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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과 통하는 경제명언 ‘냉철한 머리, 따뜻한 가슴’

2017-03-30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지금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 원론의 틀은 앨프레드 마셜이 만든 것이다. 그보다 앞서 살았던 위대한 경제사상가들, 예컨대 아담 스미스, 맬서스, 존 스튜어트 밀 등은 오늘날 학교에서 배우는 경제학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우마차 시대의 사회사상 같고, 한계혁명의 주창자였던 제번스, 왈라스, 멩거만 해도 여전히 19세기의 낡은 초상화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마셜의 체계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복잡한 경제 현상을 간명하게 분석하기 위해 제시한 체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의 가정과 부분균형 분석 및 비교정태분석 방법론, 수요와 공급 곡선, 한계효용과 한계생산성, 기업의 이윤 극대화 가설, 독점과 규모의 경제 등 현대 경제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체계화시켰다.

물론 이 모든 구성 부품들의 원형은 전 시대 학자들이 만든 것이지만 이 모두를 일관된 체계 하에 통합시킨 것은 수학과 고전 역학에 통달했던 마셜의 탁월한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셜의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 제8판, 1920)’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 시대 학자들이 사용했던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라는 딱지를 떼어버렸다. 이는 ‘economics’를 ‘mathematics’나 ‘physic’에 버금가는 독립 학문으로 격상시키고 싶어 했던 그의 바람이었던 것 같다.


금권사회 정신적 황폐 막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셜은 여전히 정치경제학자, 아니 도덕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등장한 신흥 거대 기업들이 강도 귀족(robber barron)으로 불릴 정도로 재력을 독식하는 모습을 봤다.

금력(金力)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막을 수 있는 장치로 경제 기사도(economic chivalry)를 내세웠다. 기업가들이 중세의 기사처럼 명예와 신의를 중시함으로써 물질적 권력에 상응하는 정신적 책임을 갖출 것을 요구한 것이다.

마셜이 1885년 케임브리지대학 취임 강연에서 남겼던 말, “냉철한 머리(cool head), 그러나 따뜻한 가슴(warm heart)”은 이제 경제학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금언이 됐다.

그는 빈곤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에 따뜻한 동정심이 아니라 냉철한 경제학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빈곤을 배격한 이유는 빈곤 자체가 악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빈곤이 인간성을 추락시키는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향상(human betterment)을 위해서는 우선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셜은 물질적 진보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인간의 삶을 도덕적, 문화적으로 보다 고양시키려는 목적에 봉사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경제 성장은 인간을 향상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소비 수준의 전례 없는 향상이나 GDP 증가 자체는 이 목적에 봉사하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

그는 안락(comfort)의 향상과 삶의 수준(standard of live) 향상을 구분했다. 전자는 날로 증가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며, 후자는 지능과 활력과 자기 존중감을 향상시키고 무절제한 사치와 탐식을 줄이며, 도덕적, 육체적으로 파편화된 삶을 보다 멀리하는 것이다.

오늘날 생활수준(standard of living)이라는 표현은 마셜이 말했던 ‘삶의 수준’과 분명히 다르며, 오히려 전자에 가깝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그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지불받은 충분한 임금 수준은 전자를 달성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후자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가 말했던 삶의 수준은 요즘 말하는 삶의 질(quality of life)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본질은 다르다.

삶의 수준은 보다 내면적인 것이자, 목적 지향적인 것이다. 그가 보기에 진정한 진보(progress)란 단지 경제 총량이 증가한다거나 소득 분배가 더욱 공정해지는 것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 사람들의 내면이 보다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요와 공급, 화폐와 신용, 생산과 분배 등 그가 제시한 여러 경제 원리 뒤에는 이를 실천하는 사람의 역할이 있었다. 노동자이거나 경영자이거나를 막론하고, 그는 교육을 통해 항상 무지를 극복하고 출생이나 인맥 대신 능력을 기반으로 삼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봤다.

그래야만 보다 선진화된 나라로, 앞선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마셜은 단순히 경제학 이론을 정립한 차원을 넘어 경영자의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경제의 작동 원리와 나란히 가야 하는 ‘사람’의 행동 원리를 어렴풋이 깨닫고는 있었지만, 이를 좀 더 체계화시키지는 못했다. 실제로 그는 ‘경제학 원리’의 제4편 제12장에서 현대 주식회사의 지배구조와 그 안에서 새로 등장한 경영자 계층이 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서술했다. 이는 전 시대의 주류였던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이렇듯 마셜이 맹아 형태로나마 취급했던 경영자 사상은 20세기 후반 새뮤얼슨(P.A. Samuelson, 1915~2009)이나 맨큐(N. G. Mankiw, 1958~)의 경제학 원론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 결과 오늘날 경제학에서 사람은 오직 기호로만 남고 그 내용은 완전히 사라졌다.

경제 현상에서 사람을 되살리는 작업은 훗날 드러커(P.F.Drucker, 1909~2005)와 같은 경영 사상가가 등장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내부 경제와 외부 경제

마셜이 전시대의 정치경제학자에 비해 유난히 눈길을 둔 현상은, 산업의 지역 집중(concentration in particular localities)과 수익체증(increasing return)이었다. 이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새로운 현상으로서 아담 스미스나 존 스튜어트 밀도 보지 못했던 현상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유럽과 미국 전역에 대기업 조직과 산업 단지가 등장하고, 수송, 통신, 전력 인프라가 확산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개념에 착안했다.

경제학 원리의 제4편 10장은 바로 이 산업의 지역집중을 다뤘다. 지역집중이란 어떤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기업이 특정 지역에 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장터는 한 곳에 북적대고, (근대사회에서) 섬유회사는 광업과 기계공업 인근에 위치하는 경향이 있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기 유리한 지역에 모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자원에는 물리적인 인프라의 확보, 이웃하는 사람들을 통한 정보 입수의 용이성, 저렴한 원재료나 노동력 구득 비용 등이 포함될 것이다.

한편, 고객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상품에 대한 비교 및 선택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날 실리콘밸리는 집적의 대표적인 예다. 첨단기업들은 모여 있을수록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더구나 지식 공급의 원천인 대학을 인근에 두고 있다.

이런 현상은 마셜이 제시했던 내부 경제(internal economies)와 외부 경제(external economies)라는 두 가지 개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먼저 기업 조직은 거기 모인 사람들의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크기에 따른 내부적 이점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내부 경제다. 분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숙련이 조직원 사이에 상호기여하면서, 기업은 단지 개인들이 그 활동을 할 때보다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또 성공은 신용을 부르고 신용은 다시 성공을 부른다. 물론 이런 내부 경제는 영원히 유지되지 않는다. 생물체가 성장하는 것처럼 어느 시기가 되면 초기 창업가의 정신과 육체는 퇴색하고, 융통성과 혁신 능력은 저하된다.

이때 보다 젊고 규모가 작은 경쟁사들의 등장 앞에서 기존에 내부 경제에 따른 이점은 더 이상 발휘되지 못한다. 

한편, 외부 경제는 상호보완적인 연관 산업 또는 연관 기업들이 형성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말한다. 지역 집중은 연관 산업이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특수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굳이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지 않더라도, 기업이 접근 가능한 시간 또는 공간 범위 내에서 사업 목적에 기여하는 각종 정보, 지식, 원재료, 기타 자원을 용이하게 얻을 수 있다면 그만큼 외부 경제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1990년대 인터넷과 IT 신경제가 등장하면서 복잡계 경제학(economics of complexity)이 유행했다. 당시 아서(William Brian Arthur, 1946~)는 수익체증의 원리가 IT 신경제를 지배하는 원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통 경제학의 수익체감(decreasing return) 원리로는 신경제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공박했다. 

토지에 노동력을 추가로 투입했을 때 증가하는 수확량은 이전 노동력의 그것보다 감소한다.  이것이 수익체감이다.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수익체감, 즉 한계생산성 감소의 원리에 집착했다. 이렇게 가정해야만 자원의 투입을 서서히 증가시키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익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최대 지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수익체증을 가정하면, 자원을 투입하면 할수록 이익이 계속 늘어나므로 투입을 멈출 균형점을 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전통 경제학의 균형이론은 수익체감을 가정했고, 복잡계 경제학자의 눈에는 이것이 비판 대상이 됐다.

하지만 경제 이론은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전통 제조업에서 수익체증은 이미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마셜은 규모 수익 체감만이 아니라 규모 수익 체증이 지배하는 전통 경제, 아니 당시로서는 마셜의 눈에 비친 신경제의 모습을 오래 전에 묘사했었다. ‘

경제학 원리’ 제4편 제13장에서 그는 자연이 지배하는 경제에서는 수익체감이 작용하지만, 인간의 역할은 수익체증의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더구나 1차 산업이 아닌 한 노동과 자본의 증가는 일반적으로 수익체증을 낳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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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2차 산업혁명기 산업단지와 장터가 디지털 시대에 맞게 옷을 갈아입은 것,

즉 마셜이 말했던 지역 집중과 외부 경제가 디지털 버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문명화된 국가가 빨리 부자 되는 이유

마셜은 수익체증의 효과야말로 자연이 인간에게 가하는 저항을 인간이 무력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고 보았다.

수익체증과 수익체감의 두 경향은 어디서나 상대를 무력화시키려고 압박한다. 기업 조직이 성장하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내부 경제가 작용하면서 수익체증을 낳는다.

조직화 정도가 클수록 동일한 상품을 추가로 생산하고 공급하는 데 훨씬 적은 시간과 노력, 금전적 비용으로 가능하다.

문명화된 국가의 부가 인구 증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유는 바로 수익체증 때문이다. 거기에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 지식, 정보, 숙련, 그리고 도덕의 공유와 상승 작용이 있다.

그러나 미개국에서는 반대의 현상, 즉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생산력은 증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구가 자연에 굴복한 상태, 즉 수익체감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셜은 1924년에 사망했고 2차 산업혁명이 꽃 피었던 시절을 경험했다. 1차와 2차 산업혁명에는 외부 경제 기반이 확산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내부 경제의 효과가 컸다.

18세기 후반 이후 1차 산업혁명이 기계화를 낳고 19세기 말 전력, 수송, 통신 인프라가 대거 구축되면서 드넓은 대륙과 해외 시장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이 속속 등장했다.

내부 경제의 장점을 살린 대기업의 성장은 20세기 후반까지 지속됐다. 동시에 외부 경제가 작용하는 산업 집중지역, 예컨대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단지 같은 것들이 20세기 초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3차 산업혁명이 촉발됐고, 힘의 축은 내부 경제에서 외부 경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식이 중요한 생산 요소로 등장하면서, 다양한 생산 자원들은 거대한 한 조직에 묶여 있기보다 서서히 외부의 아웃소싱 조직으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21세기에 공유경제,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기가 도래하면서 굳이 거대 조직이 자원들을 내부에 통제하고 결속시킬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단지 목표를 공유하는 분산된 전문가 또는 그 팀이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연합한 형태로 작업을 수행해도 되는 시기가 됐다. 

정보 검색, 문화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핀테크 등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플랫폼 비즈니스 정도가 그나마 대규모 조직으로 가동하겠지만, 그들은 단지 공간이나 길만을 제공할 뿐 내용물을 직접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은 2차 산업혁명기 산업단지와 장터가 디지털 시대에 맞게 옷을 갈아입은 것, 즉 마셜이 말했던 지역 집중과 외부 경제가 디지털 버전으로 재탄생한 것에 불과하다.

누가 아는가? 먼 훗날 디트로이트 전역은 황폐화되고 3D프린터로 개인 맞춤형 자동차를 출력하는 숍이 마을마다 생겨날지. 

 

 

앨프레드 마셜

Alfred Marshall,
1842~1924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의 세인트존스칼리지를 졸업했다. 수학, 고전 역학, 윤리학에 심취했으나,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를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아 경제학 연구를 시작했고, 1885년에 케임브리지대학 정치경제학 교수가 됐다.

영국 케임브리지 학파의 태두이자 신고전파 경제학(neoclassical economics)의 정립자로, 주저 ‘경제학 원리(초판, 1890; 제8판, 1920)’ 등을 남겼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7호(2017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