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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

화려한 냉장고 디자인 미국에선 왜 인기 없나

글로벌화의 첫 걸음은 해외 문화의 이해다

2016-03-16이혜진 더 밈 대표



[머니투데이방송 테크M = 이혜진 더 밈(The MEME) 대표] 나의 시부모님은 그리스인이고 그리스 북부 테살로니키에 사신다. 성경에 나오는 데살로니카 전서가 쓰여진 곳이다.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시댁에 처음 방문했을 때 시어머님께서는 며느리 될 나에게 가장 값진 차를 대접하길 원하셨다.

시어머님이 내놓으신 차는 바로 일본산 현미녹차였다. 한번도 아시아에 가 본 경험이 없었던 어머님께서는 그 녹차를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고 주신 것이다.

결혼식은 지금 살고 있는 미국 보스톤에서 올리게 됐다. 한국에 계신 나의 어머니 역시 시부모님께 가장 좋은 선물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셨다.

오랜 고민 끝에 낙점된 선물은 다름아닌 누에고치의 실크 뭉치로 속을 넣은 이불. 몇 년 전 어머니가 중국을 여행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커다란 부피를 마다하지 않고 한국까지 가지고 오셨으니 어머니가 생각하는 솜의 가치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이불은 또 다른 비단에 싸여 보스톤에 배달됐고 다시 그리스로 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차를 좋아하는 미국의 집에는 10가지 이상의 일본산 녹차가 늘 있다. 또 지중해성 기후인 그리스는 아주 얇은 이불이나 겨우 사용하고 오리털이나 실크 솜 이불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하는 곳이다. 그리스행 비행기에 타지 못한 그 이불은 겨울이 긴 보스톤의 자연 환경에 딱 맞아 나와 남편이 아주 잘 쓰고 있다.

웃지 못할 이러한 사연들이 우리 집안에만 일어나는 것일까?

친절한 냉장고의 진정한 효용
국내 한 전자업체와 사물인터넷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해당 기업의 담당자들은 냉장고 안에 어떤 음식과 식재료가 들어있는지 알면 레시피를 다운 받아 음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기했다. 그렇게 된다면 냉장고 안에 있는데도 잘 몰라 다시 사는 중복 쇼핑을 피하고 식재료의 낭비도 줄일 수 있다는 것.

이 아이디어는 가전부서에서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문제였다. 하지만 사용자가 구매한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을 때 각 재료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 진척이 안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해당 기업에서는 카메라 센서를 이용하면 냉장고 안의 내용을 훤히 알 수 있고 그 변화 사항까지 받을 수 있다며 이를 통해 그 동안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시장에 대한 사용자 인사이트를 연구한 결과 서비스의 선호도가 높을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높은 선호도를 보이는 이유였다. 남은 식재료를 버리는 게 아까워서가 아니라 남은 재료가 상하면서 발생하는 성분이 냉장고 안의 다른 음식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한 것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냉장고 안의 식재료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 미국인들의 장보기 프로세스를 도와 준다는 점이다. 유럽, 아시아와 달리, 교외에 집이 있는 미국에서 장보기란 하나의 큰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과 같다.

마트가 집에서 보통 30분이상 떨어진 곳에 있어 한번 가면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사고 마트도 대부분 대용량으로 판매한다. 식재료뿐 아니라 휴지, 세제, 일회용 접시 등 일상용품의 구매까지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거기다 이민을 온 사람들은 해당 나라 고유의 식재료를 판매하는 시장을 또 가야 하기 때문에 보통 2~3군데를 들려야 모든 장보기를 마칠 수 있다.

결국 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는 냉장고의 식재료 리스트를 ‘쇼핑 리스트’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것에 온라인 장터로 연결해 필요한 제품을 할인하는 광고를 스크린 디바이스(TV, 냉장고 문에 부착된 스크린, 모바일 폰)를 통해 보여주자는 것.

이렇게 되면 쇼핑몰과 사용자, 냉장고 판매회사 모두 윈윈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

이 내용을 사용자들에게 테스트한 결과 냉장고에 이런 편리한 플랫폼이 부착돼 있다면 200달러를 추가해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하는 사람이 많았다.

만일 음식 낭비를 줄이는 컨셉을 유지했다면 낭비를 줄이기 위해 디자인을 어떻게 할 지에 집중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리와 관련된 전체 과정, 쇼핑 - 쿠킹 - 정리 프로세스 전체를 연구함으로써 새롭고 유용한 플랫폼에 대한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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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이사갈 때 냉장고는 대부분 집에 두고 간다. 여러 사람이 선호하는 무난한 디자인이 될 수 밖에 없다.

TV의 디자인과 무한도전
몇 년 전 국내 글로벌 기업과 미국향 TV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일화도 참고할 만하다.

인터넷 TV가 지금처럼 활성화 되기 전, 미국 가정에서의 TV 시청은 어떻게 이뤄지고 TV 디자인은 어떤 방향을 선호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사용자 경험을 연구했다.

그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심층면접을 진행한 12가구의 사람 중 TV의 디자인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한 한 명도 없었다. TV 모니터의 모서리가 뾰족하건, 둥글건, 금속이건, 플라스틱이건, 검정색이건, 흰색이건 구매에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받침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탠드 형이 좋은지, 벽걸이 형이 좋은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만 약간 선호도가 갈릴 뿐이었다. 심지어는 해상도를 언급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사용자들에게 중요한 이슈는 콘텐츠를 더 쉽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 인터넷이 가능한 TV를 더욱 잘 활용할 방법, 바로 눈앞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와 다르게 3m란 거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등 대부분의 내용이 어떻게 새로운 TV를 경험할 것인가에 대한 것들이었다.

사용자 연구의 분석 과정 중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고객이 미국에는 왜 ‘본방사수’가 없느냐고 물어왔다. 미국은 땅이 넓어 같은 시간에 TV를 시청하는 일이 참으로 드물다. 수퍼볼을 제외하고는 전국민이 실시간으로 TV를 보는 일이 없다고 설명해줬다.

새해가 시작될 때 뉴욕에서 큰 이벤트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야의 종소리에 비할 만큼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고객은 한국에선 ‘무한도전’을 보지 않으면 다음날 회사에 가서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며 ‘본방사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미국향 TV에도 본방사수를 위한 경험디자인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청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객을 설득하는 데 거의 3주가 걸렸다.

불변의 냉장고 소재 스테인레스 스틸
미국 가전제품은 아시아와 유럽에 비해 디자인이 단조로운 편이다. 특히 제품의 마감재는 20년째 스테인레스 스틸이 사용되고 있다.

그사이 한국에서는 다이아몬드가 100개쯤 부착된 꽃무늬 냉장고 문짝을 비롯해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한 화려한 디자인, 빨강과 자주 등 강렬한 색상들이 유행을 거쳐갔다.

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자 연구를 진행했지만 결과는 간단했다. 냉장고는 스테인레스, 세탁기는 강한 색이 좋다는 것. 같은 가전제품인데 왜 세탁기만 색깔 있는 마감재를 선호하는지 알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를 진행했다.



그 답은 의외였다. 미국에서는 이사갈 때 냉장고는 대부분 집에 두고 간다.

더구나 좋은 가전제품을 두고 가야 집을 사고 팔 때 값을 잘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엌을 통째로 리모델링 하는 경우가 아니면 쓸만한 제품을 남겨둔다. 그렇다면 이런 맥락에서 좋은 냉장고란 어떤 것일까?

나만의 개성을 반영하기보다 여러 사람들이 무난하게 선호하는 디자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세탁기의 환영 인사
하지만 세탁기는 다르다. 이사 갈 때 가져 가도 된다. 놓이는 위치도 제각각이다. 지하에도 둘 수 있고 마스터 베드룸 옆이나 다용도 룸에 놓일 수도 있다.

(미국에선 드물지만) 부엌에 놓이거나 차고에 놓일 수도 있다. 세탁기를 놓는 공간은 대부분 외부 사람은 접근하지 않는 집 주인의 개인 공간이다. 손님들이 접근하는 냉장고의 환경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에게 세탁은 청소와 함께 가장 하기 싫은 집안 일이다. 주말에 세탁물을 한 가득 들고 세탁기를 찾아갈 때 뭔가 화사하고 인상 깊은 디자인이 나를 반겨준다면 세탁이 더욱 즐거워 질 것으로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러므로 나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랑데부 하기 위해 화려한 디자인과 강렬한 색상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멕시코의 통신회사 텔멕스(Telmex)가 한국의 인터넷, 통신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방한했다. 텔멕스는 세계에서 부자로 꼽히는 카를로스 슬림이 소유한 회사다.

그들은 왜 한국을 연구하려고 했을까? 한국에 진출해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터넷 인프라가 앞서 있는 한국의 경험을 연구, 미래의 멕시코에도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것이다. 또 미래를 경험, 지금 대처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뭔지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고립된 삶을 살아왔다. 지역적으로는 정치 상황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동질성이 강한 역사 때문에, 문화적으로는 정통성을 선호하는 기류 때문에.

한 가지만 유지하는 순도 높은 배경 때문에 다름을 쉽게 인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화의 차이를 통해 서로 다름의 가능성을 빨리 인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면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로컬라이제이션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홈런을 위한 훈련
● 해외 여행을 할 때 우리의 일상과 눈에 띄게 다른 삶의 방식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예. 코셔나 할랄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의 발견)

● 일상의 다름을 이용해 새로운 서비스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자.
(예. 코셔와 할랄 재료를 한국의 양념과 연결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

● 아이디어를 사용하고 있는 구체적인 상황 시나리오를 그려보자.
(예. 음식을 가려먹는 종교인들, 외국인 뿐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청결과 위생을 강조한 고급 레스토랑 메뉴 개발)

이혜진 THE MEME(더 밈) 대표는

 

 

 

해외에서 글로벌 디자인 전략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인 이혜진 대표는 서울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 디자인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더 밈은 미국 보스톤에서 2006년 창업한 경험 디자인 전략 컨설팅 회사다. IT분야의 기술이해와 사용자 연구, 분야별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수많은 선행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융합할때 가장 핵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 "경험"임을 강조한다.

[머니투데이방송 테크M = 이혜진 더 밈(The MEME) 대표]

<본 기사는 테크M 제35호(2016년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