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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시장 팔방미인 ESS, 리튬이온 독무대 계속될까?

2017-09-19박수항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테크M=박수항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에너지 시장의 변화를 설명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파급력이나 중요도 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신재생 에너지 확산’일 것이다. 최근 10년간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 규모는 연평균 30~40%의 기록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성장세는 당분간 계속될 기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까지 1차 에너지 중 신재생 비중이 60%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청정에너지 관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급격한 성장의 이면에는 예상 못한 성장통도 따르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캘리포니아 독립시스템운영국(ISO)에서 분석한 ‘덕 커브(Duck Curve)’ 현상.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급변하는 태양광 발전의 태생적 한계를 보여준다.

한 낮 피크에 달했던 태양광 발전량이 오후에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 전력 수요는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하기 때문에 수요-공급간 불일치가 생긴다.

문제는 태양광 발전량이 증가할수록 이러한 수급 불일치의 골이 더 깊고 가파르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화석연료 발전을 유지할 경우 기동시간 확보에 필요한 과잉발전을 유발하며, 신재생 에너지의 청정성도 훼손된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은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용을 병행하는 것이다. 발전량이 많은 시간에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간에 꺼내 쓰면 된다.

전통적인 양수발전과 대비되는 이른바 ‘차세대 ESS’는 빠른 기동력과 응답력으로 태양광과 풍력이 가진 간헐적 발전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독일, 중국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ESS 설치에 적극적이며, 이들의 주요 목적 역시 전력망의 안정화에 있다.

ESS는 이외에도 주파수 보정, 송배전 보조 등 전력계통의 전 영역에서 활용 가능하며, 전력계통이 스마트화될수록 그 역할도 다양하고 중요해진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글로벌 ESS 데이터베이스를 살펴보면, 신재생 에너지 발전 보조, 주파수 조정, 전력 사용시간 이동, 송배전 보조 등 ESS의 용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리튬이온, ESS 시장 독주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차세대 ESS 시장을 두고 다양한 기술이 경합을 벌이는 모양새였지만, 최근에는 그야말로 리튬이온 배터리의 독무대다.

신설되는 글로벌 설비 중 리튬이온 배터리 비중은 80%를 넘어서고 있으며, 대규모 프로젝트가 집중된 미국은 무려 95%에 달한다. (글로벌 실적은 내비건트 리서치 2016년 3분기 누계 기준, 미국 실적은 GTM US 에너지 스토리지 모니터 2016년 말 기준)

사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이러한 독주를 예견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소형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있지만, 비싼 가격 탓에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 에너지 저장이 필요한 ESS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경제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대용량의 배터리 사용에 대한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아 이를 검증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경쟁 기술이었던 NaS 배터리는 싼 나트륨(Na)과 황(S)을 원료로 사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절반 비용으로도 시스템 구현이 가능했고 이미 다수의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 장기적인 경쟁우위가 가능할 것으로 보기도 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NaS 배터리의 독과점적 공급구조, 까다로운 운전조건 등 다양한 이유들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2010년까지 ㎾h 당 1000달러 웃돌던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비는 불과 6년만인 2016년에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가격 하락을 주도한 것은 전기차.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제조사들이 배터리 설비 규모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전기차 돌풍의 주역인 중국에서만 2020년까지 계획된 배터리 설비 증설 규모는 약 150GWh로, 2015년 전세계 총 설비규모의 6배에 달한다.(제이피모건, 2016년) 중국 특유의 부풀림을 감안해도 상상 이상이다.

단일 기업의 설비 규모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특히 배터리를 수직 계열화한 자동차 기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설비로 기록될 테슬라의 기가팩토리가 대표적이며, 2020년까지 연산 35GWh 규모를 목표로 한다.

최다 전기차 판매 기록을 보유한 중국의 BYD 역시 2020년까지 설비 규모를 30GWh 이상으로 증가시킬 계획이다. 그 밖에도 시장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대규모 설비 증설을 거듭하고 있어 배터리 공급력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배터리 설비 증설 이끌어

설비 규모 면에서는 발전·송배전 등 중대형 설비 중심의 유틸리티 분야가 시장을 좌우하고 있지만, 수요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역동성이나 성장성 면에서는 최종 수용가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유틸리티에서 ESS 역할은 전통 설비의 역할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대로 전통 설비로 회귀하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 최종 수용가 용도는 에너지 생태계 변화에 맞게 진화 중이기 때문에 ESS의 핵심 성장 영역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신재생 에너지 보조와 에너지 프로슈머를 꼽는다. 전통적으로 최종 수용가에서 사용하던 ESS의 대표적인 용도는 비상용 무정전전원장치(UPS)였다.

상업용 또는 주거용 건물이 밀집한 장소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공간의 제약이 있고 대규모 저장용량의 확보가 쉽지 않아 자가 사용을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리튬이온 배터리의 등장으로 상황은 변하고 있다. 기존에 주로 사용했던 납축전지보다 몇 배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자가 사용 외에도 시간대별 전기가격 변화를 이용한 경제적 효용도 가능해졌다. 심지어 남는 전기를 외부에 판매할 수도 있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동시에 공급하는 에너지 프로슈머가 가능해진 것이다. 자가용으로 설치된 신재생 에너지 발전과 ESS를 연계한 확장사업모델도 기대할 수 있다.

여전히 비싼 ESS 탓에 아직은 투자비 이상의 수익 확보가 쉽지 않지만, 신재생 에너지 발전과 ESS의 동반적인 가격 하락세를 고려하면 본격적인 확산도 기대해볼만 하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과 ESS를 결합한 통합 시스템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핵심 하드웨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신규 기업들의 시장 진입도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배터리 제조설비를 보유한 전기차 기업들, 그 중에서도 전기차 시장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던 테슬라가 선봉에 섰다.

테슬라는 기능뿐 아니라 심미적인 요소까지 고려한 완제품 ‘파워월(Power Wall)’을 출시하며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제품 출시 1주일 만에 3만8000대의 예약 주문이 폭주, 1년 치 판매량을 모두 소진하기도 했다.

경쟁사들의 행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배터리 제조사를 인수한 독일 다임러벤츠도 유사한 형태의 가정용 ESS를 출시했으며, 닛산은 한술 더 떠 자사의 전기자동차 ‘리프(LEAF)’의 중고배터리를 옵션으로 제시해 가격 차등을 통한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이 외에도 자동차 기업들은 전기차를 저장장치로 활용하는 V2G(Vehicle to Grid), 실시간 수요관리(Demand Response)등 전기차를 매개로 다양한 에너지 저장 신사업에 관심을 두고실증 사업에 참여 중이다.

소형 ESS 시장에는 다양한 중소기업의 시장 진입도 활발하다. 신재생 에너지 설비 등 기존 주력 사업 중 ESS와의 연관성을 계기로 사업을 확장하는 기업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으며, 차별화된 기능과 디자인을 무기로 틈새시장에 뛰어드는 스타트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오리슨(Orison)은 평범한 가전제품처럼 그저 플러그에 꽂기만 하면 작동하는 제품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개발했다. 해당 제품은 벽걸이와 스탠드형 등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게 디자인 해 고객들이 ESS를 인테리어 소품처럼 받아들이게 했다.

중대형 ESS는 보다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대규모 신재생 에너지 발전, 유틸리티 등 대단위 ESS 사업은 설비를 구성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O&M(Operation & Maintenance) 등 각 분야별 전문영역뿐만 아니라 사업을 기획하는 전문 개발사(Developer) 역할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배터리 등 핵심 설비의 공급사가 증가함에 따라 하드웨어의 문턱은 낮아지는 반면,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기획 및 개발역량에 따라 프로젝트 수익성이 좌우됨에 따라 개발사의 중요성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태양광 시스템 설치업체 솔라시티를 합병한 테슬라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신재생 에너지 개발사들의 시장 진입도 확대되고 있다.


ESS, 여전히 미완의 대기

엄밀히 말하면 ESS 시장은 아직 개화기조차도 이르지 못했다. 미국 전력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글로벌 발전설비 규모 대비 ESS 설치 용량은 채 2%가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전통적인 양수발전이 99%를 차지하고 있어 차세대 ESS 시장은 여전히 준비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격 하락이 선행돼야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도하는 현재 시장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결국 배터리 가격의 하락 속도가 중요 변수다. 이에 대해 테슬라, GM 등의 전기차 기업들은 공격적인 입장이다.

테슬라는 기가팩토리가 안정궤도에 진입하는 2020년대 중반에는 배터리 가격이 ㎾h 당 100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GM 역시 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전기차 전문가들은 이 시점을 전기차가 보조금 없이도 내연기관자동차와 경쟁이 가능한 시기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는 곧 배터리 보급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현 세대 리튬이온 배터리가 이론적인 한계 용량에 직면해 있어 에너지 밀도 개선이 어려운 한편, 원료 수급 불안 등으로 가격 하락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리튬, 코발트 등 핵심 원료는 최근 가격이 급증하기도 했다.

성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차세대 배터리 개발도 진행하고 있지만, 대중화에는 장기간이 소요될 가능성도 있다.

저렴한 비용과 성장성을 무기로 시장의 주도권을 노리는 미래 기술들도 있다.

대표적 기술은 레독스 플로(Redox flow) 배터리. 전해액의 환원(Reduction)과 산화(Oxidation) 흐름을 이용해 전기를 저장하는 데 고체 전극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이차전지와 달리 전해액을 펌프를 통해 ‘흐르게’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수명이 길고 대용량화가 가능하다.

초기 단계 기술로 아직은 비싸지만 소재 개선을 통해 비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형 및 이동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단점도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을 중심으로 상용화에 대비한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최근 구글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용융염(MoltenSalt) 기술도 있다. 저렴한 원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성장을 기대할 순 있지만, 역시 설치 규모에 제약이 있고 실증 프로젝트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개발과 검증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기술을 개발 중이나 리튬이온 배터리를 완전하게 대체할 기술은 아직 없어 보인다.

결국 앞으로의 변화 방향은 두 가지 경우로 좁혀질 수 있을 것 같다.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이 기대만큼 하락하지 않는다면, 중대형 시장은 뒤따라온 경쟁 기술에 주도권을 내어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경우에도 소형 시장은 여전히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기대만큼 배터리 가격이 하락하거나 차세대 제품의 조기 상용화가 가능할 경우 리튬이온 배터리의 독점 체제가 생각보다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3호(2017년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