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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인공지능 시대, 중요한 것은 확고한 가치관과 윤리"

[인터뷰]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총장

2016-04-29장윤옥 테크M 편집장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총장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총장)



문길주 총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환경학자이자 과학계의 맏형 KIST의 원장을 역임한 과학계 인사다. 지난 1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에 취임, 과학기술 전문가를 길러내는 임무를 맡았다. 오랫동안 과학계 전문가로 일하면서 우리 교육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나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문길주 총장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시스템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어떤 도구를 활용해 어떻게 인재를 키울 것인가 하는 고민보다 사람을 키워낼 것인가 하는 고민이 우선입니다. 대학 등 교육기관마다 추구하는 인재상이 있어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은 학생들이 관리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관리자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가르칩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은 학자를, 스탠퍼드대학은 창업자를 키워내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지요.

그럼 UST는 학생들에게 어떤 미래상을 제시해야 할까. 이것을 정하는 게 먼저인데 솔직히 구성원들이 모두 동의하는 인재상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인재를 쓰는 이용자의 입장에 있었잖아요.

그런데 막상 교육현장을 보니 이용자의 요구와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게 많더군요. 이 차이를 어떻게 좁힐지, 새로운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등이 요즘 고민하는 화두입니다.”



문 총장의 수사 없는 솔직한 답변은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인재를 길러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

2003년 설립된 UST는 연구를 통해 배우는 국내 유일의 국가연구소대학이다. 책상 앞에서 머리로만 배우지 않고 연구현장에서 실제 연구를 하며 배운다는 것이 강점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화학연구원, 생명공학연구원 등 32개 출연연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1900여 우수연구자가 교수진으로, 전공에 맞는 분야의 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하며 가르친다. 1416명의 석사와 박사를 배출했고 1282명이 석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학생들은 출연연이 가진 첨단장비와 우수한 시설을 이용하며 대형 국책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갖고, 출연연은 연구에 필요한 우수 인재를 활용할 수 있다.



덕분에 학생들의 논문 수준이 높고 연구 성과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박사 한 명당 3.35편의 SCI 논문을 냈고 특허출원도 3.43건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문 총장은 이런 정량적 성과에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인공지능으로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근심하지만 말고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뭔지, 앞으로 어떤 인재를 길러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학생들이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과연 변화하는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기르고 있는지는 고민해봐야 할 대목입니다. 수행 프로젝트나 연구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지는데, 졸업후 그 학생이 해당 분야에서 일할 확률은 10% 이하예요.

현장경험을 갖고 있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지금은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커리큘럼을 다양화하고 폭넓은 학습을 하도록 독려하려고 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윤리가 중요
미래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문 총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의외로 ‘윤리(ethics)’였다.

“과학기술을 하는 사람일수록 건강한 가치관과 투철한 윤리의식이 필수적입니다. 로봇을 만든다고 합시다. 앞으로 로봇은 다양한 분야에서 상황을 스스로 인식해 사람 대신 일하게 될 겁니다.

만드는 사람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만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최근 부상하는 자율주행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사람을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사례가 매우 많지요.

굳이 미래의 사례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프로젝트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연구자가 가장 잘 압니다.

세금을 받아서 당장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는 식의 연구를 해서는 안되죠. 이 과제가 사회와 공학을 발전시키기는 것인지 여부를 깊이 고민하는 엔지니어를 길러내는 게 학교의 역할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문 총장은 그동안 3박 4일에 불과했던 입학연수 기간을 올 가을부터 한 달로 늘릴 계획이다. 이 기간 동안 유에스티안(USTian)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집중 교육을 하겠다는 것.

“한 달이라는 기간이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을 더 알차게 만들어야 하는 건 물론이구요.”

엔지니어 또는 연구자로서의 윤리의식 고취와 함께 문 총장은 융합형 인재양성을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 융합형 인재란 어떤 사람일까.

“자신의 분야에서 지식과 역량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뉴튼의 제4의 법칙을 생각해내는 사람입니다. 뉴튼의 법칙에는 1법칙, 2법칙, 3법칙까지 밖에 없지요.

하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제4의 법칙을 만들어내려는 생각을 하고, 이를 시도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를 갖고 있지만 자율주행차는 우리가 먼저 만들지 못했고 세계 최고의 바둑 전문가가 있으면서도 인공지능으로 바둑을 이기려는 생각은 못했잖아요.”

문 총장은 취임사에서 전문성을 갖추면서도(Professional) 독창성을 갖춘(different) 특별한(unique) 교육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조합한 ‘프라우드(PROUD) UST’가 문 총장이 내세우는 구호다.

UST 본부 전경
(UST 본부 전경)



“프라우드 UST 만들자”
프라우드 UST는 구호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총장의 비전을 실현하려면 구성원들의 노력은 물론 교육기관으로 참여하는 출연연구소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문 총장은 이미 2000여 명이 종사하는 KIST를 이끌어본 경험을 갖고 있다. 문 총장은 어떤 스타일의 리더일까.

“비전을 실현하려면 직원들의 동참이 필수적이죠. 직원들이 한 방향을 보도록 하되 생각은 자유롭게 해 줘야합니다. 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놀이터 같은 직장을 만들고 싶어요.”

학교의 눈높이와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에 UST도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현재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구과학기술원(DG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포스텍(POSTECH),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5개다.



“당장 다른 과기특성화 대학과 함께 어깨를 겨루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평가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테고 그에 따른 불이익이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목표가 높아지고 위상도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한편으로는 다른 대학을 설득하면서 대학의 내실화를 꾀할 계획입니다.”

문 총장은 우선 2000여 명인 교수진을 1000명으로 정예화하고 교과목도 정비하기로 했다.

특히 1등이 아닌 특별한 인재를 기르기 위해 무크(MOOC)를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국내외 석학들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수강하고 부족한 점은 조교를 활용해 보충하는 등 다양한 강의방식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창업을 독려하지만 정작 우리 대학에 창업경험을 가진 교수는 드뭅니다. 평가도 논문 편수를 기준으로 이뤄지고요. 미국의 대학은 여러 가지 배경과 경험을 가진 교수진을 갖추고 있고 평가체계도 다양합니다.

대부분의 대학은 이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이해관계의 조정이 어려워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UST는 변화를 시도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학생들이 매니저나 연구자, 창업가 등 자신의 진로와 목표를 계획하고 이에 맞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골라 들을 수 있도록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문 총장의 구상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캠퍼스(위성시스템 및 활용공학) 연구지도 모습 - 위성시험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캠퍼스(위성시스템 및 활용공학) 연구지도 모습 - 위성시험실)




이 같은 프로그램이 정착되면 자연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자신만의 강점을 가진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구체적인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내부 의견 수렴은 물론, 다양한 해외의 사례도 살펴볼 계획이다.

“좋은 대학의 기준은 간단합니다. 그 대학의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기여하는 사람이 많으면 자연히 좋은 대학이 되는 거예요. 비전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10년 후에는 더 우수한 인재가 몰려들 것이고 20년쯤 후에는 UST 졸업생이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문길주 UST 총장은
51년생. 고교시절 외교관이었던 부친을 따라 캐나다에 간 것을 계기로 일찍부터 유학생이 됐다. 캐나다 오타와대 기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학원에서 기계· 환경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의 환경연구소인 에어로바이론먼트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 시절 문 총장은 미국 나호야밸리의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연기가 그랜드캐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연구를 해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를 계기로 발전소 후처리 공정을 대폭 변경하는 등 반향을 일으켰다고.


1991년 해외석학 유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귀국, KIST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스모그 현상’의 문제점을 알리며 국내 환경 연구를 주도했다. 한국대기환경학회장을 역임했고 2006년 KIST 부원장을 거쳐 2010년 KIST 원장에 취임했다. 현재 국제대기환경보전단체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틈틈이 등산을 즐기는 등산 마니아이기도 하다. KIST 원장 임기를 마치고는 과학계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그동안 숙원사업이었던 히말라야 등반여행을 하기도 했다. 문 총장은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었지만 꼭 한번 경험해볼만한 여행이라고 망설임 없이 추천한다.


<본 기사는 테크M 제37호(2016년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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