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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경제는 물질이 아니라 욕구와 심리다

2017-02-24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오스트리아 학파의 칼 멩거(Carl Menger)는 흔히 영국의 제본스(W. S. Jevons), 프랑스의 왈라스(L. Walras)와 더불어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의 3대 주창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한계혁명이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종전에 데이비드 리카도와 존 스튜어트 밀이 정립한 영국식 주류 비용가치론을 180도 뒤집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어떤 재화의 가치는 그 재화에 투입된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멩거는 재화의 가치가 전혀 다른 곳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가치는 재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느끼는 만족의 정도에 의존한다. 이런 생각을 ‘주관적 가치론’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는 재화가 그 인간이 욕구하는 수준보다 많이 공급돼 있으면 그 재화는 가치가 없으며, 반대의 경우에만 비로소 가치가 있게 된다.

공기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공급량이 상대적으로 무한하기 때문에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가치가 없다. 하지만 식량이나 주택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생활에 절실하지도 않은 사치재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간의 무한한 욕구에 대비했을 때 제공되는 재화의 양에는 대부분 한계가 있다.

경제주체는 의미가 큰 욕구를 먼저 충족시키도록 자원을 배분하고, 그러고도 재화가 남으면 그 다음 중요성을 지닌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쓰며, 최종적으로 재화가 없으면 아예 단념해야 할 욕구로 남게 된다. 이렇게 해야만 욕구를 최대로 충족시킬 수 있다. 이것이 멩거가 생각한 단계적 선택과 포기의 원리였다.


욕구 선택과 포기의 원리


그의 사상은 두 갈래의 전통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훗날 영국의 로빈스(Lionel Robbins, 1898-1984)가 계승해 정식화시켰다. 그 덕분에 오늘날 주류 경제학은 과거 정치경제학자와 달리 ‘다양한 목적과 대안 사이의 선택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됐다. 


또 하나의 전통은 오스트리아 학파의 자유주의 전통이었다. 그는 인간의 욕구 충족은 철저하게 개인의 고유함, 즉 그만이 지닌 차이점에 의거해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 결코 사회 자체가 아니다. 사회의 작동은 개인의 자유에서 연역돼 나오는 것일 뿐이다.


또한 이전의 정치경제학자들과 달리 멩거는 명시적으로 개인의 인지 능력 한계라는 문제를 부각시켰다. 모든 개인은 대부분 잘못 판단한다. 경제는 결코 조화로운 과정이 아니라, 시간을 거치면서 오류의 형태로 방황하는 것이다. 경기변동도 그렇게 나타난다.


그러나 멩거는 이 자유로우면서도 인식 능력이 부족한 개인의 조직 경영 원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에는 이미 훗날 등장할 경영 원리의 맹아가 담겨 있었다.

뭔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가장 우선 순위가 높은 일에 그 자원을 배분하고, 그것이 충족되면 그 다음 순위의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행동의 대원칙이었다. 이는 경영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경영자는 탁월한 성과를 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지만 가용한 생산 자원은 늘 제약돼 있다. 시간은 항상 부족하고, 쓸 만한 인력은 언제나 찾기 힘들다. 원재료와 부품은 힘들게 구해야 하고 자금은 항상 부족하다.

경영자는 수많은 대안들 사이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지만 모든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대안이란 없다. 한 가지 측면에서 좋으면 다른 측면은 반드시 나쁘게 된다. 이때 그는 “우선순위는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의 사상 전통은 직계 제자인 뵘바베르크(Eugen von Bohm-Bawerk, 1851-1914)를 거쳐 훗날 슘페터를 배출했다. 슘페터의 혁신 사상은 다시 드러커(P. F. Drucker, 1909-2005)라는 걸출한 경영 사상가가 등장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드러커는 오늘날 현대 경영 사상의 실질적인 원조가 됐고, 20세기 후반 경영 컨설턴트와 소위 경영 구루(guru)라는 새로운 지식계층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오스트리아 태생이었던 드러커가 비용과 노력의 투입만으로는 절대 결과를 낳을 수 없으며, 고객창조라는 목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는 것만이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본 것은 멀리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원조인 멩거의 생각으로까지 거슬러 간다.

여하튼 드러커를 비롯한 수많은 경영 교사 덕분에 오늘날 기업가들은 욕구를 지닌 새로운 고객들을 끝없이 발견하고 생성시키는 일, 즉 고객 창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라는 사실이 상식처럼 각인됐다.


집단주의는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전통은 자연스럽게 케인즈식 집단주의 사고와 반대편에 서게 됐다. 케인즈는 멩거와 달리 경제를 일종의 총합으로 바라봤다.

지금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제 정책은 경제를 총합으로 보는 사고에 지배당하고 있다. 재정지출을 늘이면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런 사고에서 출발한다. 총합 사고에서 나온 정책이 전혀 무효한 것은 아니다.

불황기에 국내총생산(GDP) 증가와 고용 개선에 다소의 효과가 있던 적도 많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단기적 대응요법일 뿐 결코 근원적인 동력이 되지는 못한다. 이런 정책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세입 등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사업에서 국가채무가 급등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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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업은 고객을 창조하려고 하는가? 본질적으로

가격은 오직 욕구를 지닌 고객이 만들어주는 것이며,

결코 공급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2016년 국가채무는 645조원으로 GDP 대비 40%를 넘을 전망이다. 재정지출은 위기시 필요한 정책이기는 하나 경제가 한 번 이 효과에 맛을 들이면 서서히 중독된다.

이 상태에서 재정지출이 조금이라도 감소하면 자력으로 잉여가치와 구매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조직 또는 개인들은 큰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총액이 늘어나는 것이 과연 그 사회의 건강한 성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예컨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GDP대비 고등교육 지출액 비중(2016년 2.61%)과 연구개발 총 지출액 비율(2013년 4.1%, 이스라엘에 이어 2위)은 2010년 이래 최상위권을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늘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개체의 자유에 바탕을 두고 그가 지닌 고유한 강점들을 극대화하는 일은 사회를 집단으로 보고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개체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책임 있는 행동이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국가 개입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부득이한 경우, 예컨대 갑작스런 질병의 만연, 자연 재난, 외적의 침입과 같은 외부 현상이 발생할 경우 국가가 자원을 배분해 줄 필요가 있다.

특히 외교 활동이나 통상 협상은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한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소비자와 기업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기업의 비용 구조는 수요가 결정한다 


기업이 투입하는 비용으로부터 상품의 가격이 결정되는가,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으로부터 역으로 그 상품의 비용이 결정되는가? 얼핏 순환논법 같은 이 문제에 대해, 그는 후자가 정답이라고 보았다.


그는 소비자가 직접 소비하는 재화를 제1차 재화라고 불렀다. 그리고 제1차 재화를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재화를 보다 높은 차원의 재화라고 불렀다. 이런 식으로 모든 생산에 투입되는 요소들은 무수히 많은 차원을 거치면 소급된다.

그는 ‘국민경제학의 원리(1871년 초판)’에서 “높은 차원의 재화의 가치는 이 재화에 의해서 생산되는 생산물의 예상 가치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크다”고 말했다.


왜 기업은 고객을 창조하려고 하는가? 그래야만 비용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고객 창조가 이뤄지지 못하면 비용 스스로 자신을 감당하기 위해 추가 화폐 자본이 투입돼도 그 자본은 수익성을 달성하지 못한 채 소멸하게 된다.

자본 공급자는 그 기업으로부터 결별하고 기업 지속은 중단된다. 자본은 고객을 창조할 수 있는 다른 기업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오직 혁신만이 살 길이라는 이유는 멩거의 가격 이론을 들여다보면 명확해진다.

본질적으로 가격은 오직 욕구를 지닌 고객이 만들어주는 것이며, 결코 공급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점을 이렇게 바꾸면 오늘날 노동 수요의 변화 방향을 이해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물적 생산에서 지식은 기계화를 통해 한층 높은 비중으로 기여했지만, 그다지 고도의 지식이 필요 없는 육체노동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또한 분야를 막론하고 장비나 작업 절차에 대한 숙련된 운영 지식을 갖춘 사람이 높은 급여를 받았다. 그러나 21세기에 육체노동은 물론이고 단순한 기능이나 숙련만으로 수행하는 노동에 대한 수요는 점점 줄고 있다. 그들의 임금 또한 하락하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생산은 지식을 통해 점점 더 우회(迂廻)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농작물 생산에서도 과거처럼 사람이 직접 씨를 뿌리고 흙을 갈아주는 단계를 지나, 식물공장에서 온습도와 양분 공급을 담당하는 장치와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외부 개발자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직접 대상물 앞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외부에서 간접으로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왜 그런가? 수요자의 욕구 본성상 낮은 가격과 양호한 서비스를 추구하는 선택 압력(selection pressure)이 비용 인하 압력(cost-down pressuer)을 반드시 낳기 때문이다.

필경사 대신에 활판인쇄술이 등장하고, 다시 정보지나 서적의 단계를 지나 검색서비스가 등장하며 대형 유통 매장의 단계를 지나 전자상거래가 등장하게 된 것도, 그리고 최근에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등장한 것도 멩거의 경제 원리로 보면 필연이다.


전통적인 생산방식의 파괴


기업은 어쩔 수 없이 이 압력에 버틸 수 있는 생산요소만을 남겨두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점점 버리게 된다. 과거 고임금 숙련 노동조차 기계 앞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랜 지식과 숙련에 의존해 일했던 집단으로부터 강력한 저항, 이른바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 아무리 극심하게 일어나도 이 압력에 저항할 수는 없다. 투입되는 비용 자체는 고객의 지불 의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방향은 그 반대다. 고객의 지불 의사가 그에 맞는 비용만을 허용한다. 이 점이 바로 2차 산업혁명이 막 태동할 즈음이었던 19세기 중후반에 멩거의 통찰이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점점 더 가속화할 것이다. 심지어 의사나 회계사 같은 전문가의 일이라 해도, 소프트웨어가 범접하지 못하는 일부 판단과 창의의 영역을 제외하면, 기계가 상당 부분을 대체해갈 것임은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규모가 큰 병원에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의사 개인을 면담하는 시간보다 진단 검사 장비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는 사실을.

이미 의사의 진료 성과는 의사 개인의 지식보다는, 발달된 진단 장비와 의료정보관리시스템 등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 회계업무를 비롯해 수많은 지식 전문가의 업무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해 온 의사나 회계사 개인의 전문 지식 자체가 구사하는 역할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보다는 그들의 전문 지식과 인공지능 업무처리 절차를 동시에 구사할 능력이 있는 조직, 또는 업무에 간접적으로 투입되는 첨단 소재, 부품, 소프트웨어를 생산해내는 조직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증대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가능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멩거가 바라본 경제 원리상 숙명이자 필연이다.

 

 

 

Carl Menger 
1840-1921

오스트리아 갈리치아(Galicia) 지역의 노비송치(Nowy S.cz, 현 폴란드 령)에서 변호사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빈대학교와 프라하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1867년 크라카우 대학(Jagiellonian University in Krakow)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렘버거 신문(Lemberger Zeitung), 빈신문(Wiener Zeitung) 등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격 변동 현상을 연구했고 경제학으로 관심이 기울었다.

1871년 ‘국민경제학 원리(Grundsatze der Volkswirtschaftslehre)’ 초판을 출판했고, 이듬 해 이 연구를 인정받아 빈대학교 비정규직 교수가 됐다. 1876년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황태자의 개인 교사로 일했고, 1879년 이후 빈대학의 정교수로 활동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6호(2017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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