향해 팽창하고 있다.

자동차 역시 선택의 범위는 더욱 확대되고, 어느 한 가지 지배적 디자인을 강요당할 여지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당분간 대세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조심스럽게 판단해 본다. 이미 20세기 초 전기차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일각에서는 100% 가솔린도 100% 휘발유도 아닌, 양자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잠재성을 인식했고, 실제로 몇몇 회사들은 하이브리드 차를 실험적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양자택일의 대결 구도 앞에 하이브리드는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들은 100년 뒤 시대가 바뀌면서 하이브리드가 다시 주목받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100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구축된 가솔린자동차 생태계가 그리 쉽게 사라지기는 힘들다. 그동안 휘발유 엔진 차량에서 경험한 온갖 느낌과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 경제, 문화 구조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것은 실로 큰 충격이다.

부릉부릉하는 소리에 익숙했던 귀가 갑자기 적막한, 너무나도 적막한 전기차의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휘발유차의 기어변속과 가속 페달에서 느꼈던 것과 전혀 다른 감각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아직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연료전지 자동차(수소차 등)가 어느 날 갑자기 과거 가솔린차가 그랬던 것처럼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장벽을 극복하고 대세를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영웅적 혁신 경영자는 종종 전혀 예상치 곳에 숨어 있다가 등장한다. 마치 100년 전 헨리 포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6호(2017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