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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과학으로 풀어낸 경제학, 위력일까 함정일까

2016-11-21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수량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은 기껏 상품의 수효나 가격 정도였다. 그러나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는 마음의 상태를 수량으로 표현하고 계산할 수 있다고 과감하게 가정했다. 이런 시도는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를 자연과학의 언어로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공리주의 철학은 인간 행동이 오로지 고통과 기쁨이라는 두 가지의 막강한 원리에 의해 지배당한다고 생각했다. 제본스는 이 사상을 이어받아 경제학을 가리켜 ‘즐거움과 괴로움의 미분학(calculus of pleasure and pain)’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각각 양의 효용과 음의 효용이라는 개념으로 추상화시켰고, 효용 자체는 다시 총효용과 최종효용으로 구분했다. 최종효용은 어떤 소비재에 대한 전체 소비가 아니라 가장 마지막에 추가로 소비할 때 발생하는 효용을 의미한다. 그가 사용한 최종효용이라는 용어는 훗날 경제학에서 한계효용이라는 표현으로 통일됐다.

총효용과 한계효용을 명확히 구분하고, 가격을 결정하는 원인은 총효용이 아니라 한계효용에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 이른바 한계효용학파의 중심 사상이다. 이 사상이 바로 오늘날 경제학 교과서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고 제본스는 그 원조였다.

효용이 마치 대기의 온도나 습도, 또는 물체의 높이와 부피처럼 측정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누구나 내면의 상태로는 지금 내가 어느 정도 기쁜지, 또는 힘든지 안다.

그러나 막상 이 기쁨이나 고통의 크기를 숫자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막막하다. 물론, 우측은 가장 즐거움, 좌측은 가장 괴로움으로 표현된 9단계 리케르트 척도 상 한 지점에 자신의 상태를 적당히 체크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정확한 측정이 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훗날 이론경제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랫 동안 고민했다. 결국 그들은 효용이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는 없지만 일종의 논리적 관계로 비교 내지 평가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즉 한 상태가 다른 상태보다 더 낫다거나 못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오늘날 미시경제학은 그런 토대 위에서 성립된 거대한 형식 논리학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에서 도덕과 경영이 사라졌다

오늘날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행동경제학자들은 사람이 즐겁거나 괴로울 때 분비되는 호르몬의 양이나 뇌 신경세포의 전기 반응의 크기를 대리 측정 수단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측정된 모든 수치는 몸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지 결코 마음의 상태를 대변한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인간 본성에 대한 생물학 환원주의는 마음을 단지 몸, 아니 세포나 유전자의 관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제본스는 사람의 욕구 내지 심리 상태를 수량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정 하에, 이 심리 현상을 지배하는 일종의 자연 법칙이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경제학을 재구축하려 했다.

법칙이란 중력과 운동의 함수 관계 내지 천체의 운행 현상처럼 인간의 의지와 변덕을 떠나 독립적으로 관철되는 그 무엇이어야 했다. 그는 모든 자연과학이 뉴턴 식 역학의 토대 위에 건립하고 있는 것처럼 경제학도 마땅히 그래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런 믿음은 정치경제학에서 ‘정치’라는 단어가 떨어져나가고 차갑고 건조한 ‘경제학’이 독립 성장하는 계기를 낳았다. 그 결과 경제학은 훗날 가장 ‘과학적’인 학문으로 변형되고 거기에서 경영과 도덕은 조금씩 사라지게 됐다. 인간은 단지 쾌락과 고통이 주는 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만으로 이루어진, 인형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제본스가 개발한 논리 피아노.

(제본스가 개발한 논리 피아노.)

 

경제학자가 개발한 논리 피아노

그러나 제본스가 경제학을 편협하게 파편화하고 수량화시킨 무미건조한 학자에 그친 인물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정치경제학 외에 철학, 지질학, 화학, 생물학, 물리학 등 여러 분야에 폭넓은 지식을 지닌 융합 사상가였다. 사회평론에도 많은 저작을 남겼다. 그러나 융합사상가 치고는 자연과학에 너무 경도되었다. 또한 철학 역시 윤리학이나 미학보다 논리학에 심취했다.

형식논리학과 연역법에 심취했던 그는 논리적 추론 과정을 다룰 수 있는 기계, 이른바 ‘논리 피아노(the Logic Piano)’를 개발하기도 했다. 여러 명제의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진리표의 여러 조합을 키보드 작동을 통해 분류해 낼 수 있는 기계였다.

제본스는 당시 불(George Boole, 1815-1864)의 기호논리학 체계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논리학을 구축했고, 논리 피아노도 이 과정에서 개발된 것이다. 이 장치는 현대 컴퓨터가 출현하기 이전에 등장했던 다양한 원시적 장치 중 하나로 여겨진다.

경제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역학적 관계를 통해 움직인다고 보았던 제본스로서는 충분히 당연한 발명이었다.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보는 두 가지 관점은 아직도 대립하고 있다. 세계를 마치 거대한 기계 뭉치와 같은 실체로 보는 관점과 자유로운 개체들 사이의 유기적 관계 내지 과정으로 보는 관점이 그것이다. 제본스는 이 가운데 철저하게 전자의 입장을 취했다.

궁극에 가서 우주를 거대한 컴퓨터로 보는 시각이나, 경제 역시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체계처럼 작동할 수 있다고 보는, 구시대 사회주의에서 경제를 계획 내지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 면에서 제본스로부터 유래한 형태의 현대 경제학은 오늘날 인간을 이기적 유전자의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로 보는 진화생물학의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인간 본성에는 이런 속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인류는 기업에서든 사회에서든, 수량과 논리적 절차로 그 성과를 향상시키려고 그토록 노력해왔지만 고통과 갈등과 비극은 한시도 사라지지 않았다. 사회는 기계치고는 정말로 형편없는 기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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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수리적 기법 이전에 인문학적 지식과 통찰을 갖춰야 한다.
통찰이 빠지면 데이터와 숫자는 잡음에 불과할 뿐 결코 신호가 되지 못한다.


희소성의 세계관

그러나 수량과학을 그토록 신봉했던 제본스조차 선배 정치경제학자들의 정치적, 도덕적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그 역시 일종의 과도기 사상가였다. 특히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어준 저서 ‘석탄문제(The Coal Problem, 1865)’에서 보듯이 고전파 경제학자들, 특히 맬더스의 세계관이 그의 사상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는 석탄 의존형 경제였던 영국 사회가 당시처럼 무분별하게 석탄 소비를 빠른 속도로 증가시키다 보면 더 비효율적인 채굴지의 석탄을 찾아 다녀야 하고 결국 석탄 가격이 상승하면서 영국 경제는 그 우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표면적으로는 현재의 경제와 미래의 경제 사이에 균형을 이야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궁극적으로 세계의 모든 자원이 희소성이라는 냉혹한 제약을 절대 피해갈 수 없다는 관점이 담겨 있다. 석탄이 고갈되면서 아무리 대체 에너지 자원을 찾는다 해도, 그것은 단지 ‘대체’되는 것에 불과할 뿐, 결코 무에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경제난을 피해 이민을 가는 사람이나, 보다 좋은 설비를 구입하는 사람이나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뭔가를 희생하면서 그를 대신할 어떤 것들을 받아낸 데에 불과하다. 전 우주의 에너지와 자원 총량은 불변이며, 언제 어디서나 단지 그 형태와 위치를 바꾸어서 자신을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지식 검색 서비스(구글), 공유 비즈니스 모델(우버), 스마트그리드(인코어드), 인더스트리 같은 첨단 사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들은 결국 세상의 모든 자원들이 제한된 상태에서 지금보다 더욱 나은 위치와 상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남이 가지고 있는 것, 여기에는 부족하지만 저기에는 남아도는 것을 연결시키거나,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들을 가급적 많이 모아서 필요한 것만 골라서 쓰도록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사실, 20세기 초 산업사회의 생산성 혁명이나 20세기 후반 정보 혁명도 본질적으로 여러 부품과 지식 등의 ‘배치 방식’을 바꿈으로써 이룩된 것에 불과하다.

제본스는 이 모든 것들이 마치 무한한 것 같지만, 사실은 전체적으로도 유한하며 매 순간 유한성에 봉착한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제본스가 강조한 이 희소성의 철학 덕분에, 훗날 경제학은 희소한 자원 하에서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얻는 방식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착된 것이다.



수량과학과 빅데이터

제본스의 업적을 거론할 때 늘 등장하는 얼핏 개그처럼 느껴지는 학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경기변동을 설명하는 태양흑점설이다.
그는 순수 이론 경제학을 추구한 이외에 응용 경제학에도 심취했다. 그는 열성적으로 수많은 통계 자료를 분석해서 그 결과를 발표했다. 통계만으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단순한 귀납법에 머문 것이 아니라, 나름의 연역법으로 그 결론을 뒷받침하려고 노력했다.

그 중 하나가 경기변동의 궁극적 원인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탐구한 끝에 결국 태양으로 귀결시킨 연구였다. 경기변동은 왜 일어나는가? 심리(mood)의 변화 때문에 일어난다. 상인이나 은행가들은 곡물의 작황을 보고 가격 변화를 예상하고 행동한다. 가격이 상승하면 호황에 대한 기대로 기업들은 투자를 늘린다.

이는 이내 과잉투자로 이어지고 수익률은 낮아지며 결국 파산하는 기업들이 등장한다. 그러면 다시 가격이 하락하고 사람들은 불황을 예상하면서 투자를 줄인다. 그러면서 가격은 하락하고 공급자는 줄어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 거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은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제본스는 장기간의 시계열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기업들이 차가운 심리와 뜨거운 심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데 약 10.44년의 주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주기 자체는 기계적인 과정임이 확실해 보였지만, 그는 도대체 그 작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가에 의문이 미쳤다.

그는 연구 끝에 태양 흑점의 변화가 같은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태양 흑점의 크기가 변화하면서 날씨가 변화하고 이것이 지구, 특히 열대 및 아열대 지방의 곡물 작황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이 결국 경기변동을 일으킨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제본스처럼 지적인 사람조차 이런 무모한 논법에 빠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 통계학자들 사이에서는 통계적 상관관계가 결코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상식과도 같다. 월별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물놀이 익사자 수 사이에는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이 익사의 원인이라고 결론짓는다면 우스운 일이다.

오늘날 빅데이터 분석에서조차도 자칫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수량 분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함정이다. 데이터 과학자들이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인문학적 지식과 통찰을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통찰이 빠지면 데이터와 숫자는 잡음에 불과할 뿐 결코 신호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본스가 추구했던 수량과학으로서 경제학은 훗날 엄밀한 수리적 기법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한동안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는 효과를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분석하는 정보들이 잡음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기법 이전에 마음과 도덕, 가치와 미추(美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선행해야 한다. 제본스 이전의 정치경제학자, 더 거슬러 올라가서 도덕철학자들은 경제에 아울러 그런 곳까지 눈길을 주었던 것이다.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 1835-1882)

1835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를 졸업했고, 오언 칼리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독일의 칼 멩거(Carl Menger, 1840-1921), 프랑스의 레옹 왈라스(Leon Walras, 1834-1910)와 함께 경제학의 역사에서 이른바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정치경제학의 이론(1871)’, ‘과학의 원리(1874)’, ‘연역논리학 연구(1880)’ 등의 저서를 남겼다.

<본 기사는 테크M 제43호(2016년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