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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뱀과 비둘기의 키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혁신의 순간

2017-11-27글 김남호 9FRUIT 대표

 

[테크M=글 김남호 9FRUIT 대표 ]

시장 한복판에서 누군가 외친다. 지금 세상은 끝날 것이고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헐, 또 끝나? 얼마전 시작된 새로운 세상에 이제야 간신히 적응한 것 같은데 지금 세상이 또 끝난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전에 예견했던 새로운 세상이 완전히 온 것 같지도 않다.


 TV 광고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카리스마로 비교 불가인 남자 영화 배우는 심각한 얼굴로 온라인 게임을 팔고 있고, 인기 여자 배우는 섹시한 표정으로 치킨을 팔고 있다. 광고 대행사의 시장 구조도 여전하다. 별로 바뀐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세상이다. 페이스북에서 나를 따라 다니는 광고는 아내도 모르는 내 관심사를 알고 있다. 구글링을 하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스토킹 하는 기분이다. 뭔가 곧 모든 것이 바뀔 것 같은 조짐이다. 혼란스럽다.

현재 갖고 있는 것을 모두 처분해야 하는 화폐개혁의 전날 밤인지, 잠깐 불다가 그치는 묵시록 산업의 호들갑인지 헷갈린다. 늘 시대 변화에 쫓기어 잠 못 이루는 마케터의 이야기이다.


컨설팅 기업이 광고에 뛰어드는 이유


마케팅은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민감하게 추종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바뀌면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바뀌고, 사고 방식이 바뀌면 가치 판단이 달라진다.

마케팅은 물질 세계의 가치를 규정하고 그것을 시장에서 제품과 서비스에 담아 교환되도록 하는 일이 핵심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가치 판단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기술의 진보는 미디어의 진화를 가져오고 미디어의 진화는 사람들의 소통 방식을 변화시킨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의 경험을 소통해야 할 마케터들은 사람들의 소통방식에 영향을 주는 미디어 변화 역시 예의 주시해야 한다.

마케터들은 세상의 변화에 너무 앞서가지도 않고 뒤쳐지지도 않도록, 기술 변화 속도를 예견해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적절한 위치를 찾고자 한다.


이처럼 변화의 시대를 사는 마케터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예언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잠언, 그 둘 사이에 있는 것 같다.

변화를 대면하는 마케터는 변화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바꾸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함께 세워지는 지점에 서야 한다.


최근 마케팅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컨설팅에 대한 수요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딜로이트, 액센츄어 같은 대형 컨설팅 회사들이 광고 마케팅 대행사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액센츄어그룹 내에서 마케팅 대행사 부문을 맡고 있는 액센츄어인터랙티브는 최근 영국 크리에이티브 대행사 카르마라마를 인수했고, 딜로이트는 헤드 크리에이티브 대행사를, IBM은 미국과 독일의 주목 받는 크리에이티브 샵인 캡제미니와 파렌하이트212를 인수했다.

액센츄어인터랙티브의 경우 지난해 2배 성장하며 전 세계적으로 1만2000명의 직원과 3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IT와 경영 컨설팅 회사들이 광고 마케팅으로 진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광고 대행사 그룹들은  컨설팅으로 확대하고 있다.

다국적 광고 지주회사인  인터퍼블릭그룹(IPG) 산하 R/GA는 4년 전 컨설팅본부를 신설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주요 임원들을 영입해  고객 비즈니스의 혁신적 전환을 위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컨설팅하고 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컨설팅 기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영역도 더 이상 실행 중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생각의 틀을 정립해 의사결정의 프레임을 만들어야 하는 사고의 깊이와 넓이가 요구되는 전략 중심의 영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마케팅을 위해 마케터가 판단해야 할 사항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데이터 기술의 진화가 가져온 의사결정의 스펙트럼과 (효율성의 과제) 혁신에 필요한 사고와 분석의 깊이(효과성의 과제)는 전통적 마케터에게 있어 패러다임 전환과도 같은 변화일 것이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서 효율성의 과제가 컨설팅이 필요한 만큼 커진 이유는 초연결 시대로의 변화 때문이다.  마케팅의 핵심 과업은 브랜드 가치와 고객의 필요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브랜드는 메시지를 발행하고, 메시지에 반응하는 고객의 행동을 이끌어낸다. 인터넷이 가져온 네트워크의 시대는 이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초연결 시대로 진화됨에 따라, 소통의 접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브랜드가 소통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맥락에 따라 광고 등 판매미디어(paid media), SNS채널, 홈페이지 등 자체미디어(owned media), 댓글 등 평가미디어(earned media)로 세분화되며, 각각의 채널 아래 많은 신규 매체가 등장하고 있다.

모든 매체는 쌍방향이기에, 실시간으로 메시지와 콘텐츠를 업데이트 해야 한다. 한정된 예산과 자원으로 마케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최적화 (optimization)’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수많은 분석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의사결정으로 안내하는 전통적 경영 컨설팅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데이터는 숫자 아닌 고객의 페르소나

마케팅의 효과를 높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은 데이터 시대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우리의 고객이 누구인가’란 질문에서 출발한다. 고객에 대한 지식은 고객이 원하는 근본 가치와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알려주며 그 지점에서 브랜드 마케팅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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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왕’이란 말을 시장에서 사회로 옮기면 ‘사람이 먼저다’ 일 것이다.
이 선언이야말로 기술이 마케팅 생태계를 어떻게 진화 발전시키든지, 마케터가 지켜야 할 불변의 율법이다.

 

데이터의 시대에서 ‘데이터’는 숫자가 아니라 고객의 또 다른 페르소나이다. 고객이 검색창에 입력한 키워드는 고객의 의도를 품은 또 하나의 페르소나이고 고객이 홈페이지에 머물렀던 시간과 이동 경로 역시 움직이고 있는 고객의 페르소나이다.


고객의 의도와 행동을 분석하기 위한 전통적 마케팅 조사 기법(FGI, 패널 조사 등)의 시대는 끝났다.

고객의 다채로운 컬러를 조명할 수 있는 수많은 데이터 분석(고객 데이터, 방문자 데이터, 검색 데이터, 소셜 데이터 등)이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객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 고객이 우리의 제품을 왜 구매하는지에 대한 인과 관계(상관 관계가 아닌)를 아는 것은 혁신의 지름길이다. 크리에이티브 대행사가 컨설팅 부문을 도입하는 이유는 고객 분석의 차원이 깊어짐으로써 제안할 크리에이티브의 지평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피터드러커는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케팅’과 ‘혁신’이라고 주장했다. 마케팅은 고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며, 혁신은 고객이 깨닫지 못하는 욕구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데이터의 시대에 고객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효율성을 최적화하는 의사결정 체계만 갖추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객이 깨닫지 못하는 욕구를 찾아내려면 데이터 분석의 깊이가 달라져야 한다. 숫자를 분석하는 것에 더해 보이지 않는 고객 행동, 말하지 않은 고객의 언어를 유추하고 추론할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한 것이다.

도출된 통찰을 경험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도 요구된다. 결국 혁신을 위해서는 분석과 크리에이티브가 통합되어야 한다.


기술은 진화한다.  내일의 기술은 곧 어제의 기술이 된다.  솔루션과 기술에만 의존한 혁신은 수명이 짧게 마련이다. 지속 가능한 근본적인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적용한 생각의 변화, 프로세스의 변화에서 온다.

변하지 않는 기반 위에 새 기술을 접목, 이전에 없던 새로운 생각과 작동을 일으키는 것이 혁신이다.


IT 영역에서는 레거시(legacy)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새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 이전의 프로그램 소스 코드를 삭제하면 새 프로그램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남겨두고 유지해야 할 프로그램을 뜻한다. 

시대적으로 보면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낡은 프로그램 같지만 현대의 새로운 기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적지 않다.

새로운 기술이 최적으로 작동되려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변하지 않는 레거시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지금은 프로그램에 의해 어떤 매체에 얼마나 광고를 할 지 기획하고 자동으로 광고를 집행하는 시대다. 기계와 기계의 학습에 의해 고객의 의도와 행동이 예측되는 기술 마케팅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 같은 시대에, 새로운 기술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하는 우리가 삭제하지 않아야 할 마케팅 레거시는 무엇일까.


‘고객이 왕’이란 말을 시장에서 사회로 옮기면 ‘사람이 먼저다’ 일 것이다. 이 선언이야말로 기술이 마케팅 생태계를 어떻게 진화 발전시키든지, 마케터가 지켜야 할 불변의 율법이다. 또 새로운 프로그램이 장착되더라도 절대로 삭제되면 안 될 마케팅 레거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를 건너오면서 마케팅은 치열한 경쟁의 원리로 구동되어 왔다.

시장을 경쟁 구도로만 보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관점으로만 마케팅을 바라보는 전통적 마케터에게 시장은 전쟁터이고 고객은 전리품이다.


브랜드의 가치를 정립하는 것은 ‘전략’이고 판매를 위한 메시지를 세우는 것은 ‘전술’이다.  고객의 일상의 순간은 맞혀야 할 ‘과녁’이며 고객의 마인드는 ‘침투’해서 선점해야 할 요새다.

브랜드는 자신의 구역(domain)에만 집중해야 하고, 다른 종(種)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배타적 성벽을 높이 세워야 한다. 그들에게 마케팅이란 시장 전쟁에서 이겨 왕으로 등극, 고객의 삶을 통치하기 위한 한판의 전투였다.


다시 고객의 가치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초연결 데이터 시대에는 배타성이 아닌 개방성, 독점이 아닌 공유, 수직이 아닌 수평, 경쟁이 아닌 협력이 생태계의 발전을 이끌어낸다.

‘연결성’이 강조되는 마케팅의 중심에는 ‘고객의 가치’가 있다. 연결은 협력하기 위한 것이고 협력은 고객의 가치를 충족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네스트란 온도계가 가정의 보일러와 전원을 조절하는 사물인터넷의 시대에 서로 다른 도메인의 기기가 서로 협력하는 것은 첨단 기술 때문이 아니라, 고객 가치 충족이라는 궁극의 마케팅 목적이 만나기 때문이다.

네스트는 자신을 고용한 주인(고객) 에게 약속한 가치를 최고 수준으로 제공하기 위해서 다른 부문의 기기와 서로 협력한다.


가치 기반의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온도계는 ‘온도의 측정’을 약속한 것이 아니고 보일러는 ‘온도의 상승’이 목적이 아니다.

두 기기가 약속한 고객 가치의 최종 지향점은 주인의 ‘안락함’이다. 이를 위해 두 기기는 서로 긴밀하게 대화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데이터 기술 시대를 맞아 마케팅의 구루들은 그동안 강조했던 기술 변화가 아닌 마케팅의 오랜 레거시를 강조하고 있다. 경쟁에서 우위를 찾는 게 살길이라고 외쳐왔던 마이클 포터는 공유의 가치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시장을 세분화하고 목표를 설정해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하라고 강조하던 필립 코틀러는 일방적인 마케팅을 폐기하고 마케팅의 전 과정에 고객이 참여하는 ‘연결성’을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사실, ‘고객의 가치’란 마케팅에서 진부하게 들릴 만큼 낡은 레거시 수사로 여겨진다. 핵심이고 본질적 단어가 진부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미 시간을 거치면서 타락하고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사랑이라는 단어가, 광고나 대중문화에서 흔하게 사용됨으로써 그 본질의 가치가 오염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 기술의 진보에 따른 초연결 시대는, 마케팅에 있어서는 역설적으로 최신 기술의 첨단성이 아니라 오래된 마케팅의 본질인 ‘고객의 가치’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제품 중심의 마케팅에서 사람 중심의 마케팅으로 진정성 있는 전환이 요구되는 마케팅의 황금시대가 데이터와 초연결이라는 네트워크 플랫폼 위에서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고객의 가치’는 오래 전부터 강조됐던 마케팅의 본질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데오르드 레빗 교수는 1960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제품의 기능에 집중하다가 정작 고객의 더 깊은 욕구를 놓치고 마는 ‘마케팅 근시안’을 경계했다.

고객의 가치에 집중해야 온도계의 존재 목적을 온도 측정이 아닌, 적절한 실내온도 조절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

‘고객이 원하는 것은 지름 0.6cm의 드릴이 아니라, 0.6cm의 구멍이다’ 그가 남긴 이 유명한 말은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는 제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일(Job)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특정 상황에서 이루고자 하는 발전, 즉 일(Job)을 위해 제품을 고용하는 것이다. 결국 마케팅의 가치는 고객이 이루고자 하는 삶의 발전을 깊이 이해하는 이해력과 통찰력에 있다.

또 브랜드 가치는 고객의 일을 완전하게 해결하기 위해 관련된 다른 도메인의 사물들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연결성에 비례한다.


재규어 자동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은 차를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데 머물지 않고 도착한 후 근처의 주차장을 찾아주고, 주차한 다음 다시 스마트폰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 지 알려준다.

고객이 원하는 ‘발전’, 즉 고객의 ‘일’을 기반으로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데이터 마케팅의 시대야 말로 오래전  피터 드러커가 마케터가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한다.


 ‘고객이 궁극적으로 사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낡은 접근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도입해야 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어쩌면 너무 오래돼 잊고 있었던 유산을 다시 생각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새로운 마케팅 시대의 성공적 혁신은 효율과 효과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또 날카로운 분석과 창의적인 크리에이티브를 통합하며 신기술과 지켜야 할 유산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마케팅 혁신은 그동안 같은 생태계에 있었지만 멀리 떨어져있던 지혜로운 뱀과 순결한 비둘기가 서로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5호(2017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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