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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기획]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판교문화’ 만들어라

창조경제의 산실 판교테크노밸리 현장을 가다

2016-05-10최현숙 기자

판교테크노밸리는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을 중심으로 1000여 개의 크고 작은 업체가 공존하며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사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판교테크노밸리는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을 중심으로 1000여 개의 크고 작은 업체가 공존하며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사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4월 12일 오전 9시50분. 신분당선 판교역 주변은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여전히 붐볐다. 대부분의 도심 지하철역이 출근시간대를 지난 시각이라 한산한 반면 판교역은 아침 10시를 전후해서도 지하철이 도착할 때마다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출구를 빠져 나온 이들 대다수가 캐주얼한 옷차림에 백팩(가방)을 메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젊은이’들이었다.

박민제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차장은 “판교 기업들은 출·퇴근이 불규칙하고 정장 대신 편안한 후드 점퍼를 걸친 직장인이 많다”며 “대부분 환승버스나 도보로 이동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많은 만큼 전동휠, 킥보드 등을 타는 사람들도 꽤 된다”고 말했다.

거리에서부터 젊음과 개성이 공존하는 인상을 주는 판교테크노밸리의 모습이다.

ICT기업 집적…대한민국 기술의 심장

2005년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조성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일대 판교테크노밸리는 이제 1000개가 넘는 기업과 7만 여명의 근로자, 매출액 70조 원의 첨단산업단지가 됐다. 인구수나 경제 규모 면에서 웬만한 소도시를 능가하는 수치다.

대한민국 기술의 심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판교테크노밸리에서는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IT(64%)·BT(바이오기술, 10%)·콘텐츠(9%)·나노기술(1%) 등 신산업 분야 기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게임, 응용 소프트웨어(SW), 시스템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업종의 중견기업이 집적됐다.

중심가에는 엔씨소프트 R&D센터를 비롯해 카카오, 한글과컴퓨터, 엠텍IT타워, 한컴, DTC타워 등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강남 테헤란밸리에 있던 넥슨을 비롯해 NHN엔터테인먼트, 네오위즈게임즈, 웹젠,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주요 게임회사들이 대거 안착하면서 게임산업을 상징하는 핵심기지로도 부상하고 있다.

SK 주식회사 C&C와 SK케미칼, SK텔레시스, SK플래닛 등 SK그룹 계열사와 삼성중공업, LIG넥스원, 포스코ICT, 한화 등 20대 그룹 계열사 및 사업부도 자리를 잡고 있다.

이수현 넥슨지티 실장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한데 모여 첨단 산업분야에 도전하는 만큼 판교테크노밸리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판교테크노밸리에는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기업도 많다. 여의도나 테헤란밸리와는 차원이 다른 복지시설과 기업문화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여가와 동호회 활동에 필요한 장소를 제공하고 옥상 텃밭이나 카페테리아, 수면실, 미용실 등을 사내에 두며직원들의 창의성을 자극한다.

사무실 내에 여건이 안 되는 기업들은 주변 시설과 연계해 직원들이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다.

연차가 쌓이면 자동으로 승진하고 정년에 제한이 없는 마이다스아이티나 인사팀을 없애고 모든 직원들이 평등하게 일하는 블루홀 등 구글 부럽지 않은 기업들의 얘기도 전해진다.

판교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판교에 입주한 기업들이 직원들의 복지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IT기업의 성장이 직원들의 만족도와 연결된다는 특수성도 있지만 우수한 인재를 묶어 두려는 배경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까지 일사천리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이름난 IT기업만 있는 게 아니다. 수 백 개의 스타트업이 넥슨이나 안랩 같은 성공신화를 꿈꾸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모바일 차량 관리 애플리케이션을 서비스하고 있는 마카롱팩토리도 그 중 하나다. 김기풍 대표는 카카오 플러스친구 프로젝트를 담당하다가 창업에 나섰다.

지난해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8층에 입주한 후 선보인 차량 관리 앱 ‘마카롱’은 출시 1년만에 약 300만 건의 누적 차량관리 기록 수를 돌파하며 자동차 애프터마켓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김 대표는 “판교테크노밸리를 지원하는 정책 덕분에 창업에 필요한 공간과 시설을 제공받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업모델을 함께 고민하고 지원해주는 협력사도 근처에 있어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를 사업화로 이끌어가기에 최적의 조건”이라며 “판교에서 성공한 대표기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한데 모여 첨단 산업분야에
도전하는 만큼 판교테크노밸리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이처럼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툴’이 다양하다. 우수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사업화 교육부터 인큐베이팅, 창업, 해외진출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은 SW 융합클러스터를 운영하면서 사물인터넷(IoT) 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SW융합, 게임 분야 유망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창업 전주기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KT가 함께 운영하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스타트업 지원공간이 마련돼 있다.

6층부터 9층까지는 경기콘텐츠진흥원 산하 경기문화창조허브와 경기콘텐츠코리아랩이 둥지를 틀고 예비창업 교육과 스타트업을 위한 사무실을 제공하는 동시에 네트워킹 등을 통해 사업화를 지원한다.

최근 문을 연 스타트업캠퍼스는 미래부와 경기도가 함께 조성한 국내 최대 규모의 창업지원공간이다. 200여 스타트업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신기술과 결합해 상품화하고 성장 발판을 마련해주며 해외시장 진출까지 지원한다.

세무, 회계, 노무는 물론 번역까지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반적인 업무도 무료로 지원한다. 예비창업자들은 오디션을 통과하면 3년 동안의 입주자격을 얻을 수 있다.

모두 3개 건물로 이뤄진 스타트업캠퍼스에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국내외 민간 액셀러레이터를 비롯해 이스라엘의 요즈마그룹과 글로벌 SW 기업인 SAP 등이 참여해 스타트업 보육에 나선다. 3D프린터와 빅테이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돼 있다.

이 외에도 H스퀘어 옆 삼환컨소시엄 건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글로벌게임허브센터와 모바일게임 센터가 입주해 게임 분야 스타트업을 육성 중이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벤처기업들의 약진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판교발’ 벤처기업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아토리서치는 차세대 네트워크 화두인 SW정의네트워크(SDN) 및 네트워크 기능 가상화(NFV) 전문 벤처기업이다. 아토리서치가 지난해 선보인 ‘오벨(OBelle)’ 컨트롤러는 SDN 환경의 네트워크 장비와 응용 서비스를 관장하는 핵심 제품으로 높은 안정성과 성능으로 국산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정재웅 아토리서치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인텔, AMD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2010년 10월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다. 2012년 2월 서울에 한국법인을 만들면서 국내에서 제품 판매 사업을 본격화했다.

판교 입주 3년차인 정 대표는 “벤처기업들은 수요기업 접근성이 매우 중요한데 판교는 기술 미팅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 기업 간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이 형성되기 좋은 것도 매력으로 꼽았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첨단기술기업과 젊은 직장인들이 어울리면서 새로운 일터문화를 만들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첨단기술기업과 젊은 직장인들이 어울리면서 새로운 일터문화를 만들고 있다.)

가상현실(VR) 전문 솔루션 기업 무버도 판교테크노밸리와 인연을 맺으면서 ‘잘 나가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판교테크노밸리 투어를 할 때 김윤정 대표가 지인의 부탁으로 통역에 나섰다가 우연히 회사소개 기회를 얻게 됐고, 그 자리에서 글로벌 투자사 포메이션8으로부터 투자 약속을 이끌어낸 사실은 유명하다.

김 대표는 “한국을 찾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판교테크노밸리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투자 기회도 없었을 것”이라며 “한국을 대표하는 ICT 기업들이 한데 모여 있다는 상징성이 힘을 발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무버는 투자 유치를 계기로 해외 마케팅과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현재 글로벌 VR기업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37호(2016년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