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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을 보며 존 러스킨의 ‘예술론’을 떠올리는 이유

2016-12-17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공연예술가들은 항상 어려운 삶을 겪어왔다지만 요즘처럼 힘든 시절이 없을 것 같다. 김영란법과 문화콘텐츠 재단의 비리 의혹 때문이다. 그동안 공연단체의 수지를 맞추는 데 크게 기여해 왔던 기업의 협찬 티켓이 김영란법의 선물 상한액 5만 원 규정 때문에 발행량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의 예산이 대거 삭감되고 있다.

콘텐츠 창작과 공연 예술 활동에 경제 문제가 결부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은 경제와 뭔가 다른 영역에 속한 활동으로 간주됐다. 예술가는 돈벌이가 아니라 창작하는 사람으로, 상인은 상업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으로 그 역할과 계급이 분명히 나뉘어 있었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은 대부분 재력가나 권력가로부터 후원을 받거나 고용을 당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하, 미켈란젤로, 베토벤은 그렇게 살았다. 수많은 화가, 도공, 장인, 가수들이 그렇게 생존을 유지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장인들의 공예는 순수예술과 기업 활동 사이에 회색지대와 같았다. 그들의 창작물은 마치 다량 생산이 가능한 제품 같은 성격이 있었고 거기에는 분명히 큰 시장이 있었다. 과거의 공예는 그렇게 생존했다.

그 활동은 현대에 와서 디자인 경영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다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지나 사용자 경험(UX)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예술이 경영과 본격적으로 융합된 것이다.

예술과 경영은 이질적인 활동인가?

21세기 초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기치로 내걸기 이전, 이미 20세기 초부터 모든 공산품의 역사는 기술과 예술의 기나긴 결합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유선형 자동차와 열차, 모든 아름다운 가구, 사무기기,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스마트폰의 아름다운 UX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100여 년이 넘는 기간, 수많은 전문 예술가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 모든 예술 활동들은 오늘날 기업 활동의 한 영역으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과는 항상 시장의 원리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한 순수 공연예술 영역에서도 시장의 원리가 그대로 작용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거기에서 대량 생산은 어렵다. 고객은 늘 소수에 불과하다. 비용을 보상할만한 수익은 늘 불확실하다. 문화경제학은 이런 성격의 문화콘텐츠 창작 활동에 대해 정부나 기업의 지원 필요성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그리고 예술 경영학은 창작 활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경영함으로써 시장을 창조하고 창작가와 조직의 활동을 지속시키는 원리를 개발했다. 예술 활동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의 씨앗을 최초로 뿌린 사람이 존 러스킨(John Ruskin)이다.

그의 사상을 계승하여 경제학자인 윌리엄 보몰(William J. Baumol)과 윌리엄 보웬(William G. Bowen)이 이후 발전된 경제이론을 적용하여 1966년에 ‘공연예술: 경제적 딜레마(Performing Arts: The Economic Dilemma)’를 출간한 바 있다. 물론 그가 제시한 수준은 보몰과 보웬 이후 발전된 오늘날의 문화경제학 이론의 기준으로 보자면 소박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당시 고전 정치경제학의 전통에서 보자면 매우 파격적이었다. 예컨대 아담 스미스는 예술가의 활동은 사회에 유익하기는 하지만 부의 창출 측면에서는 비생산적인 노동이라고 보았다. 존 스튜어트 밀도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인정했지만 정치경제학의 한 분석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당시의 경제사상가들은 오직 물질적 생산과 그 분배 문제에만 초점을 두었으며, 예술은 경제의 분석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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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활동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의 씨앗을 최초로 뿌린 사람이 존 러스킨이다.
러스킨은 예술품이야말로 국가의 진정한 부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러스킨은 ‘예술의 정치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Art, 1869)’에서 예술품이야말로 국가의 진정한 부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예술이 단지 예술가들의 활동으로만 남겨져 있어서는 안 되며, 국가의 공적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예술은 단지 공급자의 비용과 생산 논리에만 맡겨 놓아서는 안 되며, 사회 구성원들의 풍요로운 소비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공적으로 장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예술품을 보다 많이 보존하고 축적해야 하는 이유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면서 보다 높은 정신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러스킨이 이전의 정치경제학자와 달리, 예술 활동을 경제학의 연구 대상으로 포함시키게 된 이유는 그 자신이 예술비평가로 문필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근대 화가론(Modern Painters, 1842)’을 필두로 평생 근대 미술과 건축에 대한 수많은 비평서를 남겼다. 그러나 1860년대 이후 영국 공장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삶과 근로 환경을 접하면서 정치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 개혁 사상을 전개하게 됐다.

19세기 영국 산업사회에서 공장 노동자들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우받는 비참한 모습은 마르크스에게나 러스킨에게나 마찬가지로 다가왔다. 거기에서 인간은 고양되는 것이 아니라 망가지는 존재였고, 쓰다 버리는 물품과도 같았다.

19세기 이래 많은 사회 개혁가들이 마르크스보다는 오히려 러스킨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레오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조지 버나드 쇼 등이 러스킨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사유재산을 철폐하고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어 사회를 진보시키겠다는 마르크스류의 사상에 거부감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러스킨에 동조했다.

노동은 예술이자 창조 활동이다

러스킨의 사회사상이 마르크스와 다른 점은 산업계의 지도적 인사나 국가의 가부장적 역할을 인정했다는 점에 있었다. 이들에게는 일종의 교육적인 역할을 기대했다. 특히 산업계의 지도자, 오늘날로 치면 경영자들에게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동을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 대신에 사람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시장을 형성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거주할 집이 없고 배고픈 사람들이 음식을 구하지 못하는 한, 그런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야말로 기업가들이 계속해서 발견해야 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서 보다 고차원의 욕구인 예술의 창조와 향유 등을 통해 자기 성취를 맛보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도 역시 기업가에게는 커다란 기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미 기업의 사회적 존재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도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마지막 이 사람에게도(Unto This Last, 1862)’에서 노동은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활동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동자는 단순히 임금을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참여하는 창조의 과정에서 자신의 고귀한 가치, 즉 생명의 가치를 구현하는 존재여야 한다.

노동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사용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완성시키고 그 가치를 드높이는 데에 있다. 이런 활동에 사용해야 할 고귀한 노동을 한낱 임금으로 사고파는 물건 정도로 보는 당시의 정치경제학을 그는 경멸했다. 러스킨은 고전파 정치경제학을 가리켜 노동을 단지 생존 수준의 임금만 받고 일하는 동물처럼 간주하는, 그래서 기껏 상품의 가치를 투입된 노동시간으로만 측정하는 속된 사상이라고 비판했다.

건축물과 예술작품을 바라볼 때, 대부분의 예술비평가들은 완성된 결과물의 미적 특성에 초점을 두었지만, 정치경제학자 러스킨은 그런 창조에 참여한 노동 행위에 주목했다. 건축물이 아름다운가 아닌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거기 참여한 노동자들이 얼마나 즐거움 속에서 일했느냐는 것이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상투어가 있다. 그런데, 수많은 창작가로 하여금 이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그 일에 몰두하도록 만드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 괴로움을 보상하고도 남을, 보이지 않는 기쁨이 아닌가? 러스킨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기쁨이 설계자나 감독자, 현장 노동자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은 돈으로만 칠 수 없는 진정한 노동이 된다.

그러나 그는 이런 기쁨은 노동자들이 황폐한 일터에서 홀로 고군분투해서 쟁취하도록 방치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평화와 안정의 분위기가 사회 전체적으로 제공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장은, 노동자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로서 아름다운 환경과 쾌적한 근로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낭만주의 경제학의 공헌과 한계

인간 정신의 고귀함과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건조하고 냉혹한 경제의 세계에 인간의 따뜻함을 부활시키려 했던 러스킨의 이상은 그의 유려한 산문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당시 경제학자의 눈에는 오히려 산만한 감상문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마지막 이 사람에게도’를 비롯한 여러 경제학 저작을 살펴보면, 분석과 검증은 부족하고 묘사와 외침이 더욱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문학에 경도된 낭만주의 작가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일 수도 있다.

비록 아름다운 문장은 가득할지 몰라도, 정책, 전략, 또는 실행 원리는 부족하다. 낭만과 이상으로 가득한 글은 사람들을 감읍(感泣)하게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현실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 결과를 낼 것인가를 말해주지는 못한다.

어디서나 풍요를 추구하는 대가로 불가피하게 환경오염이나 소득 격차 확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만, 이런 것들을 일거에 퇴치함과 동시에 풍요를 유지할 수 있는 마법의 주술이나 혁명적 묘방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별 경영자와 지식노동자들이 자기 자리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 길 외에는 도리가 없다.

적어도 경제학 측면에서 러스킨의 가장 큰 공헌은 19세기의 경제학자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점, 즉 경제는 단순히 물질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과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숭고한 것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활동이라는 점을 일깨웠다는 사실이다.

20세기에 경제가 물질적 생산력의 극대화를 통해서 기본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면, 21세기 경제는 그 기반 위에서 사회의 미덕을 고양하고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구현하는 데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 막중한 책임이 오늘날 경영자에게 부과되어 있다. 경영자가 20세기와 같은 형태의 명령과 통제 또는 당근과 채찍이 아니라, 책임과 자기통제, 그리고 성취와 기여의 원리가 통용되는 공간으로 자신의 조직을 변모시키지 못하면 그 조직은 낙오될 수밖에 없다.

지난 세기 포드, GM, AT&T 등의 시대는 갔다. 이제 새로운 주자인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이 바로 150년 전에 러스킨이 꿈꾸었던 자유와 창조의 일터를 구현하는 실험을 행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존 러스킨 (John Ruskin, 1819-1900)

영국의 예술 및 사회 비평가, 경제사상가. 스코틀랜드 출신의 부유한 상인 가문으로서 런던에서 태어났다. 1842년에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근대화가론’을 출판한 이후 왕성한 예술 비평 활동을 했다. 후반에는 정치경제학을 연구하고 사회 개혁론을 설파했다. 옥스퍼드 대학교수직(1865-1879)을 역임했지만, 말년에는 정신질환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겪다가 생을 마감했다. 경제학 저술로 ‘예술의 정치경제학’, ‘마지막 이 사람에게도’ 등이 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4호(2016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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