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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부론은 ‘보이지 않는 뇌’에 달렸다

2016-06-23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올해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1776)’이 출간된 지 240년이 되는 해다.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좀 어폐가 있지만, 당시 경제문제를 분석했던 여러 지식인 가운데 그만큼 후대의 경제학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도 드물다. 스미스 이후 경제학의 역사는 대부분 그를 계승하거나 반박하거나 보완하는 역사였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증기기관과 방적기가 막 개발된 산업혁명 초기였다. 19세기 이후 증기기관차와 철도의 보급, 회사법 제정과 유한책임 주식회사 제도의 본격 확산, 전기, 화학, 자동차, 전화 등 신산업의 등장, 20세기 대량생산 시스템, 2차 대전 이후 지식노동의 급증, 20세기 말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 같은 현상은 보지도 못했고 꿈도 꾸지 못했다.

그 시대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의 사상 가운데 오늘날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많다. 그러나 분업과 자유시장의 원리, 자본 축적의 중요성, 작은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한 생각은 그의 사후 2세기 동안펼쳐진 세계의 원리를 어느 정도 예견했다.

풍요로운 사회의 원리와 그 적들

스미스의 ‘국부론’은 국민의 풍요로운 삶을 이끌어 내는 원리를 탐구했다. 단순히 논리와 상승으로 창작한 원리가 아니라 수렵단계, 유목단계, 농경단계, 상공업단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간 사회에서 생산과 교환 활동의 역사를 분석한 결과 도출된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풍요로운 삶이란 생필품을 보다 용이하고 풍부하게 획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노동 분업의 정도와 투입되는 자원의 생산력이야말로 이 풍요를 증대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동시에 풍요를 향해 전진하는 길에 방해가 되는 관행이나 사상을 비판했다. 귀금속의 유입을 중시하는 중상주의, 상인에 대한 인위적인 규제와 우대책은 그가 배격한 주요 대상이었다. 그가 죽은 뒤 세계 경제의 흐름은 마치 시계추처럼 스미스 사고와 반 스미스 사고 사이를 왕복하는 역사와 같았다.

보호주의, 특혜, 국가 계획주의를 포함해 경쟁과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는 모든 제도가 스미스 식 세계와 힘겨루기를 하면서 항상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아담 스미스에 대해 대중이 지닌 인상은 상당히 왜곡돼 있다. 대개는 원전이나 전공 연구가 아니라 그를 다룬 2차 문헌의 짤막한 내용이 여러 단계에 걸쳐 유포되면서 와전된 것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스미스가 개인의 이기심을 찬양했다는 편견이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탐욕과 악행이 불거질 때마다 규제 없는 신자유주의가 원흉으로 거론됐다. 신자유주의의 조상은 고전적 자유주의이며, 고전적 자유주의의 원조는 바로 아담 스미스였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다.

개인의 이기심을 찬양했다는 편견

세상에는 혁신을 선도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기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글로벌 혁신기업, 위대한 기업으로 알려진 곳에서조차 비윤리적인 행동은 자주 일어난다.

해외 하청공장에서 아동 노동이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방치한 애플이나 디젤 차량의 연비를 조직적으로 속인 폴크스바겐, 차량의 안전 결함을 알리지 않고 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도요타자동차, 유해 폐기물을 에콰도르의 삼림에 쏟아버린 세브론, 금광 채굴 지역을 확대하기 위해 수백 가구를 불태운 배릭 금광회사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오늘날 반기업 정서의 원천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아마 자본주의의 기본 사상이 사기업의 제한 없는 이익 추구 행위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가장 큰 요소를 차지할 것이다.

그 기본 사상은 기업이 사익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을 통해 저절로 공익이 달성된다는 스미스의 명제에 기반을 둔다. 대중은 물론이고 기업가들조차 이 명제로부터 기업은 굳이 공익을 생각할 필요가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된다는 비약적 결론을 이끌어낸다.

보이지 않는 손은 스미스가 도덕감정론(1759, Part IV.1, 264)과 국부론(1776, Book IV, chapter II, 456)에서 스쳐 지나가듯 한 번씩 사용한 비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어구가 스미스의 전체 사상을 상징하게 됐다. 심지어 후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자유시장의 자동조절 기능을 담보하는 만능 메커니즘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생산과 교환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개인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내도록 즉, 자신의 자본이나 원재료에 가장 많은 가치를 추가할 수 있도록 자원을 고용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우월적인 능력은 원래 사회의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것이다.

그런데 개인의 이런 우월적인 능력이 결과적으로 사회의 우월적인 능력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스미스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개인은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겠다는 의도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공공의 이익을 어느 정도로 증진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통해 사회의 편익 증진에 기여한다.

그의 논리가 사회가 아니라 개인을 중시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개인의 행동 원리로서 이기심을 예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기심에 대한 그의 취지는 도덕감정론을 보면 분명히 헤아릴 수 있다. 개인은 자신의 생산활동을 격정이나 탐욕에 의해서가 아니라 덕성의 준칙에 의해 통제해야 한다. 덕성을 존중하지 않고 격정에만 이끌리는 사람으로 가득하면 인간 세상은 절멸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자기애’ 자체는 진정한 덕성이 아니라고 했다. 그 반대로 단순한 연민이나 자애심도 진정한 덕성이 아니다. 그는 개인이 공평한 관찰자로서 공감의 원리에 의해 두 극단의 천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탐욕스러운 사익 추구가 미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스미스가 아니라 그보다 다소 앞서 살았던 맨더빌(1670~1733)에서 유래했다. 그는 자신의 도덕관을 담은 문집 ‘꿀벌의 우화; 또는 사적인 악덕, 공적인 이익’에서 전통적인 도덕관과 달리 개인의 탐욕이 사회 발전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스미스는 인간에게 그런 천성이 일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논법은 오류로 가득하다고 비판했다.





“자본의 분화 통해 생산력 향상”

흔히 스미스에 대해서 노동의 분업만을 떠올리지만, 그는 자본의 분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교환이 활발하지 않았던 원시 미개 사회에서는 자본의 축적이 별로 필요 없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은 자신이 생산해서 쓰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이 분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 필요가 없게 됐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재화들을 축적해서 그 일부를 타인의 축적과 교환하게 됐다. 이 축적 가운데 도구와 원재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동자가 도구를 장착하게 됐다는 것은 축적된 자신의 노동은 물론 점점 더 타인의 노동을 장착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수천 년 간 축적된 노동이 자본의 형태로 전화되면서 인류의 생산력이 점진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고정자본, 운전자본, 화폐자본은 한결같이 축적된 노동이 형태를 달리해서 나타난 것일 뿐이다.

자본이 보다 분화·축적되면서 생산 및 유통과정에서 다양한 자본에 각각 부착된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일의 종류도 그만큼 많아졌다. 물론 각각의 일은 세분화되는 만큼 단순해졌다. 이후 인류의 노동 축적은 18세기 산업혁명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친 뒤 19세기 이후 다종다양한 기계와 부품으로 진화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노동의 분화는 반드시 재화가 유형의 자본으로 축적됨을 전제로 했다. 동시에 노동의 분화는 자본의 축적을 촉진시켰다. 이처럼 노동의 분업과 자본의 축적은 상호 강화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스미스가 살던 시절에는 육체노동이 주를 이뤘다. 그는 20세기에 노동의 중심이 지식으로 이행하는 현상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무 보조직, 예술 창작, 전문가의 지식 연구 내지 교육과 같은 정신노동을 비생산적 노동(unproductive labor)이라고 분류했다.

그러나 국부론의 후반부에서 이런 정신활동이 지닌 가치와 유용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그들이 경제적 수입을 조달하는 형태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분석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생산력 분석을 육체노동과 유형의 산출물에만 한정시켜 보았을 뿐, 정신 활동과 무형의 산출을 그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점은 스미스 이론에서 큰 결함이었다. 훗날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1789~1846)가 ‘정신적 생산력’ 사상을 도입해 스미스의 이 부족했던 논리를 보완하려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본은 지식과 정신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모든 건물, 설비, 컴퓨터와 같은 하드웨어, 그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 그리고 전문가에게 체화된 노하우와 숙련은 지식의 축적이다.

오늘날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나 빅데이터 분석용으로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를 ‘기계’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당연히 방대한 정보와 고도의 업무처리지식(알고리즘)이 축적된 하나의 현상이다.

또 지식과는 별도로 기업 활동 당사자들이 보유한 책임감, 상호 신뢰, 도덕적 성숙성 등은 정신의 축적이다. 탐욕에 물들어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한 사회의 자본을 파괴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부는 결국 얼마나 많은 지식과 정신력이 축적돼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식은 분화·융합 속성 동시에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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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생산력 향상은 전문 지식과
융합 능력으로 무장한 창의적인
지식전문가가 주도하고 있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바로 그 각축장이다.


한 사회에서 직업의 수는 노동의 분화 수준을 어느 정도 표현한다. 원시 사회에서는 기껏 농부나 농기계를 만드는 대장장이 정도의 직업으로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은 그로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직업들이 파생했다. 2012년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업의 수는 9600개, 미국은 3만 개, 일본은 2만5000개 정도라고 한다.

오늘날 표준산업분류코드(KSIC)나 특허분류코드(IPC등), 과학기술분류코드, 도서분류체계 등은 지식의 분화 정도를 표현한다. 그러나 실제 개별 자본의 종류는 실로 무한해 이런 분류체계로 포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또 어떤 지식 자본도 이 가운데 어느 한 분야에 소속된다고 규정할 수 없게 됐다. 지식은 분화하는 동시에 융합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 활동의 분자화는 스미스식 노동·자본 분화가 지향하는 일방적 극단이다. 하지만 모든 활동이 분자화로만 치달으면 생산성은 이내 한계에 부딪힌다. 20세기 초 대량생산시스템 하에서 노동자들이 부품처럼 단순동작만을 반복했던 기업의 생산성은 이내 한계에 부딪혔다. 노동자들은 일에서 소외됐고 동기를 일으킬 수 없었다.

이후 이를 극복하는 반대방향의 힘은 노동자로 하여금 혁신과 개선에 참여하도록 즉, 주체적으로 일을 설계하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데에서 나왔다. 그래서 권한위임과 성과보상 등이 도입됐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지식노동자가 타 분야의 지식을 이해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지식과 융합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지식의 분자화와 융합은 마치 원심력과 구심력처럼 서로를 지탱하는 상반되는 힘이다. 오늘날 생산력 향상은 이 작용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은 바로 그 각축장이 됐다.

단순하게 나뉜 일을 반복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전문지식과 융합 능력으로 무장한 창의적인 지식전문가가 그 전장의 주도 세력이 됐다. 만약 오늘날 스미스가 다시 태어나 ‘신국부론’을 쓴다면, ‘보이지 않는 손’ 대신에 ‘보이지 않는 뇌(an invisible brain)’라는 표현을 썼을 것 같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도덕철학, 논리학, 언어학, 천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심도 있는 저술활동을 한 대 사상가였다. 현대인에게는 초창기 정치경제학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고전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1776)’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38호(2016년6월) 기사입니다>