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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창조적 파괴’ 슘페터는 테슬라를 어떻게 볼까?

2017-05-25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테크M = 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슘페터 이전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균형 상태를 찾는 것에 몰두했다. 그것은 자원이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최적으로 분배된 정상적인 상태다. 수급 불일치로 재고가 쌓이거나 실업이 늘어나는 불균형은 정상이 아니며 이내 정상 상태로 복귀한다.

반대로 신산업에 수많은 참여 기업들이 달려들면서 흥망을 거듭하는 것도 정상이 아니며 초과이익은 결국 사라지는 것이 정상이다. 말하자면 모든 파도는 잠시 일어나는 비정상 상태이며, 결국 잔잔한 정상 상태로 돌아가려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슘페터는 거꾸로 생각했다. 파도가 정상이며 잔잔한 것이 비정상이다. 다시 말해서 정지가 아니라 변화가 정상이라고 본 것이다. 현실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안정을 꿈꾸지만, 시장은 좀체 그를 허락하지 않는다.

누구나 일자리를 편하게 지키고 싶고 순탄하게 매출을 일으키고 싶지만 시장은 비정하다. 비극은 항상 내 뜻과 무관하게 온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균형 상태 같은 것은 동화 속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슘페터는 균형이론 자체를 버린 것이 아니다. 극복한 것이다. 그는 왈라스의 일반균형이론을 이론경제학의 대헌장(Magna Carta)이라고 일컬었을 정도로 예찬했다. 하지만 그는 왈라스가 묘사한 세계가 현실의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왈라스의 이론을 자신의 방법론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거치대로 삼았을 뿐이다.

슘페터에게 균형은 파괴당할 대상으로 등장한다. 보존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창조적인 소수의 사람들(creative minority)이 바로 그 파괴의 주역이다.


창조적인 사람은 왜 소수인가? 

그리스어 ‘카리스마(kharisma)’는 신으로부터 받은 은총이라는 뜻이다. 아프로디테의 딸  이름이 카리스(charis)였다. 나중에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을 뜻하게 됐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번역된 신약성서에서 사용될 때에만 해도 철저히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단어가 정치적 리더십과 결부돼 사용된 것은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부터였다. 이후 카리스마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더 나아가서 추종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닌 정치 지도자를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됐다.

슘페터의 ‘Theorie der Wirtschftlichen Entwicklung(독일어 1판 1911, 2판 1926)’은 영어로 ‘Theory of Economic Development(1934)’로, 한국어로 ‘경제 발전의 이론’이라고 번역됐다. 하지만 진화경제학자 안데르센(Esben Sloth Andersen)도 지적했듯이 ‘Entwicklung’은 발전이 아니라 진화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발전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대상을 향상시킨다는 뜻이 강하다. 반면 진화는 의도를 가지고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조차 불가능한 과정이다.

슘페터는 경제 진화에 대해 카리스마를 갖춘 소수의 기업가가 추동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세계는 누가 그 소수자로 등장할지 절대로 미리 알 수 없다. 변이(mutation)는 예측불가능하다.

카리스마는 진정 하늘로부터 선택된 소수의 영웅적인 인물들이 갖춘 특성이다. 그런 면에서 슘페터의 생각은 철저한 엘리트주의, 더 나아가 영웅주의였다. 모든 사람이 선택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제 진화의 이론’ 영역판은 독일어 2판을 대본으로 했는데, 기업가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독일어 1판과 많은 차이가 있다. 1판에서는 소수의 동적인 기업가와 다수의 정적인 인간을 대조하면서, 전자는 타고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는 독일 역사학파의 영웅주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반면 2판에서는 개인의 천품에 대한 설명은 빠지고 기업가의 역할이 경제의 합리화된 기능으로 재등장했다. 즉, 기업가에 대해 탈인격화가 이뤄진 것이다.

1판에 등장했던 표현이 2판에서 사라진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여하튼 비평가나 대중의 입장에서는 이런 영웅주의적 발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역사에서 영웅의 역할만을 강조하다 보면 영웅이 아닌 자들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이 생각이 극단으로 치우치면 소수의 영웅을 위해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쯤이야 희생당해도 좋다는 전체주의 내지 독재 사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슘페터의 정신적 제자였던 드러커(P. F Drucker, 1909~2005)는 훗날 카리스마형 지도자를 부정하게 된다. 슘페터가 청년기를 보냈던 20세기 초엽은 전기, 전화, 라디오, 내연기관 기술 등을 중심으로 2차 산업혁명의 성과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는 천재적인 발명가와 혁신적 기업가가 펼치는 세기의 드라마를 경험했다.

하지만 드러커는 소수의 천재가 아니라, 조직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시대를 살았다. 탁월한 영웅 개인의 힘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시대가 됐음을 알았다. 그래서 모든 구성원의 강점을 통합해 성과를 구현할 책임이 있는 지도자를 강조했다.


사회는 진화를 통해 바뀐다

슘페터에게 경제 진화는 점진적이지 않고 단속적인 것이었다. 역사는 단지 작은 사건들이 축적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도약이 한 차례씩 몰아침으로써 진화가 성립한다. 그 도약은 오직 창조적 소수자가 선도한다.

에디슨, 벨, 포드, 스티브 잡스, 이런 사람들이 한 번 크게 뛰고 난 뒤 수많은 모방자들이 출현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단순히 새로운 세계를 여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회 계급을 송두리째 파괴한다는 데 무서움이 있다.

슘페터의 혁신은 크리스텐센(Christensen)이 단순히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라고 일컬었던 것들의 등장보다 훨씬 큰 사건이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는 물론 과거의 모든 사회와 문화의 영역에서 기존의 행위 규범을 송두리째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역사를 이끈 창조적 소수자는 그 추종자들과 더불어 대개 새로운 지배계급을 형성한다. 유럽 중세사회에서는 귀족과 교황청이 그렇게 생겼다. 그 집단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을 노예나 평민으로 살아야 했다. 근대 사회에는 해상 무역과 금융업을 선도한 집단에 연원을 두고 자본가 계급이 탄생했다. 20세기에는 대학 교육을 받은 화이트컬러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21세기에는 대학교 졸업장 내지 각종 화이트컬러 자격증이 무의미해지는 시대가 왔다. 대신에 자신만의 강점으로 무장한 덕후 또는 데이터 과학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자유인들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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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가는 기존의 관행을 다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지금 신흥 재벌로 등장한 모든 가문, 모든 개인은 언제 어떻게 또 다른 혁신가 앞에서 무릎을 꿇을지 모른다.

이 시대의 승자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테슬라도 앞으로 예외가 될 수 없다.

 

어느 시대에나 새로운 지배계층은 기존의 상류층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신흥 명문가는 종종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나온다. 예컨대 벤더빌트(Vanderbilt) 가문의 선조는 네덜란드에서 이민 온 뉴욕 허드슨 강가의 하역 노동자 출신이었고, 정주영은 가난을 피해 가출해서 일용직 건설 노동자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등 누구도 대부호나 상류층 출신은 없다.

슘페터는 사회 상류층은 마치 투숙객들로 붐비는 호텔과 같다고 말했다. 언제나 밑에서부터 새로운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위층의 사람들은 밀려난다. 밀려난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그토록 호사를 누렸는지 아련하기만 하다.

1대의 혁신이 창출한 부 또는 기존 사회 질서에서 누렸던 부는 2대까지는 갈지 몰라도 대개 3대부터는 흐릿해진다. 예컨대 토마스 만의 ‘부덴부룩스 가문(Buddenbrooks, 1901)’이나 염상섭의 ‘3대(1931)’는 구질서에서 복을 누렸던 귀족이나 지주가 외부 사회의 변화 앞에서 속절없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마르크스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기다릴 것도 없다. 사회가 상류층을 파괴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들은 스스로 도태된다. 혁신가는 기존의 관행을 다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신흥 재벌로 등장한 모든 가문, 모든 개인은 언제 어떻게 또 다른 혁신가 앞에서 무릎을 꿇을지 모른다. 포드와 GM이 그렇게 몰락해가고 있듯, 이 시대의 승자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테슬라도 앞으로 예외가 될 수 없다.

 

 


창조적 파괴의 도덕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Democracy, 1942)’에서 오늘날 항간의 유행어가 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개념이 던지는 메시지의 초점은 창조나 혁신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여기에 초점을 두면 대부분 함정에 빠진다. 그보다는 관행화 또는 진부화가 초점이다. 모든 새로운 것은 관행으로 전락하고 반드시 진부화 된다. 이것은 필연이다. 문제는 이 진부화된 방식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립 기반을 서서히 잃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과 그 안의 사람들은 지금 따르는 방식이 단순히 관행이자 타성인지를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외부에서 누군가 그것을 부수며 등장한다. 혁신가가 변화시킨 세상에서, 과거의 관행 속에 살던 사람은 퇴출당할 즈음에 가서야 뒤늦게 저항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진화경제학 저널(Journal of Evolutionary Economics)’의 2015년 슘페터 특집호에서 나이팅게일(Paul Nightingale)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사상이 19세기말 유행했던 독일의 종교 사상가 하르낙(Adolf von Harnak,1851-1930)의 역사 발전 사상과 너무도 유사함을 지적했다. 막스 베버는 하르낙의 사상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베버를 읽었던 슘페터도 그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모든 종교는 항상 영웅적인 예언자로부터 태동한다. 예언자의 새로운 메시지는 잠들어 있던 사람들의 눈을 띄우고 정신을 각성시킨다. 사람들의 행동이 변한다. 하지만 어느 날 이 모든 것들이 진부해진다. 우상은 그렇게 탄생한다. 어느 날 새로운 예언자가 나타나서 이 우상을 파괴한다. 그는 파괴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핍박받는다.

하지만 그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그 예언자의 가르침은 어느 날 다시 우상이 된다. 그리고 다시 파괴자가 나타난다. 모세, 예수, 마틴 루터, 그밖에 기독교의 여러 개혁가들이 그랬고, 불교, 이슬람교, 유교 등 세계의 모든 정신적 전통에서 그런 일이 항상 일어났다.

 

 

세계를 뒤바꾸는 혁신기업은 항상 초기에 스피리트(spirit)로 충만하다. 하지만, 성과를 내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애초에 혁신이었던 것들이 점점 관행으로 바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성장하면서 구성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내에 관료주의가 점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래서 신생 혁신 기업 구글로 대거 이동했다. 그런데 구글이 성장하면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단지 연봉의 크기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고 느끼는 데에서 오는 위기감이 더 크다. 21세기의 전문가들은 조직에서 자신이 기여하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순간 이직한다. 세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 에릭 청(Eric Chung), 라스 라스무센(Lars Rasmussen) 등 구글의 최상층 인재들이 그렇게 판단하고 이직했다. 페이스북도 머지않아 비슷한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일이 절차화되고 관행화된다는 것, 사람들이 본성 상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경영자들은 이를 업무 효율화로 간주하고 더욱 장려한다. 경영자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매일 같이 지시하고 점검하지 않더라도 효율적인 시스템 하에서 알아서 돌아가게끔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경영자가 어디 있겠는가?

업무의 자동화, 절차화는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이 관행이 정착될 즈음 외부의 또 다른 기업가가 이 방식이 통하지 않게끔 세계를 파괴해 놓을 것인데 어찌할 것인가?

경영자는 조직의 안정을 향해서 나아가되, 동시에 안정 파괴자(destabilizer)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도저히 양립불가능 할 것 같은 난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것은 숙명이다.

글=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본 기사는 테크M 제49호(2017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