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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경제를 프로그래밍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2017-02-04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약 100년 전 영국에서 대량 실업과 불황이 지속되자 대영제국의 위대한 경제학자 마샬(A. Marshall)의 완벽한 경제학은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이론 체계를 따르자면 수량과 가격 조정으로 실업이 이내 해소돼야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케인즈(J. M. Keynes)는 마냥 기다릴 수 없으므로 당장 재정 지출을 증가시켜 실업을 해소하고 불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균형은 짧은 시간 안에 자동 회복되지 않으므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멀리 케인즈까지 갈 필요도 없다. 2008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지기 파생상품의 초대형 손실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전 세계 경제를 침체에 빠뜨렸다. 너무 놀란 경제학자들 스스로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것이라며 자기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재정지출 증가와 양적 완화라는 가능한 대책을 다 구사했음에도 전처럼 효과가 잘 나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청년 실업과 저성장이 장기화되는 국면에서도 경제학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학의 이런 무능이 진정 현실과 담을 쌓은 ‘우아한’ 경제학의 실패를 말하는 것인가? 그 비판 대상의 중심에 일반균형이론이 있다. 레옹 왈라스.가 그 선구자였다. 물론 그 이론을 겉으로만 보면 경제가 마치 자동으로 균형이 달성되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반균형이론 자체는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죄라면, 왈라스가 추구했던 지식 체계 안에서 일반균형이론의 위치를 모른 채, 논리적인 계산과 증명으로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자족하는 경제학자들의 착시에 있을 것이다. 


왈라스는 결코 기계적인 이론을 남기는 데 그친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청년 시절 이미 예술과 문학, 철학 글쓰기로 다양한 지적 훈련 과정을 거치며 성장한 전형적인 프랑스 사회 사상가였다.

일반균형이론은 그가 인문학으로부터 출발해서 자연과학과 정치경제학의 훈련을 거쳐 탄생시킨 방대한 지식 편력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과학은 사회 설명 위한 출발 요건에 불과 


왈라스는 상이한 현상들로 구성된 역사에서 변하지 않은 원리들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산업과 상업 사회 단계에서 과학 정신에 따라 구축한 원리가 오늘날 그의 주저로 알려진 ‘순수경제학 요론(초판 1874년)’이다.

그는 모든 개별 경제주체가 교환으로부터 얻는 효용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과 모든 상품은 반드시 한 가지 가격으로만 거래된다는 두 가지 전제 조건 하에서, 시장을 구성하는 모든 상품들이 모든 거래 참여자에게 가장 높은 효용을 제공하면서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는 교환비율(가격)의 체계를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상의 중개인이 수행하는 모색(tatonnement) 과정은 그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원리였다. 모색이란 상품의 수급이 일치하지 않을 때 중개인이 가격을 반복적으로 낮추거나 높여 제시함으로써 결국 수급을 일치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하지만, 이렇게 발견한 불변의 원리는 그의 입장에서 지식의 전부가 아니었다. 또한 결코 역사를 이끄는 절대법칙도 될 수 없었다.

그 옆에는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 즉 사람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지는 이 변하지 않는 원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지식과 세계를 계속 만들어내면서, 사회에 변화와 질서를 동시에 가져온다. 이것이 그가 생각한 진보였다.

그러나 그가 생각한 것은 의지만으로 세상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는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였다. 이런 생각은 그가 생시몽(Saint-Simon) 식 사회주의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보인다.


왈라스는 기업 간 자유경쟁이야말로 중세의 길드 생산 체제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당시 부상하고 있던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에 비해서도 더욱 우월한, 가장 진화된 조직 원리라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자유방임(laissez-faire)에 절대성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유방임이 순수한 상태에서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이 존재할 뿐이며, 그것이 현실에서 무조건 타당한 원리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런 취지에서 그는 자신의 ‘순수경제학’이 거래에 참여하는 개별 주체들의 효용이 평가될 수 있는 사적 영역에서 적용되는 법칙이며, 결코 공적인 영역에서 작동하는 원리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사회경제학은 개인에게는 자유(liberty)가 부여됨과 동시에 국가에는 권위(authority)가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는 적극적으로 개인의 기회 균등(equal opportunities)을 보장하는 정책을 펴되 그로부터 귀결되는 상이한 지위(unequal positions)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1867년 파리에서 자신의 사회사상을 공개적으로 강연했고 여러 글을 남기기도 했지만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자유주의자였던 왈라스가 토지 국유화 사상을 제기했다는 말에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표시하곤 한다. 그는 국가가 토지로부터 얻는 지대 수입으로 재정 지출을 충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조세 징수와 국채 발행이 재정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바라보면 다소 엉뚱한 발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조세가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국가 채무가 증대하면서 민간 투자가 밀려나고 미래 세대의 부담이 증가하는 것과 같은 문제를 방지함과 동시에 국가의 권위를 유지하는 그럴 듯한 해법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미 사유화된 토지가 대종을 이루는 오늘날 자유주의 국가에서 그 실현가능성은 의심스럽다. 그의 토지 국유화론은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권위 사이에서 절충을 하고자 했던 그가 고민 끝에 내놓은 견해라고 보인다.

여하튼 그가 말했던 일반균형은 그의 사고가 응용경제학과 사회경제학에 이르기 위한 첫 단계로서, 순수경제학을 정립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적 구상에 불과했다. 요컨대, 그의 일반균형 이론은 정지 상태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운동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었을 뿐, 정지 상태가 경제의 본질이라고 본 것은 아니었다.


재고가 누증하거나 가격 거품이 폭발하는 수급 불일치 상황이 현실에서 더 자주 보인다는 사실을 그가 과연 몰랐겠는가? 그는 현실에서 가격의 자유로운 변동이 균형의 달성을 언제나 보장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가격과 수급이 변화하면서 정지 상태를 언제든지 깨뜨리는 과정과 다시 균형 상태를 찾아가려는 작용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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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중심의 경제가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물인터넷(IoT)은 인간의 모든 경제 행동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를 공급하는 원천이 될 것이다.


일반균형이론에 빠진 경제학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균형이론은 그 체계성과 우아미로 수많은 경제학자들을 매료시켰다. 애로우(K. Arrow)와 드브뢰(G Debreu), 모리시마(M. Morishima), 파시네티(L. Passinetti) 등 숱한 두뇌들이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훗

날 랑게(O. Lange)의 시장사회주의, 칸토로비치(L. Kantorowich)의 계획경제이론, 레온티에프(W. Leontief)의 산업연관분석도 한결같이 왈라스의 일반균형이론을 사상적 모태로 삼았다. 

 


최근에는 기존에 개발된 모든 수리적 기법을 총동원한 ‘동태확률론적일반균형(DSGE: Dynamic Stochastic General Equilibrium)’ 이론까지 등장했다. 경제의 한 부문에 환율이나 세율, 재정 지출이나 통화량의 변화 같은 충격이 가해지면 경제 전체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분석하는 기법이다.

이처럼 왈라스의 일반균형 사상은 일단의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마치 통제 가능한 기계처럼 해석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런 모형들은 여전히 동영상이 아니라 정지화상이다. 경제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고정된 알고리즘을 지닌 컴퓨터 시스템과 같다면, 그리고 관련된 변수를 충분히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다면 이런 모델링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경제가 이 알고리즘대로 움직인다면 정책가들은 실업, 불황, 소득 불평등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것이다.

그동안 이렇게 개발된 정책들은 일종의 매우 불완전한, 버그투성이의 소프트웨어라는 사실이 매일 입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는 멈추지 않고 있다. 앞으로 경제학자들은 고정된 알고리즘에 머문 일반균형 패러다임을 넘어, 살아 움직이는 경제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 석좌교수이기도 한 베리언(Hal R. Varian, 1947~)은 2002년 구글에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입사했다. 그가 20세기 말엽인 1998년에 샤피로(Carl Shapiro)와 공저한 ‘정보시대의 규칙(Information Rules)’은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경제 원리를 제시한 베스트셀러로 알려져 있다.

미시경제학 베스트셀러 교과서 저자로 정통 이론경제학자기도 했던 그는 컴퓨팅 파워의 증대와 데이터의 증대가 미래 경제 분석에 미칠 영향을 일찌감치 눈치 챘다.

매스매티카(Mathematica) 언어를 이용해서 경제와 금융의 여러 문제들을 프로그래밍으로 분석하는 시도를 했다. 미래의 세계를 온통 데이터로 엮으려는 구글이 그를 채용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의 이런 시도가 있기 전까지, 1980년대 초 넬슨(R. Nelson)과 윈터(S. Winter) 같은 일부 진화경제학자들의 시도를 제외하고는, 주류 경제학자 사이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이론 분석을 보조하는 하나의 수단 내지 통계분석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 이후 명망 있는 경제학자들이 한때 홀대 받았던 컴퓨터 경제학(computational economics)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또한 전통적인 통계학의 연장선에 있던 계량경제학은 기존의 통계학 패러다임을 벗어나 데이터 과학으로 변신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계량경제학자들이 판에 박힌 형태의 가설 검증 방법론을 벗어나, 무질서해 보이는 데이터로부터 패턴과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론, 특히 기계학습 기법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물론 이런 노력들이 아직은 부분의 문제를 대상으로한 부분 모델링에 치중하고 있으며, 왈라스가 그렸던 수준처럼 경제 전체를 모델링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모델링 자체가 실물 경제의 소략한 흠투성이 모사판이라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이 실물을 제작하기 전에 모형실험을 통해 성능을 미리 테스트해보듯이, 기업의 의사결정이 모델링을 통해 그 효과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있다.


중개인 역할을 컴퓨터가 대신하는 경제


데이터 중심의 경제가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물인터넷(IoT)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모든 경제 행동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를 공급하는 원천이 될 것이다.

그때쯤 되면, 1874년에 왈라스가 ‘순수경제학’에서 묘사했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중개인이 가격을 다시 불러대곤 했던 장면들을 컴퓨터가 대신할 날이 올 것이다. 


당시 왈라스는 열혈 가득한 증권 중개인이나 농수산물 시장의 목청 큰 경매인에게서 중개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오늘날은 어떤가? 아마존 등에서 선보인 다양한 상품 추천과 가격비교 시스템이 이미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세계 곳곳에서 남아도는 자원들은 네트워크 공유경제 사업모델을 통해 수요자를 속속 찾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의 방대한 누적 데이터는 거래 시스템에 재투입되고, 설계자는 끝없이 개량된 시스템을 속속 개발하고 있다.

모든 거래는 자원의 수급 균형과 거래 참가자들의 최대 효용이 달성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적어도 정부나 제3의 세력이 그 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한 말이다.


이런 일이 단지 경량 소비재나 서비스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중화학 등 장치산업이나 생산재 산업의 일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인더스트리4.0과 스마트 팩토리가 이미 조달과 유통 체계에서 그 시동을 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일부 시장에 국한돼 있다. 그 수준도 여전히 유아 단계다. 1987년 전 세계 주식 시장을 강타했던 블랙 먼데이를 떠올려보라. 불완전하기 그지없었던 자동 주식거래 시스템이 시장 붕괴를 일으키는 일은 이따금 있었고, 지금도 그런 위험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왈라스가 150여 년 전에 품었던 순수경제학이 제대로 작동하는 세계에 대한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 인더스트리4.0은 이제 시작이다. 경제학4.0도 이제 시작이다. 

 

레옹 왈라스

Marie Esprit Leon
Walras,  1834-1910

프랑스에 브뢰(Evreuz) 지역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였던 부친 오귀스뜨 왈라스(Auguste Walras, 1801-1866)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영국의 제본스(W. S. Jevons), 오스트리아의 멩거(C. Menger)와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으로 한계효용의 이론을 개척한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그랑 제꼴 중 하나인 광산학교를 졸업하고 로잔느 대학교 정치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다.

‘순수경제학 요론: 사회적 부에 관한 이론(Elements d’economie politique pure, ou theorie de la richesse sociale), 초판 1874, 최종판 1900’, ‘사회경제학 연구: 사회적 부의 분배에 관한 연구(Etudes d’economie sociale; Theorie de la repartition de la richesse sociale), 1896’ 등의 저서가 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5호(2017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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